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7] 부모의 빠른 반응이 아이를 망친다


예전에 육아 초기에는 아이들 보기가 힘들고 귀찮아 TV를 자주 틀어줬습니다. 요즘은 같이 있을 때는 TV를 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침 잠이 많은 아이들을 깨울 때는 어쩔 수 없이 TV를 틉니다. 아침에 아이들 깨우는 거 정말 힘들어요. 자는 아이를 깨우면 짜증을 내거나 울기 일쑤입니다. 단잠을 깨웠기 때문이죠. 아침에 울면 짜증으로 하루를 시작하니까 조심스럽게 깨우려고 노력합니다. 아이 옆에서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아침 요리를 하고 있던 아이 엄마에게 견제 들어옵니다. 

“아이 안 깨우고 뭐해? 아이랑 자는 거야!?”

TV를 틀면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니까 잠자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납니다. 이제부터는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만화 나오다가 광고가 지나가면 저거 갖고 싶다가 사달라고 하죠. 그러면 대답이 궁해집니다. 안 된다고 하면 또 ‘아빠 미워!’ 하면서 삐치고, 그렇다고 다 사줄 수도 없는 이야기고. 가끔 슈퍼마켓에 갈 때도 또봇 장난감 사 달라, 풍선껌 사 달라 요구가 끊임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울고불고 할 때가 있죠. 어머니들 마트에서 그런 경험 있으실 거에요. 아이들 마트 바닥에 드러눕고 엉엉 울면서 사 달라고 떼를 씁니다. 옆에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빨개집니다. 활극도 이런 활극이 없죠. 할 수 없이 아이가 사 달라는 것을 사주는 부모님들도 있는데 난는 그럴 때일수록 사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노자를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이 조언입니다. 

거두어들이려고 하면 반드시 베풀어야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 해야 하고 장차 무너뜨리고자 하면 반드시 세워야 하고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줘야 한다. 이를 일컬어 보이지 않는 빛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고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날 수 없으며 나라의 이로운 그릇은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다.
- 노자, <도덕경> 36장

한 심리학자는 어떤 사람을 순식간에 불행해지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건네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이나 하듯 미국의 거액 복권 당첨자들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함부로 무엇인가를 사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사줘야 할까요? 그것을 사기까지의 과정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그 과정이 채워지면 사줘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되면 갖고 싶은 거 사줄 거야.’ 또는 ‘선행카드 10장이 되면 사주는 거야.’ 하고 룰을 정하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는 물건을 쉽게 생각하고 교만한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맹자는 흐르는 물에 비유했습니다. 

서자 : “중니(仲尼 : 공자)는 자주 물을 칭찬하면서 ‘물이로다. 물이로다!’ 하셨는데, 무엇을 물에서 취한 것입니까?”
맹자 : “근원의 샘물은 철철 넘쳐 흘러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움푹 들어간 곳을 채운 뒤에 흘러나가 사해에 퍼져 나가니,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이것을 취했을 뿐입니다. 진실로 근본이 없다면 7,8월 사이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배수로가 다 차도, 그것이 말라버림에는 서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정을 지나치면, 군자는 이를 부끄러워합니다.” 
맹자8-18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의 하나가 바로 맹자의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참 재밌는 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걸어갈 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머리이지만, 실제로 거기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발이란 말이죠. 하지만 머리는 사람만큼 이기적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발이 고생하는지 잘 몰라요. 물이 가장 먼저 닿고 채워지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님들도 자주 헷갈릴 때가 많지요. '아이가 공부하는 게 아니라 아이 마음이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이의 마음이 편안하고 집에서 존중과 사랑을 받아서 자존감이 채워지면 알아서 공부를 하는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상황논리와 욕심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아이를 불편하게 하거든요. 동양철학에 회자되는 선비들이 조신하는 까닭은 행동한다는 게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죠. 아이가 울 때 반응을 너무 빨리 하는 부모님,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덮어놓고 뜯어말리기부터 하는 부모님, 아이 또래 부모님이 학원이나 과외를 받는다고 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습니다. 강의를 할 때 어머니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자신이 찜해둔 책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하는 점입니다. 예컨대 “아이들이 마법천자문을 좋아하는데, 그것보다 한자 설명이 잘 된 책이 하나 있던데 사야 할까요?” 또는 “어린 아이들 글자 공부하기 재밌게 나온 책이 있다던데” 하며 물어봅니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물어보면 저는 일단 ‘사지 말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걸 사는 과정에서 일정한 품을 들여야 하는데, 그만큼 품을 들였다면 엄마가 대답을 알고 있어요. 질문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엄마가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품을 들이지 않았다는 말이거든요. 품을 들이지 않았다면 사는 것보다 사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죠.”

