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새정치가 무엇일까?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ㅡ <안철수의 생각> 30쪽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매년 제기한 화두는 '새정치'였다. 새정치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낯익은 용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모호하거나 이상적이거나 사사로운 이익에 부합되는 미사여구라는 아름답지 못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후보직을 사퇴했으므로 이름만 표기)가 이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할 때부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할 때까지 나름대로 분석을 했는데, 이제야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안철수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고스란히 안길 때까지, 대선이 마감될 대까지 달려갈 것이다. 


공자는 정치인의 기본 덕목으로 "어눌한 말과 민첩한 실천"을 꼽았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면서도 실천은 민첩하게 하려고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실제로 공자는 눌변이었고, 공자를 사숙한 맹자는 달변이었다. <논어>와 <맹자>를 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논어>는 감정적 공감을 더 일으키는 반면, <맹자>는 논리적으로 납득이 더 잘 된다. 어눌하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안철수가 지금까지 사용한 말을 잘 분석하면 기존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말과 달리 일반 국민의 언어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 : 사랑합니다 등) 눌변이 중요한 까닭은 뇌과학에서도 증명이 되었다. 


두뇌의 시상(변연계의 일부로, 정보의 많은 부분이 모이는 부위)은 두 개의 독립적인 신경 통로로 정보를 보낼 수 있는데, 정보가 전두엽을 통해서 편도체로 가는 '윗길'이 있고, 곧바로 편도체로 가는 '아랫길'이 있다. 윗길은 전두엽을 통해서 가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고, 아랫길은 전두엽이 자극(정보)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기 전에 곧바로 공격-도피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최성애, 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해냄) 참조) 논리적으로 치밀하고 전략적인 메시지는 전두엽을 거쳐서 가기 때문에 달변은 국민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다. 즉 정치인, 언론인, 학자, 여론조사 전문가 등이 달변에 해당한다. 다만 엘리트 집단도 눌변의 메시지(예 : 우리가 남이가?)를 만들어 대중에게 퍼뜨리기도 하지만, 일상 그 자체가 눌변인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그 다음에는 안철수 새정치의 핵심중의 해심인 '민첩함'이다. 컴퓨터만큼은 아니지만, 대중의 반응에 대해 빠른 속도로 처리하면서 평소 가졌던 소신과 미래의 구상을 순식간에 융합해서 대중의 언어인 '눌변'으로 표현하는 것은 안철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안철수는 미래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제안한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종합해본 후 정반합을 통해 현실안을 내놓는 것이다. 엘리트 달변가들은 <안철수의 생각>을 마치 공약집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안철수 본인이 스스로 이야기했듯 이 생각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을 들어보고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한다는 취지가 보인다. 


기존의 정치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메시아로 자신을 이미지화한다. 권력의 정점에 스스로 서 있으면서, 국민은 명예직으로 여긴다. 하지만 안철수 식 새정치에 따르면 새로운 세상은 국민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정치인은 다만 국민의 생각이 소외되지 않고 반영될 수 있도록 필터 역할을 한다. 정치학으로 보면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나마 이를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은 안철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안철수의 생각>,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와 대통령후보 사퇴문 전문을 보면 '안철수 식 새정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 사퇴문로 본 '안철수 식 새정치'


안철수의 대통령직 사퇴는 남은 두 후보를 남루하게 만들어 버렸다. 


안철수는 "저는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 할 것을 선언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로서 안철수는 두 번째 양보를 한 셈인데,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양보한 것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게 양보한 것을 비슷하게 보는 것은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에게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말은 '백의종군'과 같이 안철수의 깊은 속내가 담겨 잇는 핵심 문장이다. '새 대통령=새 정치'라는 공식은 더 이상 없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새 정치의 압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새 정치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미국의 정치사를 볼 필요가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는 책에서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를 역설했다. 보수대통령, 진보대통령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라는 시대적 맥락이 중요하며, 미국의 정치사는 시대의 맥락이 이끌어왔다는 게 크루그먼의 분석이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 전대통령은 경제적인 이슈에서부터 복지와 세금에 이르기까지 분명 지미 카터뿐 아니라 리처드 닉슨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을 펼쳤다. 클린턴은 보수의 시대의 진보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의 시대 보수 대통령도 있다. 바로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뉴딜정책 이전까지 연방정부는 고용주들의 믿을 만한 조력자로서 노조조직자들을 탄압하고 노조를 짓밟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공화당 출신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가 들어서자 연방정부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의 수호자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대한민국에도 보수의 시대가 찾아왔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정점을 지났다. 세계금융의 불황은 보수의 시대가 뒤안길로 접어들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들이 왠지 어울리지 않은 옷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도 이런 시대적 기류를 감안해 경제민주화 등의 개혁 의지를 표방했지만 다시금 보수의 대통령 후보로 되돌아갔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시대일까? 보수의 시대가 아니라면 진보의 시대일까? 안철수에 따르면 상식의 시대, 달리 표현하면 국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직 사퇴 연설문에는 '국민'이라는 표현이 아홉 번 등장한다. 그 중에서 의미심장한 부분만 모아보면 아래와 같다. 


단일화 방식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새정치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에게 상처를 드렸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에게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주신 고마움과 뜻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 변화 갈망 풀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준 시대와 역사의 국면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안철수 후보 사퇴문 일부


'국민의 시대'라는 안철수 식 새정치의 메시지가 국민에게 강조하는 의미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더 이상 정치인이나 여론조사 전문가, 교수, 저널리스트 같은 달변가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국민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판단하라는 취지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관철될 수 있도록 뜻을 모으고 행동하라는 메시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