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3. 동양철학을 육아서로 읽는 방법


지금까지 동양철학을 육아서로 읽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나도 10여 년 동안 동양철학을 읽으면서 육아서로 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5년 동안, 가족들을 만나러 다니는 2년 동안 ‘육아서’로서 동양철학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 첫째 민준이가 태어나고 나서 목욕시키고 밥도 먹이고 잠도 재우고 뒹구는 동안 노자의 철학을 몸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육체를 다스리는 넋과 정신을 다스리는 넋을 몸에 실어 하나로 하되 서로 헤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 숨을 오로지 하여 부드러워지되 젖먹이처럼 할 수 있겠느냐?

- 도덕경 10장


해본 사람들은 다 공감하는 이야기이지만 아이 재우는 거, 아이 먹이는 거, 아이랑 노는 것 중에서 하나도 만만한 게 없습니다. 하다못해 자장가를 불러줄 때도 정신을 집중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부릅니다. 아이랑 놀다가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내 들통이 납니다. 엄마 아빠와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얘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얘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는 얘를 사랑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동양철학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육아서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심리학자 매슬로가 노자 도교를 탐독하고 연구한 사례를 소개했는데 매슬로는 도교와 불교철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매슬로가 제안한 용어 중에서 B-인지(존재인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관찰할 때 대상이 관찰자에게 가지는 가치, 이해관계, 욕구나 좌절 등 여러 감정적인 자극과는 전혀 무관하게, 대상을 그 자체로서 정당하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하는데 B-인지를 존재인지, 자기초월적 인지, 이타적 인지, 객관적 인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심리치료사나 상담사가 자신을 찾아온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발휘하는 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란 굉장히 많은 감정이 연결돼 있는 관계이지만, B-인지를 익히면 감정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해주기도 합니다. 매슬로는 노자에게서 B-인지 개념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그러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B-인지는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수용적이다. 동양철학자들, 특히 노자와 도교 철학자들이 이와 같은 일종의 '수동적' 인지를 가장 잘 기술하고 있다. 

-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 206


매슬로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과 <심리학의 원리> 등을 쓴 ‘현대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역시 인도철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현대심리학의 고전적 반열에 오른 지성들이 깊이 공부한 만큼 동양철학은 심리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이 육아서로서 제격인 이유는 이야기의 소재가 무척 구체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동양철학이 직관적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 같다고 편견을 갖지만 동양철학, 그 중에서도 유학과 제자백가의 철학은 무척 현실적입니다. 유학은 중국 한나라의 공식 철학으로 선포되었고 조선시대의 국시이기도 했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학문이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무척 많았습니다. 경서 중에 <시경(詩經)>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중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통일이 되어도 몇몇 지역에서 들고일어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잘 다스려질 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중앙정부의 백성임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잘 다스려질 적에 중앙정부는 전국 곳곳에 채록관(採錄官)을 파견했습니다. 채록관은 백성들이 왕을 욕하는 말이나, 욕하는 노래 등을 모아다가 중앙정부에 보고하였고 중앙정부는 이를 정책에 집중적으로 반영했습니다. <맹자>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 그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늙고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홀아비라 하고, 늙고 남편이 없는 사람을 과부라고 하며, 늙고 자식이 없으면 독거노인이라 하고, 어리고 아비가 없으면 고아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에 궁핍한 백성으로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文王)이 정책을 착수하여 인정을 실시함에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우선했습니다. 『시경』에는, ‘부유한 사람은 살아갈 만하지만, 이 외롭고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가련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 맹자2-5


정치인뿐만 아니라 선비들 역시 철학을 펼칠 때 엄격하게 지킨 원칙이 있었습니다. 형이상학 같은 어렵고 추상적인 말을 하지 말고 당시 서민들이 쓰는 언어와 상식 안에서 철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서문에는 선비들이 따르던 철학하기의 원칙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설립한 취지를 보면) 학교의 교육 내용은 모두 지도자가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체득한 나머지에 근거하고, 서민들이 날마다 쓰는 평범한 일상의 용어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 <대학> 서문


