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3]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지 마세요


"주변에서 제가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별나다고 얘기를 한다. 주위 엄마들한테 질시 아닌 질시를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제 고집대로 가니까. 그러면서도 늘 겁이 났던 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혹시 내가 미처 포착 못해서 사장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한 어머니가 자식 키우는 어려움을 호소하셨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육아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입니다. 일단 주변 어머니 커뮤니티와 고립되기 쉽습니다.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육아를 하시는 부모님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애로사항입니다. "너, 미쳤어?" "아이 망치려고 작정했구나!"하는 주변의 힐난을 들어봤다는 부모님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태권도, 피아노, 미술, 영어 등 남들 시키는 사교육을 다 시키려고 하는 분들 중에서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별다른 대안도 잘 안 보입니다. 그런데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다면, 반드시 멀지않아 근심이 있게 될 것"(논어15-11)이라는 공자의 말처럼 아이를 그렇게 키웠을 때 어떤 결과가 찾아올 것인지 미리 생각해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치동 일대에서 논술 강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논술문을 수 천장 첨삭을 했습니다. 아이들의 논술문은 대부분 같았습니다. 글이란 것은 글 쓴 사람의 인격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갸 하는데, 그런 것들이 안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논술문을 보면서 나는 무척 슬펐습니다. 그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매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고, 많은 돈을 썼죠. 그래서 내신성적도 좋고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성적도 무척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력은 참으로 우수하지만 '그 이후'가 안 보였습니다. 자기 마음을 온전히 글로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전 세계의 교육시스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입니다. 교육열의가 유난히 뜨거운 대한민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기의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이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대학 교수들도 아이들이 쓴 리포트를 받고는 한숨을 내쉽니다. 기본적인 표현과 문법조차 어긋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한 갤러리를 운영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 서울의 대학에서 가끔 강의를 한다고 합니다. 글쓰기나 발표하기, 자기 생각 표현하기 등 할 줄 아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서 무척 답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한탄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들인 열정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못 배운 아이'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기막히지 않나요? 지금 우리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부모님들과 학교, 학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련의 모든 행동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같아지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이 같아지려고 애쓰면 자기의 글을 점점 쓸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같아지려는 노력'은 수천 년 전부터 동양에서 전해내려온 문화와 전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의 문화는 이단을 배척하는 문화, 즉 '같아지려는 노력'을 해왔던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이단을 멸시하고 다양한 생각을 가로막는 동양의 폐쇄적인 문화에서도 불구하고 동양문화를 빛냈던 인물들은 명확한 개성을 뽐내고 있습니다. 자부심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이죠. 맹자의 자신감 넘치는 한마디를 들어볼까요?

맹자가 말했다. "모든 사물의 이치는 나에게 다 갖추어져 있다. 자신을 반성하여 성실하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 <맹자> 13-4

이래서 '미워할 수 없는 동양'인가 봅니다. 다양한 것을 배척하면서도 자신 안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너와 나, 국가와 가정을 동일시하면서도 진실의 일면을 보여주고, 모순과 역설 투성이면서도 그 안에서 묘한 진리의 빛을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이 오묘한 동양의 빛에서 걸러낸 나의 두 영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두 사람은 동양에서도 상당히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맹자와 자공! 두 인물은 이른바 '정통'을 잇고 있지만 정통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두 인물을 비판하는 동양문화와 두 인물의 활약상을 보면서 나는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주자가 쓴 <맹자집주>의 서문에는 '맹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수록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비판은 '영기'(英氣)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뛰어난 기상과 재기(才氣)'라고 하지만, '나서기 좋아하는 성정'으로 해석됩니다.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과는 달리 격정적이고 거침 없이 말을 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맹자의 모습에 대해서 후세 선비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자가 쓴 '맹자집주'에 등장하는 여러 주석가들의 주석 안에는 맹자를 "영기는 일이 성사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평가합니다. 맹자의 영기가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역성혁명(易姓革命)'입니다.

