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도서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방법 강좌 <행복한 독서클럽>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번 2회차부터는 MP3 파일을 첨부합니다. 1시간 내외의 오디오 파일을 들으시면 텍스트의 내용이 더 잘 이해되시리라 생각합니다. 강좌는 격주 간격으로 진행되므로 연재도 이 흐름을 따라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음 강의는 4월 18일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오디오파일을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강의에 소질이 없는 운영자라서 스킬을 보지 마시고, 마음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http://ge.tt/2Kl0oah
 

행복한 독서클럽

2장 전체읽기 연습

1. 책을 손에 잡는다는 것

※ 전체읽기는 책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전체"를 말한다. 도전적으로 사용한 단어다.  
 



100명의 사람이 똑같은 1권의 책을 한날한시에 읽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100명이 책에서 가져가는 것은 1가지 가르침이 아니라 100가지 가르침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가르침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사정을 이외수 작가는 단 한줄에 간명하게 표현했다.

"배움이 절실하지 않을 때는 배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한 가르침도 지나가는 개소리로 흘려듣기 마련이다"(이외수,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176쪽)

지난 장에서는 세 가지 단계를 통해 보는 책과 나의 관계를 설명했다. 결국 책을 통해 나를 읽겠다는 것이 독서를 하는 까닭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독서를 하는 과정에는 어떤 단계들을 만나게 되는지를 이야기하겠다.

시집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만한 사례를 들자면, 맨 처음 시를 읽을 때는 시어 단위로 읽게 된다. 그러다가 회가 거듭되면 자연스럽게 시 작품 전체를 단위로 읽게 된다. 그 다음은 시집 단위로 읽는다. 그 다음은? 시인 단위로 읽게 된다. 시를 쓴 시인의 상황과 마음, 성장의 과정을 시집들을 통해서 알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인들을 여럿 알게 된다면 시대흐름을 중심으로 시를 읽게 된다. 시인이 그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이 시를 읽고 있는 내가 안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 중첩되는 순간 시를 통한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요컨대 궁극적으로 당대인과 당대인, 당대와 당대의 온전한 만남이 진정한 시 읽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시” 대신 “독서”를 집어넣으면 뜻이 그대로 통할 수 있다. 시어를 대신할 수 있는 키워드나 단락 등만 바뀔 뿐이다. 나는 김유정, 김수영, 백석, 도스토예프스키, 조지 오웰, 에리히 프롬 등을 이렇게 읽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전작주의”라고 하는데, 모든 작가에게 전작주의를 적용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생에서 한 작가 정도는 전작주의를 해볼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지 오웰의 작품을 읽으며 그의 영혼을 만난 듯했고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에세이를 찾아서 읽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조지 오웰의 작품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대상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대상과 나의 시대상을 비춰보면서 내가 가져갈 것을 가져가면 된다.

이러한 생각을 맹자는 간명한 말로 잘 표현했다.

작은 선비는 이웃 마을의 선비와 교유하고, 큰 선비는 이웃 나라의 선비와 교유한다.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고 동시대의 선비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년 전의 선배들의 생각을 책을 통해 만나야 큰선비가 될 수 있다(맹자)


2. 전체 읽기 연습

책을 이제 읽기 시작한 사람에게 당대와 당대의 만남 같은 고차원적인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책 한권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데 머무르고자 한다. 바로 일람표 만들기이다.

다산 정약용의 일람표 만들기를 소개한다.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김영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다산 정약용이 고을을 다스리러 가면 항상 1장의 일람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표에는 마을의 재산, 인구 수, 가축 수, 부역 대상자, 범죄자 등을 기록해 놓았다. 다산은 표 하나로 마을의 정보를 넣을 수 없다면 절대로 제대로 다스릴 수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마을”을 “책”으로 바꿔 읽어보자. 다산의 비법을 독서에 적용하면 훌륭한 독서 일람표가 나온다.

일람표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A4 한 장을 접으면 웬만한 책에 쏙 들어간다. 책을 읽으면서 세 줄 미만의 구절은 파란색 볼펜으로 옮겨 쓰고, 비교적 긴 글은 검은볼펜 따위로 쪽수와 시작어절~끝어절을 써놓고 나서 빨간 볼펜으로 그 부분의 요지문을 써넣는다. 이런 방식으로 책 한권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일람표를 얻게 된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자신이 요지문과 인용문을 훑어보면 책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독서 일람표’를 왜 만드느냐 하는 점이다. 자기 스스로 일람표를 만드는 이유를 대지 못하면, 독서 일람표는 독서 방법으로 채택될 수 없다. 몇 번 하다가 시들해져버릴 것이다. 내가 독서일람표를 권장하는 까닭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책 한권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다듬기 위해서다.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 반면 스스로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극단적이 된다.”(논어 위정)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이와 비슷한 말로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칸드)가 있지만 말이 복잡하니 공자의 말에 기대도 될 듯하다. 공자의 말 중에서 “배울 학學” 대신에 “읽을 독讀”을 붙여도 뜻이 통한다.

한마디로 독서일람표는 내가 책을 읽고 나타낸 ‘최초의 반응’이다.

3. 독서 일람표 응용하기

독서 일람표는 책의 내용을 간추려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람표의 문장들과 요지문은 내가 선택한 대목이다. 그러니까 책에 대한 나의 입장이 표시된 표이기도 하다.

앞장에서는 책을 읽고 피드백을 남기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했다. 일람표를 얻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훨씬 다양해진다. 먼저 일람표를 활용해 서평을 쓴다면 서평의 품격이 달라진다. 거의 비평가 수준으로 글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단어와 인용문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을 소재로 삼는 게 아니라, 정확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글에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하다.

이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확장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책을 읽는 단계의 깊은 차원으로 갈 수 있다. 일람표를 특징에 따라 정리하면 좀더 전문적인 글을 쓰거나 깊이 있는 분석을 할 때 도움이 된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일람표를 통해 보면 책을 여러 권 펼쳐놓고 보는 것보다 효율성이 있고,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일람표를 정리할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 논문을 쓸 때 이러한 식으로 자료를 정리한다고 한다.

머릿속에 맴돌던 책의 구절과 내 생각을 종이에 옮겨놓고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독서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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