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로 중용을 풀다 이한우의 사서삼경 2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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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해방 - 주자학의 세계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주자(朱子, 주희(朱熹 ; 1130~1200)의 존칭) '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주희(朱熹)는 중국 남송 시절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는데 성리학을 확립시켜 유학사와 동아시아 사상사의 불후의 영향을 미쳤다. 

특히 주희가 맹자를 거의 천 년 만에 복권시킨 사실은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맹자는 역성혁명을 주장하는 등 권력자가 불편할 만한 말을 많이 남긴 죄로 왕들에게 금서로 낙인 찍힌 이래 주희에게 복권되기 전까지 1000년 가깐운 세월 동안 묻혀 있었다. 주희가 완성한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주석서 사서집주는 1313년부터 1912년까지 사서는 중국의 학교 교육과 관료 선발시험에서 공식적인 기본 교재이기도 했다.

나는 운 좋게 한학자 선생님을 만나 3년간 사서를 교육받았다. 교재는 주자집주였다. 동양철학 초년에 공자와 맹자를 직접 원문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주희의 집주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주자학의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 

10년 정도 주자의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다 보니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 빠져들수록 주자에 대한 내적 저항심이 커졌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자를 건너 뛰거나 무시하는 전략밖에 없었다. 주자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려면 주자를 넘어서야 한다. 즉, 주자가 펼친 철학 세계를 스스로 깨부수고 그 자리에 나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러던 차에 이한우 기자의 <논어로 중용을 풀다>(해냄)을 접하게 되었다. 이한우 기자는 학부 때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 석사와 박사를 철학으로 전공했다. 현재는 <조선일보>의 문화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양철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는 최근 조선사를 되돌아보며 왕들의 고뇌와 정신을 서술한 '군주열전'과 사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야심차게 실천하며 <논어로 논어를 풀다>, <논어로 중용을 풀다>의 사서(四書 :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저자가 사서 중에서도 '논어'를 축으로 삼은 까닭은 사서 전체가 공자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서에는 공자가 들어 있지 않다. 

다만 공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를 열거하면 논어, 중용, 대학, 맹자 순서이다. 공교롭게도 저자의 집필 순서도 <논어로 논어를 풀다>(2012.5), <논어로 중용을 풀다>(2013.2) 순이다. 나머지 두 책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주자는 네 권의 책 다음으로 공자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네 권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서술했으므로 공자와 가장 근접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는 공자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인물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피비린내 나는 학문과 철학의 전쟁 이야기다. 내가 무려 10년 동안이나 주자의 통치하에 살았다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인 애로사항을 말하는 게 아니라, 동양철학에 대한 정신적 자유가 묶여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학문은 권력이며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치르는 전쟁이다. 11세기 중국의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도교의 철학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창하면서 거의 1000년간에 걸쳐 실추되었던 유학의 학문적·사상적인 우위성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주자는 성리학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강력한 '루키'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학문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용어는 '관학(官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생 동안 대부분의 벼슬을 사양하고 말년에 고위직에서 파문되고 중상모략을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학문체계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정책의 도덕원칙으로 삼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저자는 "주희는 철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다"라고 주장한다. 나를 일깨운 한마디다. 한 대목을 소개한다.

<논어>에 등장하는 지(知/智)는 대부분 사람을 아는 것[知人]으로 풀이해야만 문장의 생생한 의미와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나곤 했다. 그런데 주희의 집주는 오히려 지를 지인(知人)으로 해석하는 데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그의 집주에 의존해 <논어>를 읽어갈 경우 <논어>는 한 덩어리의 책이 아니라 듬성듬성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잠언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 <논어로 중용을 풀다>, 259쪽

저자는 주희에 대한 비판의 결론에 "주희의 도움을 받되 끊임없이 그의 집주를 의심해 가며 공자의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말을 듣기 전에 나는 막연하게 주희의 주석을 경계하기 시작해 아예 사서의 원문만 반복해서 보곤 했다. 저자의 말을 통해 비로소 주희에 대한 내 입장이 맑아졌고 나는 해방감을 맛봤다.

두 번째 해방 - 현재성에 대한 치열한 접근

동양철학이나 동양 고전의 번역문을 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 '당대성'이다. 현재의 입장에서 당대의 일을 재단하지 말라는 내용이 골자다. 사서뿐 아니라 삼국지 같은 고전문학의 번역문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보이는데, 특히 이문열의 삼국지에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따지고 보면 주자 역시 남송의 사고방식으로 공자를 재단하지 않았는가? 

<논어로 중용을 풀다>를 읽기 시작할 때는 저자가 서양철학을 근거로 동양학을 지나치게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 역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저수지 가운데 이상한 둑을 설치해 서로 흐르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학문과 철학, 지적 결실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쳐질 제물이자 영양분이다. 이런 관점으로 동양철학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자를 피해 가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자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신성시했던 것 같다.

주자가 철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라는 주장은 그 동안 품었던 모든 심증들을 정리해 주는 명쾌한 말이다. 주자뿐만 아니라 공자와 장자를 제외한 중국의 모든 철학자들은 필연적으로 주석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는 스승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금기하는 문화가 있다. 이의제기를 하면 이단으로 치부하여 파문하는데, 파문이란 생계의 끊김, 즉 사실상 '지적이면서 동시에 물리적 처형'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강경한 압력 속에서 동양의 지성인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아류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현대의 지성인들도 '비판정신'을 잊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서양철학을 주무기로 동양철학을 다시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주자는 <대학>의 서문에서 불교 등을 비판하며 '허무적멸지교'(異端虛無寂滅之敎)라는 용어를 썼다. 하지만 주자가 사용하는 개념은 불교에서 차용한 것이 상당히 많았다. 사실상 불교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타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스승들에게도 적용했어야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자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주석가이거나 언어학자로 봄이 적당하다.

저자의 책을 읽고 저자를 직접 찻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저자가 한 말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동양철학이야말로 심리학 중에서 심리학이다"는 말이다. 동양철학을 대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 현대적이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공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저자는 자신이 닦은 모든 학문과 경험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 중에서도 서양철학은 아주 중요한 자원이었다.

나는 저자로 인해서 주자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만, 결국 저자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사이에 있는 임시 둑이 무너졌다는 것은 앞으로 읽고 공부해야 할 철학의 영역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로부터 받은 두 가지 도움은 어쩌면 거대한 정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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