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6] 동양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을 찾다

길을 가다가 전화를 받습니다. 카드론 이자를 할인해주는 행사를 한다는 전화입니다. 이런 전화 요즘 너무 많이 와요. 텔레마케터도 사람이니까 최대한 정중히 거절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마지막 말에 내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번 달 30일까지 행사 기간이고, 그 후에는 더 높은 금리 적용되니까 생각해보세요. 

시간을 정해놓으면 시간이 자꾸 신경 쓰입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었는데, 평생토록 집안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남편에게 아내가 “빨래 좀 개켜줘. 7시까지 좀 부탁해.”라고 얘기합니다. 남편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7시가 임박했을 때 재밌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 번도 빨래를 개켜본 적이 없는 남편이 빨래를 개키고 있는 겁니다. 시간이란 건 참 신기합니다. 누구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24시간에 대한 감정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활용이 각자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만에 주말에 가족과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한 시간이 금방 가버리죠. 시간이 느리게 가다가 갑자기 빠르게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에 비해서 내 고향 제주도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사람들도 천천히 걸어가지요.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지하철 5호선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내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느린 시간에 있다가 무척 빠른 시간으로 옮겨 왔으니 내 몸도 그 리듬에 적응하는 거지요. 내가 동양철학을 보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자기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격이 굉장히 급하고 기분파에다 서두르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서두를 때마다 항상 넘어지고 빠뜨리게 됩니다. 동양철학은 인생 한두 해 살고 말 게 아니니까 마라토너처럼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라고 조언합니다. 

군자는 편안하게 머무르며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을 무릅쓰며 요행을 바란다. 
- <중용> 14장

무척 빠른 시간 안에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시간의 간섭을 엄청나게 많이 받습니다. 시간의 격한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흘리고, 헤어지게 됩니다. 유치원 버스 시간이 다 되었는데 아이가 밥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여유를 부리면 마음이 급해져서 아이를 혼내게 됩니다. 우는 아이를 보면서 후회를 하고, 그 날 아침은 아이나 부모나 모두 속상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죠. 시간은 결국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감정과 연결돼 있으며, 그것은 결국 성격과도 연결됩니다. 아이의 성격에 맞게 육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아이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보호해주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부모가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면 아이는 자기의 시간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의 시간에 머물지 못하면 사람은 무척 불안해집니다. 누구나 자기의 시간이 있죠. 나는 순임금이 보여준 ‘자기 시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순임금은 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것은 밭일을 할 때나 나랏일을 할 때나 순임금은 자기 페이스를 유지했다는 겁니다. 

맹자가 말했다. "순이 깊은 산중에서 삶에 목석과 함께 살고, 사슴과 멧돼지와 놀아, 그가 깊은 산속의 시골사람과 다른 것은 거의 없었다. 그가 한마디 착한 말을 듣고 한 가지 착한 행동을 보게 되자, 마치 장강과 황하가 터져 나오듯, 도도히 흘러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 <맹자> 13-16

요임금은 순임금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테스트를 해본 결과 나라를 물려줘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요임금은 그 자식 아홉 아들과 두 딸을 순임금에게 시집보내고, 백관들로 하여금 순임금을 섬기게 하고 나라의 곳간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순임금은 단지 부모님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사랑하지 않자 갈곳 없는 사람처럼 쓸쓸해 했다고 합니다. 순임금은 효(孝)를 상징하는 성인(聖人)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사람을 현혹시킬 만한 미녀와 재산과 권력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었죠. 동양의 이상적인 삶은 자족하는 삶입니다. 자족하는 삶은 그냥 마음을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방해와 간섭을 뒤로 하고 마음 편한 상태에서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부모님 역시 ‘자기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동양의 군자처럼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고, 아이의 삶 역시 자족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부귀한 처지라면 부귀한 대로 행하고, 빈천한 처지라면 빈천한 삶을 살며, 오랑캐 땅에 처하면 오랑캐의 법에 맞게 처신하고, 환난을 당하면 환난기의 방식으로 행동하니 군자는 어디를 가든 자족하지 않음이 없다. 
- 중용 14장

