허름한 PC방 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컴퓨터는 모두 켜져 있었다.

‘이 많은 컴퓨터를 온종일 가동하려면 전기세 꽤나 나오겠군.’

“인터넷 박물관에 온 걸 환영해.”

쇼페인트가 저렇게 맑고 밝은 얼굴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데, 녀석은 마치 정말 가고 싶어하는 곳에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늙수그레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이 컴퓨터 사이를 기웃거리며 간간이 마우스로 클릭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인터넷 박물관장님이야. K씨라고 흔히들 부르지.”

쇼페인트는 ‘님’자까지 붙여가며 그를 소개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서울 한복판의 PC방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안의 넓은 인터넷 세계를 떠돌면서 시민들이 작성한 문건들을 검색하고 있어. 이 컴퓨터들은 ‘디지털 진딧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야.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에서 동일한 주제를 검색할 뿐만 아니라, 그 문건 전후의 문건을 검색해서 그것과 연관되는 것들을 찾아내는 거지.”

“다음 문건이 그것과 연관되는지 안 되는지 컴퓨터가 어떻게 알 수 있어. 동일한 키워드가 없으면 찾을 수 없잖아.”

“그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대개 문건의 앞뒤는 동일한 주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분석 결과 나타났어. 그래서 앞 뒤의 문건이 꼭 그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것, 그것’ 등의 대명사를 통해 그 주제를 표현할 확률이 큰 문건들을 검색해내지. 그것이 디지털진딧물의 역할이야. 진딧물들은 단백질이 주 영양분인데, 식물의 즙은 단백질 함량이 얼마 되지 않거든. 그래서 포식하기 마련인데, 진딧물이 적정량의 단백질을 얻으면 탄수화물은 과다하게 흡수된 상태이지. 그래서 남는 당분을 배설하게 되는데,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도 단백질과 같아. 그래서 하나씩 클릭하면서 유용한 정보인지를 결정하는 ‘디지털개미’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러면 일일이 클릭해야 하잖아. 그걸 어떻게 다해.”

“그래서 인공지능 개미를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개발단계라 사람이 일일이 클릭을 해줘야 하거든.”

쇼페인트는 아쉬운 표정으로 설명한다. 디지털개미가 차를 내온다.

“아저씨는 이렇게 하루종일 컴퓨터를 가동시키면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세요?”

나는 이게 참 궁금했다.

“현대 사회는 정보 강자의 세상 아닌가요. 나는 정보의 강자랍니다. 그래서 벌이도 권력도 명망도 이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시대정신에 비하면 먼지만큼도 못합니다.”

“음... 일리가 있군요. 그런데 실명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무한공유 시대에 이름이란 한낱 기호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름이 없고 그냥 시민이라는 명칭만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뭐. K는 Kim의 약어입니다. 우리나라에 김씨가 가장 많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으로 기운 것일 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나이를 매긴다면 인터넷의 나이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인터넷 시대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어렵잖게 예견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사용하던 물품은 유품이 되듯이 그가 몸담았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수없이 남겼던 게시판의 글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3년이 넘은 휴면 계정이 있으면 먼저 주인에게 메일을 보내 존재 유무를 확인하고, 답변이 없으면 파일 형식으로 담아서 인터넷 박물관에 저장합니다. 여기서 미래를 생산할 수 있어요. 아직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좋지 않은 마음을 품은 세력들이 이 정보를 마음대로 유용하기 전에 이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는 마치 한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시민들의 정보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가 있나요?”

“지금은 아직 ‘무한공유 시대’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옛 시대의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지식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적 재산권’이라는 제도가 그것을 말해주죠. 옛 조상들의 말에 ‘큰 부자는 큰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식을 널리 공유하는 것만큼 인류의 지식을 크게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지식 공유권’이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무한공유 시대가 오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은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했어요. 만약 제 모습을 찾는다면, 그 시대에 맞는, 시대 정신에 맞는 행동을 할 겁니다. 그 첫 영토가 우리나라의 인터넷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 쇼페인트와 박물관장의 표정은 너무나 의연하다. 그 시대가 오면 내가 정보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말인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천의 얼굴과 천의 목소리를 가진 누리꾼들의 입에서는 듣기 불편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토론 게시판이나, 포털 사이트에서 이야기를 들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수많은 오해와, 폭력,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우리의 영토에서 이렇게 무서운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진정한 주인이 된다고.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허위의 탈을 쓰고 있을 테니, 빨리 그것이 벗겨졌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내심 그 허위의 탈이 쇼페인트나 박물관장의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소망이 마음 한켠에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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