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9] 최고의 조건은 '무조건'


“아빠, 밥 먹으면 TV 틀어줄 거야?”
“엄마, 착하게 있으면 또봇 사줄 거야?”

아이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가끔 ‘사탕’이나 ‘TV' 같은 조건을 제시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맛을 알아버려서 먼저 조건을 제시합니다. 아이들이 “~하면 ~해줄 거야?” 화법을 쓰는 까닭은 부모님이 먼저 “~하면 ~해줄게.”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비단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만 조건을 붙이는 게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조건을 붙입니다. 설거지를 하면 쓰레기는 당신이 버리라는 식의 대화는 일상에서든 주변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조건을 제시하는 말을 안 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가치가 자꾸 내려가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나빴거든요. 조건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조건에 익숙해진 일상생활이야 더 말할 것이 있을까요? 제가 오랫동안 외우고 다니는 스피노자의 말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복(至福)은 덕의 보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우리들은 쾌락을 억제하기 때문에 지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다. 
- 스피노자, <에티카>

이 말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최고의 조건은 역시 ‘무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실 때 조건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워낙 사회가 계산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지만, 가족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선비들은 만인의 존경을 받고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값어치’는 그냥 매겨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무조건’의 지혜를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 제나라에 노중련(魯仲連)이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조나라가 장평에서 진나라에게 패해 45만명이 목숨을 잃고 급기야 한단까지 공격을 당하는 위급한 상황을 만났는데, 노중련이 지혜를 써서 조나라를 위기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조나라의 왕족들은 노중련에게 땅(봉지)를 보내주기도 하고 천금을 내놓기도 했지만 노중련은 한사코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 사마천, <사기열전>, ‘노중련·추앙 열전’

노중련이 땅과 황금을 받았더라면 순식간에 조나라를 위해 부역한 값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거래’가 되지만, 노중련이 보물을 사양했기 때문에 ‘선비의 고결한 지혜’로서 찬사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시간이 늦어서 직원들이 퇴근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이집은 고민 끝에 시간이 늦을 때마다 소액의 벌금을 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벌금 제도를 시행하고 나서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는 부모님들의 수가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은 결국 벌금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는 부모님들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늦은 시간에 아이를 맡아주는 부모님들의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대신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간의 귀한 가치인 ‘감사’와 ‘미안함’(부끄러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한번 사라지고 난 가치는 다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오줌을 싸는 일, 숟가락을 잡는 일, 잠을 자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행동입니다. 부모된 자로서 이런 귀한 행동에 ‘값어치’를 매겨서야 쓰겠습니까? 부모와 자식이 거래 관계가 되어버리면 앞서 소개한 어린이집처럼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조금씩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자와 장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의 도인지도 모릅니다. 노자와 장자는 반복해서 이것을 강조할 뿐입니다. 

양자(楊子)가 송나라에 가서 여인숙에 묵었다. 여인숙에는 첩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미인이요, 하나는 못생겼다. 그런데 주인은 못생긴 첩은 위해 주고 미인 첩은 천대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주인이 말했다. 
“미인 첩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그가 아름다운 것을 느끼지 못하오. 못생긴 첩은 스스로 못생긴 줄 알고 있으므로 나는 그가 못생긴 것을 느끼지 못하오.”
양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기억해 두어라! 행실이 어질지라도 스스로 어진 행실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면 어디를 간들 사랑받지 않겠느냐?”
- <장자> 21-11

옛말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죠. 이 말을 응용하면 평소에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죄’를 ‘착한 일’로 바꾸면 “착한 일을 한 사람을 사랑하되, 착한 일은 사랑하지 말라.”가 되지 않을까요?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문제 중심적인 관점으로 대응하고, 긍정적인 상황에서는 사람 중심적인 관점으로 대응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민준이가 옷을 스스로 잘 입어서 TV를 틀어달라고 하면 “민준이가 옷을 잘 입어서 TV를 틀어주는 게 아니야. 옷을 잘 입으면 멋진 어린이야. 아빠는 멋진 어린이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고 싶어.” 이렇게 인과관계를 바꿔 버리면 ‘옷 입는 일 = TV 보기’의 공식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옷 잘 입은 값으로 받는 게 아니라 옷 잘 입는 아이를 예뻐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선물을 주는 것이지요. 어릴 적에 상장을 받으면 ‘부상’이 따라 나왔습니다. 나는 공책이나 연필 같은 부상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듯, 시간이 흐를수록 ‘부상’이 더 커지니까 주객전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상으로 자동차를 준다든지 현금을 준다든지 하는 현상이 많아지니까 사람들이 ‘염불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갖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상장에 새겨진 ‘뜻’에 즐거워했습니다. 물신화(物神化) 현상이 심해지다 보니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선물’이나 ‘조건’이 몸에 밴 현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을 조건의 방정식 속에 가두기보다는 뜻을 높여주고 아이들 자체를 치켜세워주는 가정문화를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무엇을 끈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어의 말은 무너져 가는 현대의 가정에 울림을 줍니다. 

