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북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피터 탤랙 엮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이기적 유전자, 과학혁명의 구조 등 과학 교양 서적을 읽고 나서 들끓는 욕구로 과학사 책을 하나 정해서 보기로 했다. 시중의 과학사는 주로 과학사의 연대를 몇 부분으로 나누고 이에 대한 의의를 서술하는 식이었다. 문학사든 철학사든 흔한 방법중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 눈에 띈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점, 시간 여유가 많이 없을 때 아무 페이지나 볼 수 있다는 점, 집중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매달린다는 점, 기억할 만한 사건과 기억할 만한 과학자, 그리고 주제와 인물을 적절히 표현하는 그림이다.

'사이언스 북'은 텍스트 한 면, 그림 한 면으로 되어 있어, 왼편에 있는 글을 읽으면서 오른쪽의 그림을 참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중간에는 대표저자들이 총론에 해당하는 두 페이지짜리  글을 써놓았다.

역사 서술로 따지면 편년체(編年體)라 할 수 있는데, 기원전 35000년부터 인간 유전체 지도가 작성된 2000년까지 유구한 과학의 역사를 담아낸 250개의 장면 안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알고 있지 않은 이야기나, 알 도리가 없는 내용을 실감나게 알려주고 있다. 혈액형 ABO가 항체인 것은 알지만, 동물의 피를 수혈해 왔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수학이나 기호를 표현하는 것도 단순화의 극단적 표현이다. 그들은 대나무의 텅빈 속처럼 뚫려 있다. 어디 매이지도 않고, 쓸데없는 오해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단조롭지 않다. 그들이 발견한 세계는 시인과 철학자들이 발견한 정신세계와 같이 신비하고 아름답지만 보다 다채롭고 선명하다. 만약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만들어 놓은 비유의 강을 예술적 원천으로 삼아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표현하는 과학 안에는 정치, 속설, 종교, 민간신앙, 배신, 모략 등이 인간계보다 훨씬 넓은 자연계 안에서 펼쳐진다. 그들에게 '인간'이라는 개념은 만물의 주인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성적인 동물과 같은 영예로운 것이 아니다. 동물과 같은 계를 가지며, 동물과 같은 사회 안에서 서로 먹고 먹히면서 동물의 본능을 공유하는   좀 특이하고 관심이 더 가는 존재일 뿐이다.

만약 데카르트가 '정신'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간 성찰한다면 그는 '과학자'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나온 듯한 이 책이 만약 5년 정도만 늦게 발간되었다면 우리나라 연구팀의 자랑스런 연구결과도 게재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책을 덮었다. 과학의 각 분야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는 저자들의 세련된 필체와, 세심하게 배려한 배열을 따르며 과학사의 넓은 밑그림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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