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11. 설득 당하는 기술

 

 

"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땐 느리게 가는 것에 개의치 않았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다른 부분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빨라졌었나 봐요."

아이를 키우는 한 어머니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어머니가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육아서와 아동심리학, 심지어 동양철학에 나와 있는 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면 그것은 신(神)이겠죠. 사람이니까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마음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공자의 한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는 그의 마음이 석 달을 두고 인을 어기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도달할 따름이다."
- <논어> 6-6

아이가 심한 장난을 하면 부모님은 참지 못하고 아이를 혼냅니다. 때로는 크게 혼낼 때도 있습니다. 혼내 놓고 나면 맥 없이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후회를 합니다. '내일은 좀더 사랑해줘야지' '다음에는 좀 더 참아야지' 하지만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어느새 아이를 혼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동양철학에서는 '당연한 마음의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맹자가 그 과정을 자못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우산(牛山)의 나무는 처음에는 무성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이 큰 나라의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도끼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찍어대니, 무성하게 자랄 수가 있겠는가? 밤낮으로 잘라는 바요, 비 이슬이 적셔 주는 바라, 싹과 가지가 돋아남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소와 양이 또 들어와서 그것을 뜯어먹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이 그 민둥산을 보고서는 처음부터 재목이 없었다고 여긴다면,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라 하겠는가?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도,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으랴? 그 양심(良心)을 방치해 버리는 것은 역시 나무에다가 도끼를 대는 것과 같다. 하루 하루 이를 찍어내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길러지는 양심과 새벽의 기운은 그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람과 서로 근접하다는 것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낮에 하는 행위가 또 이것(양심과 새벽기운)을 어지럽히고 없애버린다. 이것을 어지럽히는 일을 반복하면, 밤에 길러지는 기운은 존재할 수 없다. 밤에 길러지는 기운이 존재할 수 없다면, 그는 금수와 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가 금수와 같은 것을 보고서는 일찍이 재질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성정(性情)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에 배양함을 얻으면, 어떤 사물이나 자라지 않음이 없고, 만약 그 배양함을 잃으면, 어떤 사물이나 소멸하지 않음이 없다. 공자는 '잡아주면 살아 남고, 버려 두면 없어진다. 출입에 일정한 시기가 없으니, 그 고향을 알지 못한다.'하셨으니, 바로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 <맹자> 11-8

맹자는 모든 사람들이 밤과 새벽에는 맑은 기운이 충전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밤의 기운'[夜氣]라고 합니다. 하지만 낮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어지러워진다고 합니다. 아이를 야단칠 때는 미안한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다가 밤에 잠을 자거나 새벽에 깨서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차분히 전날 있었던 일을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종의 딜레마가 만들어집니다. 밤에는 충전되고 낮에는 방전되는 맑은 기운은 때로는 충전이 안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맑은 기운이 넘쳐서 어지러운 낮에도 튼튼하게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LTE 스마트폰은 밤에 충분히 충전을 해도 건전지가 빨리 떨어집니다. 그래서 낮에도 틈이 날 때마다 충전을 해줍니다. 마음의 맑은 기운도 똑같은 방식으로 충전할 수 있습니다. 틈틈이 시간의 속도를 줄이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거죠. 충전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단 한번의 충전으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욕심이죠. 마음이 빨라지려고 할 때는 의식적으로 느리게 지연시키고, 주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서 흔들릴 때는 그것을 통해서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을 생각하십시오. 바야흐로 '영업의 시대'에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광고, 그리고 여러 매체들이 하는 설득술을 이겨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고대의 선비들이 생활했던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설득해야 했고, 죽지 않기 위해서 변명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공자는 급한 물살처럼 흘러나오는 설득의 말에 대해서 무척이나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자장이 현명함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물이 젖어들듯이 하는 은근한 참언이나 피부를 찌르는 듯한 하소연이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현명하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물이 젖어들 듯이 하는 은근한 참언과 피부를 찌르는 듯한 하소연이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멀리 내다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논어> 12-6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설득과 피부에 몹시 와 닿아 마음이 넘어가버리는 하소연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교구나 전집을 파는 곳에서 설명을 좀 들어 보면 '이 사람들이 목숨 걸고 영업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책을 쓰고 책 팔러 다니는 영업자나 다름 없지만, 이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 안일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부모님들이 설득이 안 되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공자는 이 상황에서 무척 절묘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지금부터 '설득 당하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럴 듯하게 꾸민 달콤한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그르친다."
- <논어> 15-2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듣기 좋은 말이나 잘하고 보기 좋게 태도나 꾸미는 자들 중에는 인한 이가 드물다."
- <논어> 1-3, 17-17 (2회 나옴)

유명한 교언영색(巧言令色)에 관한 구절이 논어에는 여러 번 나옵니다. 유가철학은 본질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이 지루해합니다. 춘추시대 유세가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국어(國語)>라는 책과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전국책(戰國策)>이라는 책에 보면 제자백가와 각종 유세가들이 수도 없이 나오지만 공자와 맹자 같은 유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설득술로서 유학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듣기 좋은 말'[巧言]이나 이단(異端)을 많이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비해 노자와 장자는 유가와 제자백가 학자들이 세워 놓은 원칙들을 모조리 부정(不定)해버리는 '부정의 철학'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매력을 얻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동양철학의 말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전쟁'을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생각에 따르면 부지불식간에 설득이 된다면 그것은 옳은 방향이 아닙니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동의를 하면 잘 된 결정입니다.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구 영업하시는 분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귀신에 홀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지 않으셨나요? 그렇게 결제하고 나면 본전 생각이 자꾸 나서 아이를 더 채근하게 되죠. 그 다음 장면은 여러분도 예측이 될 것입니다. 맹자는 "마음속이 기뻐서 진실로 복종한다"(맹자3-3)고 말했습니다. 정말 좋은 설득은 듣는 사람이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나도 모르게 설득이 되어 버리는 방식의 설득은 오래 가지 못하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모든 좋은 판단에는 '나'라는 요소가 들어 있고, 그것이 동양철학이 줄곧 이야기하는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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