자유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오늘날 효는 봉양하는 것을 말하는 모양이지만 개나 말도 모두 봉양은 한다.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 <논어> 2-7

자하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를 대하는 안색이 어려운 것이다. 일이 있으면 자제들이 노고를 맡으며 술과 음식이 있으면 어른에게 올리는데 어찌 이것만으로 효라 하겠느냐?" - <논어> 2-8

앞서 상장보다 부상이 커진 일을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바로 물질의 생리입니다. 물질은 욕망에 비례해서 커지는데, 재밌는 것은 물질은 한계가 있는 반면 욕망은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건’을 제시한다고 칩시다. 조건은 점점 더 커지고 세밀해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아이가 부모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요구할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러한 게임의 법칙을 만든 것은 부모님이기 때문에 나중에 후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건이란 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조건 뒤에 따라 붙는 것은 '물질'입니다. 물질은 조건 못지 않게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가정일수록 물질이 아이들 옆에 붙어 있기 쉬운데, 아이 옆에 붙은 물질은 아이의 영혼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원흉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게 무서운 경고를 내리는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미성년자 음주운전 사건 하나가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16세 소년이 친구들과 마트에서 맥주를 훔친 뒤 음주운전을 하다가 낸 사고로 4명이 죽고 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허용치의 3배가 넘었죠. 미국은 고소인의 가정환경 등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다각적으로 검토해 판결을 내리는데 아버지의 증언이 무척 의미심장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평소 아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줬지만 ‘부자병(Affluenza- 풍요로울수록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질병으로 스트레스, 감정 통제 불능 등의 증상 동반)’ 증상이 심해 통제가 어려웠다”며 선처를 호소했고, 최소 징역 20년 형이 예상된 재판 결과는 보호관찰 10년형 선고로 변경되었습니다. 재판부가 부자병을 인정한 것이지요. 

가족은 거래관계를 뛰어넘는 특수관계자입니다. 지금까지 조건과 물질로 소통하던 방식을 뒤로 하고, 부모와 자식이 새로 ‘관계맺기’를 하는 일인데, 쉬울 수는 없겠지요. 부모와 자식은 ‘조건’을 교환하는 ‘거래 관계’는 아니지만, 특별한 ‘계약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엇’으로 묶여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가(假)나라 사람이 도망친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와 자식을 묶는 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물질과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주세요. 

“임회(林回)라는 자는 나라가 망하자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도망쳤는데, 혹자가 물었소. 
‘돈으로 따진다면 갓난아기는 값어치가 작고 짐으로 따진다면 갓난아기는 거추장스러운 짐인데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도망치니 어인 까닭이오?’
임회가 답하길 ‘구슬은 이(利)로써 결합되는 것이지만 아이는 천륜(天倫)으로 묶여 있다’고 했소. 대저 이(利)로써 결합된 것은 궁핍, 재앙, 환난, 손해가 닥치면 서로 버리는 것이지만 천륜으로 묶인 것은 궁핍, 재앙, 환난, 손해가 닥치면 서로 거둬들이는 것이라오. 서로 거둬들이는 것과 서로 버리는 것은 거리가 먼 것이오. 또한 군자의 교류는 맑아 물 같고 소인의 교류는 달아 식혜 같소. 군자의 교류는 맑기에 친해지고 소인의 교류는 달기에 끊어지오. 돈이란 까닭 없이 모였다가 까닭 없이 흩어지는 것이오.“
- <장자>,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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