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우리 부모님 용돈 드리면 어떨까?"

어엿한 직장을 다니는 남편은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에 제안을 합니다. 그래도 지금 수입으로는 한달이 빠듯해서 더 이상 뺄 곳이 없는데 아내는 속 좋은 소리를 하는 남편이 답답합니다. '아직 우리 살림이 나아지지 않았는데 조금 기다렸다가 용돈 드리자'고 달래도 보고 설득도 해보지만 남편은 막무가내입니다. 결국 이 문제로 다투다가 서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며칠 후 아이가 평소 무척 갖고 싶어하던 교구가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육아 카페에 50% 할인을 해서 구매를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거절합니다.  지난 번에 분명히 구매를 하자고 협의했고 예산도 만들어놨는데 황당합니다. 아내는 지난 번 부모님 용돈 건으로 이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치사스럽다고 치를 떱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일상다반사를 동양철학에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설명합니다. 

자공이 여쭈었다. "사와 상은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모자라지." "그러면 사가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이나 같다."
- <논어> 11-15

동양철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절이라 그런지 중요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공자는 한탄하며 "도가 펼쳐지지 않는 까닭을 이제 알겠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구나. 도가 밝게 드러나지 못하는 까닭도 이제 알겠다. 어진 이는 지나치고 못난이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구나."(중용 4장)라고 합니다. 아내는 지나치게 사정을 잘 알고 남편은 사정에 어두울 때 서로 스트레스가 커집니다. 마치 도가 펼쳐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는 답답하고 남편은 기분 나쁜 나머지 둘 다 손해 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남편과 아내 사이에만 이런 갈등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는 더 심합니다. 자기가 해달라는 것을 거절당했을 때 아이는 이유를 막론하고 떼를 쓰거나 마구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경우의 공통점이 느껴지시나요? 이때도 역시 엄마가 이후 사정을 너무 뻔히 알기 때문에 사달이 생깁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까닭은 엄마는 너무 앞서가고 남편과 아이들은 너무 뒤처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나오더라도 상대방의 동의 과정을 통해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부정적인 감정이 격화돼 좋은 관계를 저해합니다. 아내와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짜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괴롭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백 걸음이 아니라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동양철학에서 조언하는 대안은 '어리석음'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의 지혜로움은 누구나 따를 수 있으나, 그의 어리석음은 따를 수가 없다."
- <논어> 5-20

지혜를 배우기는 쉽지만 어리석음을 배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소풍 가면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소풍이 끝나고 나서 사진관에 일회용 카메라를 맡기면 필름을 현상해 줍니다. 당시에는 필름 한 장 현상하는 데 100원~150원을 받았습니다. 그때 내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그땐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내 사진을 찍어주면 100원이든 150원이든 꼭 주라고 하면서 내가 사진을 찍고 건네줄 때는 사진값을 한푼도 받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어릴 적에 왜 그렇지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되잖아요. 너무 이상하고 합리적이지 않고 어리석게 보이잖아요. 학창시절에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철이 좀 들고 나서는 이해가 되더라구요.  '너는 받지 말고 꼭 줘라.'는 말씀은 사실 미련한 거죠. 하지만 미련한 것 안에 오묘한 진리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 서당 훈장선생님이 해주신 중국여행 다녀온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모임에서 단체로 중국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중국 현지에서 입국 신청서를 작성할 때 마을 이장님이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 쓰는 거예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한자로 제 이름도 못 쓴다는 소문이 돌까봐 두려워 이장님은 서당 훈장님께 한자를 물어봤습니다. 훈장님은 한문을 수십 년 동안 했으니 물어봐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 때 훈장님의 답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훈장님은 그 자리에서 이장님의 이름을 써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머니에서 훈장님의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보여 드렸습니다.

"주민등록증에 나와 있어요."

