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읽은 최고의 책, 그리고 최고의 인물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생각비행). 최고의 책을 만났다. 서평을 쓰면서 찬사를 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원칙을 어길 만큼 큰 선물을 안겨준 책이다. 사서 읽어보면 내가 선을 넘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환불은 불가다^^) 특별한 책의 경우 엑셀에 독서데이터를 만들고 빨간펜으로 글감과 개요를 고르는데 빨간펜이 용지를 가득 채우면 내가 상당히 대접하는 책이다.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의 <페이스북 이펙트>(에이콘 출판사)가 그랬고,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민음사)가 '그럴 예정'이다.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삼성 이건희의 비밀"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을 중심으로 적어도 3개의 글을 쓰려고 한다.

언론인이 진정으로 대중과 만나는 장면을 보기란 극히 드문데 타벨은 이 만남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인간학"이라는 정신을 저널리즘에 불어넣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이 사실을 확정하기까지의 과정과 하나의 현상이나 한 인물을 어떻게 온전한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제공한 저널리즘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와인버그는 타벨이 평생 했던 탐사방법을 가지고 타벨을 조사했다. 이것이 이 책의 형식적 특징이다.
타벨은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프랑스혁명사와 18세기 문학, 회화사 등을 공부하며 프랑스 역사가들에게 설득력 있는 형식을 갖추고 신뢰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는 방법을 배웠다. (222쪽) 1880년 폴란드 유니언 신학대학의 주임교사로서 지질학과 식물학, 산술 연산, 기하학, 삼각도 법, 영문법,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같은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버거운 작업을 하며 그는 여러 과목을 통달하며 얻은 자신감으로 위대한 논픽션 작가가 될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타벨이 평생토록 석유왕 록펠러와 맞서게 된 아주 결정적인 이유는 록펠러의 트러스트가 미국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상업정신을 왜곡시켜 자본주의의 건강한 뿌리를 잘라버렸으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그러진 우상을 꿈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인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타벨의 아버지 플랭클린 씨는 많은 미국인들이 기업가의 영혼을 죽이고 스스로 누군가에게 부림을 받는 일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한다. 세 살이 되기 전에 성홍열로 숨진 남동생이 밤새 울부짖던 소리를 평생 잊을 수 없어 괴로워하던 인간애 넘치는 영혼의 소유자인 타벨은 냉혈하고 신앙심 넘치는 이중적 인격의 록펠러와 만난다. 저자는 타벨과 록펠러의 성장기와 사생활, 자료를 토대로 두 인물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킨다. 록펠러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살피면 기업 경영이나 창업 준비에 큰 도움이 될 정도로 록펠러의 성공기를 생동감 있게 그렸다. 그리고 타벨이 록펠러를 인정한 부분과 타벨에 대한 가히 전방위적인 지적 공격들도 소개할 뿐만 아니라 타벨이 가지고 있던 결함 또한 얄미울 정도로 잘 기록했다. 이런 기록 때문에 나는 미국 경제사와 규제사, 법제사, 언론사, 기업사 등을 아울러 공부한 효과를 누렸다.


"삼성의 비밀을 알게해준 책들"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2008년 촛불에 대한 기록을 열심히 뒤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촛불이 남긴 의미와 그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시민기자로서 촛불 현장을 취재한 것은 물론 관련 책들을 구해 읽었다. <촛불집회와 한국사회>(문화과학사),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촛불, 그 65일의 기록>(경향신문사), <촛불, 어떻게 볼 것인가>(울력), <다중>(세종서적), <특강>(한겨레출판), <축제의 정치사>(한길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어도 촛불의 비밀을 캘 수 없었다. 촛불의 진실에 다가가게 한 책은 엉뚱하게도 클레이 서키 교수가 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이었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현대의 성공한 '운동'을 다룬 인문서다. 촛불 이야기는 들어가지도 않고, 웹이라는 공간에서 대중이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오면서 현실을 변화시켜가는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했을 뿐이다. 이를 웹2.0의 용어로 표현하면 <오픈소스>라고 할 수 있는데, 오픈소스의 강점은 대중의 다양한 공유를 통해 점점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며 '실패'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유연하게 실패를 학습함으로써 점점 진화해간다. 한마디로 '촛불'은 오픈소스가 대한민국의 광장에 튀어나왔다가 다시 돌아간 시간이라고 이해하게 해준 단서를 제공한 책이다. (관련글 : "촛불 1년을 정리하게 해준 두 권의 책")

마찬가지로 "삼성"과 "이건희"라는 키워드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여러 책을 함께 읽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북), <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허수아비춤>(조정래) 등은 삼성과 이건희의 일부를 말해주기는 하지만 '현상'을 말하는 데 그친다는 점에서 진실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주기에는 미흡한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생각비행)은 삼성과 이건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역자 후기에 잠깐 언급되는 정도다) 그 비밀을 밝혀주는 책이다. 삼성과 이건희의 비밀을 쓰기 위해서는 따로 한편의 글이 필요하므로 앞서 언급한 책과 이 책을 엮어 실마리를 드러내볼 계획이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삼성의 이건희가 스탠더드 오일의 록펠러를 롤모델로 삼았으며, 그의 행적을 거의 복제하듯한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동차 애호 취미까지도 따라할 정도다. 일단 이 글의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록펠러 현상과 타벨 현상이 충돌한 빅뱅 지점에 대해서

