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만 되었어도 비주얼하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여건이 안 되니 글로만 묘사합니다.
절친한 친구 쇼페인트는 신기한 친구들과 교유합니다. 덕분에 저도 신기한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번에는 '시계혁명전'이라는 전시회엘 갔었습니다.
대문에 씌인 커다란 글씨가 먼저 들어옵니다.
'시간은 아날로그로 흘러간다'
첫 번째로 구경한 시계는 '우는 시계'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왜 그렇게 슬픈 걸까요. 둥근 쟁반 크기의 대부분은 얼굴 모양이 차지합니다. 울상인 얼굴입니다. 왼쪽 눈에서는 눈물 같은 것이 떨어집니다. 처마에 빗물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1초씩 바뀝니다.
'이 작가가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은 '슬픔'이지만, 그것을 두 가지로 표현하였지. 하나는 이렇게 시계를 작게 해서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이 시간을 능가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얼굴을 작게 하고 시계를 크게 한 것은 시간 하나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지. 이 사람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 일밖에 없단 말야. 이 사람의 작품은 그럴 듯하면서도 재미가 없어. 또 다른 작품은 60개의 표정을 만들어서 1초가 지날 때마다 얼굴이 울상이 되다가 마침내 울어버리는 작품이었지. 노골적인 슬픔만큼 유치한 것이 어디 있겠어?'
쇼페인트는 괜히 짜증을 냅니다.
두 번째로 본 시계는 '멀어져가는 화살'입니다.
이것은 주로 어린이들에게 시간의 교훈을 가르쳐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시계의 원을 따라서 크기가 다른 화살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초침이 지나가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마다 전구가 들어 있습니다. 전구가 한 번씩 켜질 때마다 시계의 크기가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다가 60초가 다 왔을 때쯤에는 보일락말락합니다.
'어릴 때는 이런 시계를 꽤 진지하게 보며,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시계의 크기란 것이 다 거짓말이야. 우리가 사는 시간은 해봐야 100년도 안 되지만, 커다란 시공의 관점에서 보면 초침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 '길게 말하지 말고 다음 시계로나 가지?'
잘난 척하는 녀석에게 어깃장을 놓으면서 우리는 '비굴한 시계'에게 갔습니다.
이 시계는 진자운동을 하면서 돌아가는 시계인데, 진자의 위치에 사람 눈알을 그려넣고, 궤도를 둥그렇게 사람의 얼굴이 두르고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불안해하며 이쪽저쪽 살피는 모습을 닮았습니다.
'평생 눈치를 보고 살아가면서, 자신이 만든 작품까지 사람들 눈치를 보게 하고 싶을까?'
(이 작품은 코엑스몰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거기는 동물들이 눈치를 보더군요.)
이번엔 내가 쇼페인트의 흉내를 내 봅니다. 녀석은 선수를 빼앗겨서 분개한 듯이 아무 말 없이 다음 작품으로 걸어갑니다. 다음으로 본 시계는 '하루'입니다..
시계 배경에는 산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섯 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써머타임', 버튼을 누를 때마다 배경이 조금씩 바뀌고 화면의 밝기도 바뀝니다. 낮이 길어지는 날은 좀 빨리 밝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날은 한참 동안 어둠이 시계의 배경을 이룹니다.
'여기 있는 작품 중 드물게 실용적인 시계야. 이 시계 들고 유럽에 간 일이 있었는데, 마침 써머타임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버튼을 맞춰 놓고, 하루 종일 시계와 창밖만 보고 있었지. 신기하게 이 시계의 밝기와 창밖의 밝기가 똑같은 거야. 아마 이 시계를 발명한 사람은 굉장히 많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을 거야.'
특이하게 이 시계에는 초침이 없고, 분침보다 시침이 길었습니다. 시침이 해를 상징하고 시계를 한 바퀴 도는 것입니다. 시계란 꼭 시침이 분침보다 짧아야 할 이유는 없겠죠.
다음으로 본 시계는 ''화합'입니다.
초침이 0초를 가리키면 이불에 싸인 물아기가 등에 성화를 매달고 기어갑니다. 그리고 5초 지점이 지나면, 그보다 조금 큰 아이가 성화를 받고 기어갑니다. 이렇게 성화가 5초마다 전달되면서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 시계도 여러 가지 소재로 효과를 낼 수 있어. 인종이 번갈아 성화를 전달할 수도 있고, 동물과 사람, 옛날과 현재의 사람들이 성화를 들고 달려갈 수도 있지. 이것은 내가 본 60초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60초 작품이야.'
쇼페인트가 감동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장면입니다.
이밖에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계가 많이 있었습니다. 산고(産苦) 시계는 산모의 배가 점점 커지고 산모는 소리까지 지릅니다. 아마 못된 작가가 만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앨범 시계에는 좋아하는 사진을 스캔해서 저장하면 시간이 바뀔 때마다 사진이 바뀝니다. 평소 앨범을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며, 심하게 싸운 부부나 애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시계입니다.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계속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60초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60갑자 시계도 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시계는 고전문헌이나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애용합니다. 이것은 시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참고서에 가깝습니다. 60초 동안 먼저 갑자를 보여주고, 다음에는 1분간 갑자에 대한 소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갑자 해에 있었던 일들을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민족문화정진회의 학자들이 십 년간의 노고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예비고전학자들에게 선물로 많이 줍니다. 제가 알기로 이 시계는 적어도 1년 동안은 다른 정보를 제공하며,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선택해서 정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계들을 보면서 시계란 휴대폰 시계에 밀릴 정도로 불필요한 기계덩어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재인 것 같습니다. 시계는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동일한 모델입니다. 간간히 외형만 바뀔 뿐 초침이 돌고, 분침이 도는 형태는 똑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정의하면서 어떤 일의 기준이 되는 척도로 본 후로, 시계는 줄곧 보조수단의 역할만 해왔습니다. 시계 자체, 혹은 시간 자체에 대해서 성찰하는 기회를 좀처럼 얻을 수도 없고,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파스칼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를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그리다가 정녕 실제적인 현재를 내팽개친다'고 한탄했을까요. 아무튼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이지만, 쇼페인트와 교유하면서 굳어버린 제 생각들이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음에는 어떤 재미있는 것들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