훈장님 당신도 당장 생각이 안 나서 주민등록증 보고 썼다면서 이장님을 안심시켜주셨습니다. 이장님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무사히(?) 입국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나이 드신 분들이라면 '어리석음의 지혜'를 저마다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어르신들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죠. 사진값을 받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당장 100원을 손해 보더라도 사진 값을 안 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을 말씀하신 것이고, 주민등록증을 꺼내 이장님을 보여드렸던 훈장님은 이장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배려해 주신 거죠. 동양에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거스르는 행동을 '역린(逆鱗)을 건드린다'고 부릅니다. 용에게는 역린이라는 비늘이 있는데 이것을 잘못 건드리면 건드린 사람을 반드시 물어 죽인다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삼국지에 나온 유명한 계륵(鷄肋) 사건도 '어리석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조의 부하인 양수(楊修)는 조조가 무심코 내뱉은 "오늘 암호는 계륵(鷄肋)으로 하게"라는 말에 직속부하들에게 철군 명령이 있을 것이니 짐을 꾸리게 했습니다. 먹자니 애매하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고기의 갈비뼈처럼 상황이 꼬인 답답한 심경을 포착한 것이지요. 평소 양수의 명석한 두뇌와 재치를 사랑하면서도 한편 시샘을 느끼던 조조는 양수가 자기 마음을 이번에도 귀신처럼 꿰뚫자 불같이 노하며 군심(軍心)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목을 벱니다. 양수가 화를 입은 것은 너무 똑똑했기 때문이죠. 장자는 미치광이 접여라는 인물을 통해서 '어린석음', '쓸모없음', '헛똑똑'에 대해 성토합니다. 

공자가 초나라에 가는데 초나라 광인 접여가 문 앞에서 놀다가 말했다. "봉이여! 봉이여! 어쩌다가 이처럼 덕이 쇠락했는가? 오는 세상은 기다리지 말고 가는 세상은 좇지 말라!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은 안민(安民)하지만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안생(安生)한다네! 오늘날 시절은 형벌을 면할 자 드무니 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실을 줄 모르고 화는 대지보다 무거운데 피할 줄 모르네! 아서라! 그만두게! 남을 덕으로 다스리는 것을! 위태롭다! 위태롭다! 땅에 금을 긋고 달리네! 미혹된 가시밭길! 나의 가는 길 해치지 말라! 우리가 가는 좁은 길! 우리 발을 해치지 말라! 산(山) 나무는 스스로 적을 부르고 등잔불은 스스로 몸을 태운다. 계피는 먹을 수 있으므로 베이고 옻은 쓸 수 있으므로 쪼개진다. 사람들은 모두 유용한 것을 쓸 줄 알지만 무용한 것은 쓸 줄은 모르는구나!"
- <장자> 4-13

노자도 역시 "알면서 모르는 것이 최상이요 모르면서 안다 함이 병이다."(도덕경 71)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묘한 어리석음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남편이 부모님 용돈을 드리겠다고 하면 남편의 뜻을 존중하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의견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뜻이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꺾는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아내 입장에서 볼 때는 '어리석은 결정'이지만 남편은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서 두고두고 가져가기 때문에 나중에 아내의 발언권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반대의 상황에서도 성립합니다. 만약 아내의 의견이 최선이었다면 당연히 결과도 그렇게 나오겠죠. 아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내복을 입고 가겠다고 하면 아이랑 싸울 게 아니라 내복을 입고 가겠다는 마음을 존중하되 내복을 입고 갔을 때 아이들이 놀리거나 추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엄마가 민준이 사랑하니까 민준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 이것 역시 엄마가 봤을 때는 '어리석은 결정'입니다. 그 결정에 대한 결과를 아이가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다음에는 엄마의 말을 더 귀담아 듣겠지요. 둘째 민서 같은 경우도 앉아서 우유를 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편하게 먹어도 좋은데, 바른 자세로 앉아서 먹지 않으면 우유를 흘릴 거야.'하고 경고를 해줍니다. 일어서서 먹거나 돌아다니면서 먹으면 분명히 우유를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예전에 이야기했던 것을 환기시키면 아이는 알아듣습니다. '어리석음'을 이용하는 전략은 엄마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엄마는 한 박자만 기다리면 됩니다. 이 한 박자를 기다리지 못해서 그 동안 엄청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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