우리 집에서도 가끔 전집을 들일 때도 있고 교구를 마련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서 교육 프로그램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덮어놓고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고리타분한 일이죠. 하지만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충실히 지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효과를 알아보고 카페 검색해서 구매했던 엄마들의 반응을 살펴보거나 직접 물어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구매를 하면 후회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 없듯이, 흔들리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나도 역시 첫째 민준이가 네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손가락 빨 때, 둘째 민서가 어린이집에 가서 불평하고 친구들 괴롭힌다는 얘기 들을 때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부모의 마음이 느리냐 빠르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 때 부모가 바로 대응하는 것은 어쩌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기다려 주는 사람인데 아이와 같이 빨리 반응하면 아이는 더 불안해지거든요. 어떤 문제를 발견했다면 시간을 두고 그게 진짜 문제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 차분히, 하지만 객관적이고 철저하게 분석을 하면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행동하고 개입하는 것은 치밀한 계산의 결과이어야 하는데, 서둘러 행동하면 항상 대가가 따르더라구요. 부모가 아이를 관찰해서 어떤 문제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하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문제가 진짜 문제인지 검증하는 과정 또한 필요합니다. 
한 어머니에게 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국민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예전에 ‘주택은행’이 있었거든요. 그 어머니가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갔는데, 주택복권 당첨금 13억원 주인에게 당첨금 받아가라는 안내판을 봤대요. 그걸 보면서 ‘13억이 나한테 온다면?’ 하고 고민을 해봤대요. 어머니는 지금 당신능력에 13억원을 조리할 방법이 없고, 그 당시 집 사느라 대출받은 7천만원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13억이 자신에게 온다면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덜컥 들더라는 거죠. 
말이 나온 김에 ‘부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유가(儒家)를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입신양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비들은 그 폐해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 중에는 ‘돈 벌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꿈이 참 많습니다. 돈을 번다는 게 어떤 건지, 유명해지는 게 어떤 건지를 알려주는 장자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언젠가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장주(莊周)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후한 예물로 그를 맞아들여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주는 웃으며 초나라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千金)이라면 막대한 이익이며, 재상이라면 높은 지위이지만, 그대는 천자가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소? 그 소는 몇 년 동안 잘 사육되다 수놓은 옷이 입혀져 사당으로 끌려들어가오. 그때 가서 하찮은 돼지가 되겠다고 해봤자 어찌 그렇게 될 수가 있겠소? 그대는 빨리 돌아가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마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거워할지언정, 나라를 가진 자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평생 벼슬하지 않아 내 마음을 즐겁게 하고자 하오.’”
- 사마천, <사기열전> ‘노장신안열전’

우리가 만약에, 조금 더 불행해졌다면 ‘부자 되세요.’ 광고 카피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해요. 한 때 우리의 인사말이 ‘부자 되세요’였던 거 기억하시죠. 사람이 괜히 깜냥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니죠. 어떤 사람은 1억원을 운용할 수 있는 깜냥, 어떤 사람은 10억원 깜냥, 또 어떤 사람은 조 단위의 깜냠 등등이 있겠죠. 그 깜냥을 넘어가면 사람은 살 수가 없어요. 만져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만져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는 게 동양철학이죠. 깜냥은 한계가 있지만 욕심은 한계가 없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합의하는 행복과 부유함의 기준은 ‘균형’입니다. 우리 가족이 연간 얼마 정도의 수입을 목표로 하면 좋을까요? 내 아이가 자라서 연간 얼마 정도 벌면 좋으신가요? 끝으로 부유함과 행복에 관한 한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어렵지만, 망치기는 참 쉽습니다. 

<행복연구저널 The Journal of Happiness Studies>은 1년에 5백만 달러를 버는 사람들이 1년에 10만 달러를 버는 사람보다 눈에 띄게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돈이 행복지수를 증가시키는 경우는 오직 하나, 빈곤에서 벗어나 수입이 5만 달러 정도까지 오를 때뿐이다. 1년에 5만 달러 이상을 버는 경우, 재산과 행복은 제 갈 길로 간다. 
- 존 메디나, <내 아이를 위한 두뇌코칭>(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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