일반 서민의 생활에서 쓰는 용어를 많이 쓴 사례는 동양철학의 책 곳곳에 나옵니다. 맹자는 자신이 설파한 핵심 개념인 사단(四端 : 인의예지(仁義禮智)), 그 중에서도 인(仁)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갓난아이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고 있는데 우물가에서 어떤 아이가 기어서 우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봤다면 그 사람이 사채업자이든 살인범이든 불량배든 간에 아기를 구해 놓고 본다는 것이죠. 그 사람이 아이를 구하는 것은 아이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도 아니고, 아이를 구해준 보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중용> 역시 핵심 개념인 ‘중용’을 설명할 때 ‘부부’ 이야기를 합니다. 


어리석은 부부라 하더라도 도를 알 만큼 뻔하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다 헤아리지 못하며, 못난 부부도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쉽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다 해내지 못한다. 

- 중용 12장


동양철학에서 육아서의 가능성이 보이나요? 부모님들에게 동양철학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까지 2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가지고 놀이를 하면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랑을 확인해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만 전념하다가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강의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인문학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주 천천히, 부모님들의 눈빛을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건네는데 반응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마치 꼭 들었어야 하는 이야기를 뒤늦게 배운 것처럼 인문학 강의의 흡수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어머니들은 내 인문학 창고에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압박했습니다. 다 꺼내놓았지만 동양철학만큼은 꺼내지 않았습니다. 육아와 동양철학은 얼핏 보면 별 연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심리학과 철학, 사회학, 문학 쪽에서 육아 이야기를 꺼내놓다가 간헐적으로 몇몇 구절을 꺼냈을 때 뜨거웠던 반응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동양철학을 육아와 연관시켜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강의가 끝나고 나면 어머니들의 책상에는 논어책이나 노자 책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대학 때 역사학을 전공해서 지금은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엄마는 “선생님 때문에 20년 만에 사서삼경 책을 꺼내들었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논어나 노자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몇 권 소개해주면 다음 강의에는 그 책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들이 냄비 근성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구매하는 것도 소비인 만큼 꼼꼼히 따져보고 사는 어머니들이 동양철학 책을 기꺼이 구매해서 읽는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동양철학 책을 어떻게 육아서로 읽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아주 쉽습니다. 마음속에 아이들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됩니다. 사람의 두뇌는 참 신기한 물건이어서, 마음속에 하나의 대상을 생각하면 내가 잠을 자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그 대상에 매달립니다. 내가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논어책을 읽으면 벌써 두뇌는 동양철학을 육아서로 읽을 준비를 마쳐 놓습니다. 저 역시 이 방법을 통해서 육아에 관한 동양철학의 구절을 하나하나 건져냈고 부모님들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예컨대 공자가 제자와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서도 가족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논어 구절은 훌륭한 ‘가족 강의’가 됩니다. 한 구절만 응용해 봅니다. 이른바 ‘너나 잘하세요’ 정신입니다. 


자공이 다른 사람을 비교하며 논평하자 공자가 말했다. "사야, 너는 나보다 뛰어난가 보구나! 나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단다.“ 논어14-31


자공은 공자가 아끼는 제자 중에서 안연 다음으로 비중이 큰 제자입니다. ‘사(賜)’는 자공의 이름입니다. 뒷말과 험담은 우리에게 무척 익숙합니다. 부모 강의를 가면 배우자에 대한 성토, 아이들에 대한 성토를 하는 부모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은 무척 쉽지만, 그 점을 고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아이가 맘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그 점을 계속 늘어놓을 게 아니라 하나라도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면 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노력 끝에 아이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지요. 혹시 내가 가족의 단점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는지 이 구절을 통해서 돌아볼 수 있습니다. 동양철학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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