저자가 미국의 역사와 경제사, 언론사 등을 연구해 글에 친절히 소개한 덕에 별도의 교양을 쌓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삼성 문제와 관련해서 시사적인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록펠러는 반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에는 록펠러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가졌던 관념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록펠러는 원래 자본주의에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자신이 자본주의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자 그 근간을 뒤집어 버렸다. (354쪽)

그러니까 록펠러는 자본주의를 뒤집어버린 반자본주의자이며 타벨은 자본주의자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록펠러라는 기업가에게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극복해 나가는 시련의 과정 속에 미국 자본주의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를 토대로 봤을 때 한국 삼성의 이건희 역시 반자본주의자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별칭은 대한민국이 현재 반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고백의 다른 말일 뿐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금산법과 공정거래법 등을 만들었는데 삼성은 사세를 확대하기 위해 이 틀을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이다. 공익(국익)이 사익(이건희)에 복종하면서 한국은 점점 반자본주의 기업독재 국가로 탈바꿈했다.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그 결과일 뿐이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의미 있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태생기와 시련기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는 우리도 100년 전에 미국이 경험했던 자본주의의 도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록펠러와 타벨이 주로 활동하던 1900년 초는 기업 자본주의의 창세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마샬 맥루한은 " 진정한 뉴스는 나쁜 뉴스"(<미디어의 이해>(민음사) 296쪽) 라고 통찰한 바 있는데, 현대 저널리즘은 트러스트라는 문어발식 기업체제를 고발하면서 생겨났고, 트러스트의 횡포를 제어하는 경제 규제 역시 이와 역사를 같이 한다. 즉 "태초에 어둠(트러스트)이 있었고, 빛(저널리즘)이 있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타벨)이 태어난 1857년은 유명한 서부 개척기에 해당한다. 그에 앞선 1854년에 상인 헨리 롯의 인디언인 수 족 몰살사건과 이에 대한 복수극인 스피리트 호수 대학살(34명의 정착민 피살)이 벌어졌고 원전이 막 개발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등 미국인들이 부르는 이 시대의 공식적인 이름은 "도금의 시대"이다. 이는 마크 트웨인이 쓴 <도금시대(The Gilded Age:미국 산업발전의 병폐, 특히 철도비리와 정치적 부패상을 풍자)>에서 비롯된 말로,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또는 1860년대부터 1차대전의 전야인 1914년까지를 일컫는다.

공공성이란 개념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당시 수송을 담당했던 철도회사는 여러 개의 민영 회사나 다름없었다. 국가가 통제를 하기는 했지만 미미한 실정이었다. 록펠러는 석유사업에서 "수송"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일찌감치 깨닫고 철도국과 비밀리에 리베이트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철도국은 이 계약으로 손실을 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록펠러 경쟁자들에게 높은 운임을 부과했다. 바로 이것이 록펠러와 타벨뿐만 아니라 록펠러와 미국 사회가 세기의 논쟁을 벌이게 된 "빅뱅"이다. 1868년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를 다룬 글의 제목은 <공공재인 철도를 운영하는 기업이 화물과 승객이 부과하는 요금으로 폭리를 취한다고 알려진 내용과 관련된 증언>이다.

러시아는 유럽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끊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정치적 지위를 얻었지만("러시아 가스 공급 축소유럽 ‘가스대란’ 현실화"(경향신문)), 록펠러는 펜실베이니아 중앙의 윌리엄스포트의 송유관이 해안의 여러 항구로 수송되는 송유관을 실제로 끊어버림으로써 경제적 지위를 얻었다. (161~163쪽) 이뿐만 아니라 1871년과 1872년 초반을 지나면서 클리블랜드와 펜실베이니아의 독립 석유업자들을 전멸시키는 일명 '클리블랜드 대학살'을 단행하였고(책, 124~125쪽) 석유업자들이나 정유업자의 사업체를 쓰러뜨릴 목적의 닌자회사(유령회사)를 설립해 죽음의 출혈경쟁으로 도산시킨 후 유령회사를 없앴다. (227쪽) 이것이 록펠러가 경쟁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보다시피 경제 전쟁은 정치 전쟁보다 훨씬 잔인하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정치와 경제, 언론의 "천하삼분지계"라는 지향점을 던져준다. 지금의 언론은 경제의 부속물이 되어버렸지만 반드시 회복해야 할 하나의 축이다. 정치는 "말"을 단위로 하며 욕망에 이끌린다. 때문에 우리들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먹을거리"를 단위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몸을 움직이거나 누군가의 움직임에 의존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촛불'은 "정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은 "말"을 단위로 하며 '진실'에 이끌린다. 여기에 언론의 신비가 담겨 있다.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타벨의 폭로와 이를 뒷받침하는 록펠러 인물 탐구는 미국의회와 주 의회, 연방정부, 주정부가 개혁적 활동을 하도록 강제했으며, 법원의 판결과 대중 운동이 전례 없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상당히 많은 수의 진보적인 유권자가 연합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신비한 힘이다. 타벨은 진보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셈인데, 좀더 자세히 말하면 원격적 구심점 역할을 했다. 타벨은 선동가가 아니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임에도 이런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진실의 힘'에 있다. 이것을 살려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문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11-01-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벌과 싸운 티벨...시간과 지역을 떠나 우리나라 현재와 비교해보면..참 암담하죠...^^
언론이 재벌편이라는 걸 떠나 이젠 대학과 대학생까지 재벌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전락해버렸으니까요..

승주나무 2011-01-07 10:2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하지만 타벨 때는 더 심했을 테니, 언론이 살아나 대중과 만날 방법이 있겠지요. 고민, 또 고민입니다^^ 간만에 댓글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