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한계를 인정하라

로마의 숫자를 보면 3단위로 숫자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3은 Ⅲ이라고 표시하지만 4는 Ⅳ, 9는 Ⅸ라고 표시한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역시 3~4 단위의 숫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작대기를 9개 그어 9를 표시한 문명도 있었지만 이내 폐기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수학자들은 인간이 수를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4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결론내렸고 어느 정도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기억 역시 생물처럼 변화한다는 사실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판명되었다. 만화와 책으로 발표된 에리 풀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에 인용된 유명한 대사가 있다. "기억은 살아있는 것이며 항상 변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편리에 따라 쉽게 조작된다"는 사실이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과거의 사진 중에서 배경을 다르게 조작하고 보여줬더니 대부분은 그런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한 사람도 집에서 생각을 해보고 나서 자신이 잘못 기억했으며 그 사진이 맞다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책에 적용해본다면, 한 페이지의 내용을 기억하기도 힘든데 책 전체의 내용을 기억하고 서평을 쓰거나 회상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메모 리딩(memo reading)을 권한다. 메모하면 명료해진다.

 
▲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면 기억이란 게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기록하고 메모하라, 그러면 명료해질 것이다


메모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뇌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기억하는 창고의 임무에서 벗어나 전체를 조망해 나와의 연관성에서 책을 관조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모나 책의 표시를 통해서 뇌가 책의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뇌는 데이터를 쌓아놓는 창구가 아니다. 정리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거나 파편들을 조합하는 고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뇌를 뇌답게 대우해주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우리들은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뇌에게 허드렛일을 시켜오지 않았는가?

책을 읽은 후에 메모한 부분이나 표시한 부분을 다시 살펴보면 책의 전체가 저절로 간추려질 것이다. 메모독서의 이와 같은 장점을 몸에 익히고 나면 메모를 그만두기 어려울 것이다.


메모 리딩의 방법과 응용

메모의 방법은 자신에 맞게 사용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체크할 수 있어야 하고, 책을 다 읽은 후에 체크한 부분이 한눈에 펼쳐지도록 해야 한다. 나는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책에 꽂아두고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으면 일반적인 단행본(223*152mm (A5신))에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된다. 빨간색과 파란색 볼펜 등 2가지 정도의 색깔펜을 이용해 짧은 인용문이나 첫어절~끝어절, 그리고 요지문이나 코멘트를 쓰는 식으로 구분하면 훌륭한 기록표가 나온다.

일람표는 짧은 시간에 두 번 독서한 효과를 준다.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는 깊이가 2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배가 된다. 처음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대체로 수박 겉핥기를 할 뿐이고, 다시 볼 때 비로소 확실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메모표와 관련해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마을의 원님으로 갈 때는 반드시 A4 한 장짜리 일람표를 만들어오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일람표에는 인구 수와, 재산, 부역자, 범죄자, 노약자, 장정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다산 선생은 "한 장의 종이에 마을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마을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마을' 대신 '책'을 집어넣으면 뜻이 통한다.

앞서 소개한 메모의 방법은 “책”의 관점에서 소개한 것이다. 책뿐만 아니라 어떤 주제(예컨대 인권)에 관해서 정리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래 표와 같이 자신의 독서 이력을 정리하면 나의 독서생활 전체를 점검할 수 있다.


▲ 독서 메모표 샘플. 책의 기본정보와 독서기간, 쪽수, 첫어절/끝어절, 요지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전체 독서경험을 관리할 수 있으며, 책의 내용을 명료하게 장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A4용지를 활용한 실제 메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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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7월 18일부터 7월31일까지 매일 <독서의 기술>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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