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알라딘 우수리뷰로 뽑혀서 영어책 두 권을 사게 되었습니다. 고맙고 즐겁기도 해서 내친 김에 서재도 정리하고, 알라딘 가족들과 이야기도 나눌 겸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에도 형식이 있어야 하기에, 동화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동화는 처음 써보지만, 제가 쓰는 장르는 퓨전 동화입니다. 시사와 철학에 무게를 실어서 써볼 예정입니다. 호응이 괜찮아야 할텐데. 이 글은 원제가 '생명의 기원에 관하여'인데, 너무 거창해서 스토리의 주제에 맞춰 바꾸었습니다.

몽상가 쇼페인트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가 죽을 때도 곱게 죽지 못하는데, 도대체 사람이 태어난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쇼페인트는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베아트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자, 비로소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아트는 불행히 쇼페인트의 옆에 오래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쇼페인트는 처음의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고통을 주려고 누군가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구나 하는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베아트를 만나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나중에 맞을 더욱 커다란 고통을 위한 과정일 뿐이야. 사기꾼의 수법처럼 처음에는 조그마한 이익을 주다가, 걸려들었을 때 왕창 빼앗아 가는 것이 세상의 원리야.

쇼페인트는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세상도 가족도 국가도 나중에 벌어질 일에 비하면 사기꾼의 미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관계를 버리고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하염없이 걷다가 지치면 풀섶을 모아다가 한숨 자고, 또 걸었습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본능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힘들면 쉬고..

그러다가 그는 몹시 추운 땅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이제까지 밟아온 어떤 땅보다도 추운 곳이었습니다. 너무 추워 한발짝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쇼페인트는 추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마침 동굴이 있어서 거기서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동굴 앞에서 이상하게 생긴 두 사람이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쇼페인트가 가까이 온 줄도 몰랐습니다.

보르테르! 왜 자꾸 생명을 낳는 거야. 그의 생명이 다해서 죽여야 할 때 얼마나 소름끼치는 줄 알아? 그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마치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 같단 말야. 네가 반만 낳는다면, 나의 고통은 반으로 줄어들 거야.

그러자 듣고 있던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매르서스!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여기는 너무 춥지 않나. 나는 불을 때는 것처럼 세상에 하나의 불을 낳는 거네.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려고 한숨도 쉬지 않고 계속 생명을 만들어내는데, 만들어내면 만들어낼 수록 더 추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네. 새생명을 하나 낳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알기나 하나? 자네는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다가 숨통만 조금 건드려놓으면 되지만, 나는 내가 낳은 생명이 고통을 당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단 말일세. 힘들게 만든 불이 세상을 더욱 춥게 하고, 애써 살린 빛이 세상을 더욱 어둡게 할 때 쓰라림을 자네는 아는가?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말게.

쇼페인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히며 태어났고, 평생 동안 괴롭히고 있다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테니까요. 쇼페인트는 보르테르의 고통에 압도된 셈입니다.

보다 큰 기쁨과 보다 큰 슬픔 안에서 쇼페인트는 자신의 자리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졸속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름을 보면 아시겠지만, 쇼페인트는 쇼펜하우어, 베아트는 베아트리체, 보르테르는 볼테르, 매르서스는 맬서스를 패러디했습니다.

특히 보르테르는 볼테르가 역설적으로 풍자한 깡디드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역설적으로 풍자해서, '모든 것은 최고의 것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것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사실로 받아들인 의미입니다. 맬서스는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조정하기 위해 기근이나 전염병이 필요하다고 한 사람이라서 그런 이미지를 좀 땄습니다.


다음 호에는 '고이즈미 씨의 私的 총리 개념'이라는 동화를 연재합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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