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21] 동양의 유머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장난꾸러였습니다. 가끔 장난 때문에 크게 혼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강의를 길게 하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강의를 계속 하자 우리반 아이들은 애가 탔습니다. 몇 분 후에 선생님이 강의를 끝내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게임 셋(Game set!(ゲームセット : 경기종료)”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무척 화를 내시면서 나를 앞으로 불러세워놓고 뺨을 계속 때렸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뺨을 맞는 게 수치스럽기도 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속상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선생님의 강의를 모욕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붉혀졌습니다. 갑자기 학창 시절의 민망한 기억을 떠올린 것은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 때문입니다. 동양고전에는 일종의 ‘엄숙함’이 느껴집니다. 공자를 신격화하거나, 지나가는 한마디에 엄청나게 의미를 갖다 붙이는 등 공자의 제자라고 자부하는 학자들이 동양고전을 무척 무겁게 만듭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독자들이 동양고전에 어렵게 느끼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 훈장님께서 했던 농담이 생각납니다. 학문을 깊이 닦은 형제가 공부하던 시절 어떤 책의 글자가 파리 죽은 자국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훼손된 글자가 무엇인지 분석하면서 서로 책 한 권을 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판본을 살펴보니 형제가 주장했던 것과는 전혀 엉뚱한 글자였습니다. 논어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100번도 넘게 읽은 까닭도 바로 '인간 공자'를 바로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석가들의 주석을 떼어내고 논어를 여러 번 읽어보니 논어가 ‘사랑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이 제자들과 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달항의 촌장이 공자를 핀잔하여 말했다. “위대한 공자여! 박학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명성을 이루지 못했구나!” 공자가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할까? 말고삐를 잡을까 아니면 활쏘기를 해야 할까? 나라면 활쏘기보다는 그래도 말고삐를 잡겠다.”
- <논어> 9-2

동양고전에서 유머 코드는 무척 중요합니다. 유머 코드를 잘 잡고 번역을 한다면 일반 독자들이 동양고전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논어> 전반에도 공자는 유머를 잃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심하고 제자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제자와의 대화에서 일관되게 유머 코드가 흐릅니다. 공자는 다혈질은 아니지만 감정이 무척 풍부한 사람입니다. 감정이 풍부하다는 말은 자기 감정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고 세상 사람들과 호흡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제자가 같은 것을 물어봐도 대답일 달라집니다. 공자는 제자에 대한 애정이 큰 선생님이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에서 ‘골계열전’을 보면 동양의 유머를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놓지 않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입니다. 제나라의 위왕은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밤새도록 술 마시기를 좋아했지만 주위의 신하들 가운데 누구도 감히 충고를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당시에 차별대우를 받았던 데릴사위이자 키가 7척((161.7㎝)도 되지 않는 순우곤이 서슬퍼런 위왕에게 수수께끼를 던지며 정신을 차리게 만듭니다. 

순우곤이 위왕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 ‘골계열전’

정신을 차린 위왕은 전국의 관리들을 집합시켜 한 사람은 상을 주고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 뒤 병사들의 사기를 일으켰으며, 한달음에 병사를 일으켜 출정하자 제나라의 땅을 빼앗아 갔던 제후들이 깜짝 놀라 땅을 모두 돌려주었고, 그 뒤로 36년 동안이나 제나라의 위엄이 천하에 떨쳐졌다고 합니다. 제나라 위왕 이야기는 그래도 점잖은 편입니다. 초나라 장왕은 말을 극진히 사랑하여 말이 죽자 대부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역시 신하들이 벌벌 떨며 말 한마디 못한 까닭은 초 장왕이 “감히 말을 놓고간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명을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맹이라는 음악가는 농담 한마디로 왕의 엽기적인 행동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왕 앞에서 대부의 예는 너무 인색하니 마땅히 국왕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야 한다고 한걸음 더 나아간 거죠. 왕이 방법을 묻자 우맹은 해학으로 왕을 설득합니다. 

신은 청컨대, 옥을 다듬어 관을 짜고 무늬 있는 가래나무로 바깥 널을 만들고, 느릅나무‧단풍나무‧녹나무로 횡대를 만드십시오. 병사들을 동원하여 무덤을 파게 하고, 노약자들에게 흙을 져 나르게 하며, 제나라와 조나라의 사신을 앞쪽에 열을 지어 서게 하고, 한(韓)나라와 위(魏)나라 사신을 그 뒤에서 호위하게 하십시오. 사당을 세워 태뢰(太牢)로 제사지내고, 만 호의 읍으로써 받들게 하십시오. 제후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모두들 대왕께서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 사마천, <사기열전> 중 ‘골계열전’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요리사에게 말을 넘겨 세상 사람들 모르게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가정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만큼 권력관계와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갈등이 점점 커져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합니다. 그때 농담은 순식간에 감정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느 날 과음을 해서 집에 늦게 들어갔습니다. 택시에서 조느라 아내의 전화도 받지 못하고 들어가자마자 잤는데, 다음 날 아내의 표정을 보니 전날 내가 무슨 짓을 한지 알겠더라고요. 아이를 혼자 데려다주겠다는 아내를 극구히 따라나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을 걸지만 좀처럼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어제 일이 생각났는지 아내가 한마디 던집니다. 

“택시기사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봐야 정신 차리지?”

택시 유괴사건이 빈번했던 일을 가지고 돌직구를 던진 것입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유머를 던집니다. 

“잠시만요. 민준이 아빠, 따귀 한 대 맞고 가실게요.”

아이 엄마는 따귀를 때리는 시늉을 합니다. 나는 엉거주춤하면서 분위기를 따라 줍니다. 우리 부부가 나눈 대사는 KBS의 유명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유머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유머 프로그램이나 연예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게 중요합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면 가족 간의 공통 언어가 생긴 것입니다. 난처한 경우나 갈등이 있을 때는 적절히 엮어서 유머를 던질 수 있습니다. 유머도 단련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속을 썩히고 말을 안 들을 때 부모님들은 혼내는 대신 유머를 던졌습니다. 

“아이고, 크게 될 놈아. 얼마나 크게 되려고!”

혼내는 것보다는 농담을 던지는 게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을 줍니다. 유머는 타이밍이 생명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도 있지만,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은 상대에게 전달되니 남는 장사입니다. 자꾸 자꾸 시도하고 연습하다 보면 가끔 한 번씩 터질 때가 있습니다. 웃음이 함께 하도록 만드는 일은 집안의 가장에게 요구되는 사명이라고 하면 너무 엄숙한가요? 해학(諧謔)은 동양만의 덕목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해학의 대상이 있고, 날카로운 해학이 있습니다. 만약 해학이 없다면 폭력이 이를 대신할지 모릅니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해학’의 위대함에 대해서 인정했습니다. 

"파리의 웃음은 온 세상에 진창이 튀게 하는 화산의 아가리이다. 파리의 해학은 곧 불똥이다. 파리는 무수한 민족들에게 자기의 이상과 함께 자기의 풍자화들을 안겨 준다. 인류 문명의 가장 숭고한 기념물들이 파리의 빈정거림을 받아들이며, 그 장난질들에 자기네들의 불후성을 부여한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펭귄판 3권), 33쪽)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사이에 유머와 농담,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이 없어서 웃는 것도 웃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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