제선왕이 재상에 관하여 물으니 맹자가 대답했다. 맹자가 물었다. "왕께서는 무슨 재상을 물으십니까?" 제선왕이 말했다. "재상이 다른가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성의) 귀족과 친척의 재상도 있고, 성(姓)이 다른 재상도 있습니다." "청컨대, 동성 귀족 친척의 재상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임금이 큰 잘못이 있으면 간(諫)하고, 이를 반복하여도 듣지 않으면 (임금의) 자리를 바꿉니다." 
왕은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다. 
"왕께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왕이 신에게 물어서, 신이 감히 올바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의 얼굴색이 안정된 뒤에, 다른 성의 재상에 관하여 물었다. 
"임금이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이를 반복하여도 듣지 않으면, 떠나갑니다."
- <맹자> 10-9
 
맹자는 임금 자리는 백성들이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왕의 재산도 권력도 무의미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왕들이 볼 때 무척 위험한 사상이죠. 그래서 <맹자> 책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금서로 지정돼 유폐되어 있다가 송나라 시대 주희에 의해서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무제 임금은 맹자를 싫어해서 방에 맹자 초상화를 걸어 놓고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맹자'의 별명은 '이빨'인데, 그만큼 거침 없이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것이 바로 '맹자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철학을 읽는 게 즐거운 까닭은 맹자는 맹자답게 살았고, 공자는 공자답게 살았고, 장자는 장자답게 살았던 모습을 보면 나도 '나답게'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논쟁적인 인물은 '자공'(子貢)입니다. 자공은 요새 말로 '믿고 쓰는' 공자의 제자이자 파트너입니다. 자공이 자금을 대면 공자는 유세를 하고, 공자의 브랜드는 자공의 사업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근원적인 관계는 스승과 제자입니다. 자공은 말이 많은 것과 투기, 요새말로 하면 '제태크의 달인'이었는데 그것이 주로 공자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논어>에도 공자가 자공을 비판한 대목이 나오는데 "사(賜 : 자공의 이름)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건을 사재어 투기를 하였는데, 그의 예측은 여러 번 적중하였다."(논어11-18)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에서도 무척 논란이 되는 편이 '화식열전'인데, '화식(貨殖)'이라는 말은 바로 논어의 이 구절을 붙인 것입니다. 자공에 대한 일화는 사마천 <사기열전> 중 '중니제자열전'에 수록돼 있는데, 전체 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사에서 비중이 큰 인물로 다뤄집니다. 사마천은 "자공은 말재주가 뛰어났지만, 공자는 항상 이 점을 꾸짖어 경계시켰다."(중니제자열전)고 기록했습니다. 제나라가 공자의 조국인 노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공자가 급히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자로, 자장, 자석이 나서기를 청했지만 공자는 거절했습니다. 자공이 나서기를 청하자 공자는 자공을 '노나라 구하기 대표선수'로 선출했습니다. 자공의 활약은 <오월춘추> 등에 기록돼 있는데 사마천의 평가를 보면 얼마나 큰 활약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공은 한 번 나서서 노나라를 보존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며,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강국이 되게 하였으며, 월나라를 제후국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였다. 즉 자공이 한 번 뛰어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각기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사기열전, 중니제자열전)
 
공자와 맹자가 활약했던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사적을 기록한 <국어>와 <전국책>에는 공자와 맹자 언급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가는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자공만큼은 어느 유세가 못지 않게 현실감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공에게는 주홍글씨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맹자와 자공을 무척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욕하는 자신의 성격을 승화시켜서 확고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거침 없이 말하는 성격을 학문적으로 승화시켜 <맹자>를 읽을 때는 사람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자공은 이상적이고 유약해 보이는 유학의 전혀 다른 면을 드러내 신선함을 더해 주는 인물입니다. 공자의 정신을 받드는 사람도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격변의 시대에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인물입니다.  내가 이 두 인물을 사랑하는 까닭은 나 역시 맹자와 자공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나도 영기가 있고 말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나설 때마다 부끄러웠고, 말을 하고 나서도 후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성격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기도 했지만, 그게 바로 '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나의 성격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서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은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었고, 말이 많은 성격은 많은 부모님들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글을 쓰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내 아이가 뭐 하나 잘 하는 것 없고, 행동 하나 하나가 맘에 안 든다면 아이와 함께 <치킨 마스크>(책읽는곰)를 읽어보세요. 자기가 그렇게 고치고 싶어하던 성격이 결국 자기를 지켜주는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성격이 있듯, 가족도 나름대로의 인생 스타일이 있습니다. 다른 가족과 같아지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남들이 헐뜯고 비판하는 성격이나 단점일수록 보듬어 주세요.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정성껏 닦아주다 보면 세상 하나밖에 없는 꽃이 자랄 테니까요.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이 나 다운 것이고, 나 다운 것이 인간적인 것입니다. 맹자와 자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자기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보여줬던 열정만큼은 위대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거나 글을 쓰게 해보면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남들과 같아진다는 것은 '나'가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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