그러면 이제부터는 시간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자기 시간을 갖고, 자기 페이스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것을 이루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간은 감정과 연결돼 있다고 했는데, 사랑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은 사랑이 가득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줍니다. 하지만 사랑을 별로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항상 사랑이 부족해서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빨아들이지요. 아주 사무적인 남자, 요구만 하는 사람, 좀처럼 이야기를 섞기 어려운 사람, 딴지를 잘 거는 사람 등 주위에는 사귀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사랑의 채워짐’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부담스러운 캐릭터가 된 것이죠. 이런 사람들과 사귀어야 한다면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연민하고 사랑을 채워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사랑의 그릇이 크지 않아서 노력하면 충분히 채워줄 수 있지만, 이미 그 시기를 지나버리면 그릇은 커지고 사랑의 양이 적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랑이란 때로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도 하니까요. 사랑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채워지면 자기의 시간을 찾아가기가 수월해집니다. 맹자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과 관계를 해야 하는데, 공간과 시간의 제약까지도 극복할 수 있어야 자기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맹자가 만장에게 일러 말했다. “한 고을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한 고을의 우수한 선비와 사귀고, 한 나라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한 나라의 우수한 선비와 사귀고, 천하의 우수한 선비는 바로 천하의 우수한 선비와 사귄다. 천하의 우수한 선비를 사귐으로써도 부족하다면, 또 나아가 옛사람을 논한다. 그의 시(詩)를 외고, 그의 책을 읽고도, 그 사람을 모른다면 되겠는가? 그래서 그 세대를 논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나아가 옛사람과 친구로 사귀는 것이다.”
- <맹자> 10-8

내가 동양철학으로 육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시간‘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동양철학이라고 부르는 중국 철학은 통일 진나라 이전의 사상서들을 말하는데, 대개 2,000년도 넘는 책들입니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을 자기 시간 안에 불러들였으니 그 혜택은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에도 2,000년을 거슬러 오른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고전은 바로 시간이니까요. 나의 시간 안에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 들어온다면 거기에는 내가 애타게 찾던 시간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80년이라면 고작 80년의 시간 동안에 나의 시간을 찾기는 어렵겠지요. 철학이나 역사만 놓고 보면 2,000년 정도지만, 생물학이나 천문학을 보면 수십억 년의 시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단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족(自足)과 편안함이니까요. <장자>의 첫머리에는 시간과 공간의 수많은 층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나옵니다. 대붕(大鵬)이라는 새는 등 넓이도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남명이라는 땅으로 날아갈 때는 물결이 삼천리이며 폭풍을 타고 구만리 상공에 올라 여섯 달이 되어야 쉰다고 합니다. 그리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번 날면 늘릅나무와 빗살나무까지‘ 겨우 날아갈 수 있고, 간혹 도달하지 못해 넘어지기도 하는 매미와 텃새는 대붕을 비웃습니다. 사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고 말도 역시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란 나무가 있는데 오백 년을 봄으로 삼고 오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먼 옛날에는 큰 참죽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은 팔천 년을 봄으로 삼고 팔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그런데 팔백 년을 산 팽조는 지금껏 최장수라고 소문나서 사람마다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니 슬픈 일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작은 것과 큰 것의 분별이라 할 것이다.
- <장자> 1-2

인생에는 두 가지 시간 선택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 맘껏 즐기다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의 몸이 수십 수백억년 동안 살아간 우주와 함께 하고, 수천 수만 년 동안 살아간 인류와 함께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몸에 맞는 옷으로 입되 항상 자기와 다른 세계에서 다른 시간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인도’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공존한다는 말이 있는데, 인도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곳이든 아주 많은 시간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나의 시간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내 시간 안에 많은 시간이 있을수록 유리하겠지만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이 먼저 부모님에 맞는 시간을 선택하고 그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니까요. 이것이 바로 동양이 말하는 ’자족(自足)‘하는 삶의 비결이며, ’자기 시간‘을 찾는 방법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