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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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시민에게 말 걸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발행, 이하 "23가지")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장하준 교수는 "시민"이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민주사회 시민이다. 경제학자, 토목공학자, 의사는 자신의 전문분야만 하면 그만이지만, 민주시민은 핵폐기, 남북관계, 지구온난화, 복지 등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책의 내용 역시 시민에 맞춰져 있다. 서론에서 <23가지>가 목적하는 바가 명시돼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데는 전문 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데,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토대로 시민으로서의 "좋은 판단"을 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3년"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23가지> 사이에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책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의아할 수도 있다. 왜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23가지>가 함께 거론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이에 대한 답변은 기자간담회에서 장하준 교수가 직접 설명했다.

"대중을 위해 맘먹고 쓴 책이 바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인데, 이 책 내고 나서 '기왕 이쪽 길로 들어선 몸이니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요청에 화답한 책이 바로 <23가지>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에서 <23가지>의 형식이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법정을 연상시킨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저격수"답게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요 논거를 법정에 세우고, 조목조목 기각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진행한다. 하지만 <23가지>에서는 좀더 쾌활한 공간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치 마당극 <양반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들"은 당연히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인데, 이번에는 그들이 일부러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춰냄으로써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논리적인 대결이 아니라 은폐한 진실을 보기 좋게 들춰내는 서술방식, 게다가 풍자라는 유쾌한 방식을 글쓰기에 적용했다는 점은 진전으로 꼽을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아카데미에서 저잣거리(대중)을 향해서 '자신의 보폭으로' 성실하게 걸어나오는 경제학자다. 이전 저작과 비교해서 내용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은 많지 않지만, 대중에게 말을 거는 방식과 개념을 명료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 뱀이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것 같다.  

 
▲ 장하준의 글쓰기가 친서민적으로 바뀌고 있다. 신자유주의 논쟁보다는 은폐된 진실을 꼬집으며 들춰내는 마당극을 보는 것 같다.


깊고, 넓고, 다양하게


<23가지>의 대화 상대가 "시민"이라면,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깊고, 넓고, 다양하게"이다. 이렇게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면 비로소 "경제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그들이 말하지 않은 가장 "심한" 23가지를 추려냈으나,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23가지만일까? 그들은 단지 말을 돈으로 환산하는 수완에 굉장히 뛰어났을 뿐이다. 자신에게 돈이 되지 않는 말은 빼고, 돈이 되는 말만 퍼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진공상태"의 문제가 생긴다.

"인간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284쪽)

장하준이 적으로 간주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진공상태를 만들어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경제전문가만 경제문제를 잘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든 것도 그들이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못 사는 나라들이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하지만, 장하준 교수는 기업가 정신은 여기에 들이대는 말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부자 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219쪽)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업가 정신을 너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려고 하면, "요즘 대학생들은 도전정신이 없어" 같은 비아냥을 쉽게 하기 마련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결정하는 환경, 기반, 공동체를 감안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23가지>의 한 chapter만 급히 봐야 한다면 Thing4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흥미로운 제목이다. 인터넷은 우리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일조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생활을 바꾼 것은 세탁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세탁기의 등장으로 인해 가사노동의 양이 급격하게 줄었고, 이 절약된 시간을 통해 여성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인터넷은 세탁기뿐만 아니라 "전보"에게도 덜 혁명적인 매체라는 사실이 좀 충격일 수 있지만, 인터넷은 그만큼 충분히 과대평가된 상태다. 이러한 이치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발견된다. 경제학자와 과학자는 같은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작고도 섬세한 온갖 세공품들은 핵 물리학의 어떤 장비 못지않은 발명의 재능이 필요하고 보다 깊은 의미에서 인간의 등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바늘, 송곳, 단지, 화로, 삽, 못과 나사, 풀무, 끈, 매듭, 베틀, 마구, 단추, 신발 등등 단숨에 그 실례를 백 가지라도 들 수 있다. 이 풍요로움은 발명의 상호 작용에서 온다. 

- 야콥 부로노프스키 <인간 등정의 발자취>



"넓고 다양하게 보기"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러시아의 천재 경제학자 프레오브라젠스키 이야기다. 농민들의 잉여수입을 착취해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다 "유형"에 처해지지만, 스탈린은 슬그머니 그의 정책을 베낀다. 이로 인해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되지만, 이 덕분에 독일군을 동부 전선에서 막아낼 수 있었다. 러시아가 농민들의 잉여수익을 착취한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후 문맥을 두루 살핀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라민 은행으로 대표되는 마이크로크레딧 역시 충격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그라민 은행 초기의 적정 이자율은 방글라데시 정부와 해외 원조 기관들에게서 보조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이를 현실화했을 때 그라민은행은 4~50%의 높은 이자율을 부과했다. 이자가 많게는 100%%까지 붙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사정이 이와 같다면 마이크로크레딧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후 마이크로크레딧은 결혼 자금이나 일시적 수입중단을 만회하기 위한 "급전 마련"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이유 역시 도덕적이기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즉 "어린이들을 고용하면 개별 기업의 임금 지출을 줄일 수 있으나 아동노동이 확산되면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발육을 저해해서 장기적으로는 노동력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때문에 아동노동을 금지함으로써 결국 기업 부문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사회현상이나 경제모델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관성을 깨뜨려줄 사례는 <23가지>에 무수히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 어렵다. 

 


▲ 장하준 신간을 구경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인지 10월 28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만원이었다. 좌석마다 신간과 보도자료를 비치했는데 남은 게 별로 없었다. 기자들은 오래 기다린 책이라며 반가워했다.


인간은 생각했던 것만큼 똑똑하지 않다

<23가지>에서 내용적으로 새롭게 보게 되는 부분은 "행동경제학"이다. 허버트 사이먼이 개념화한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까닭은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합리성이란 인간이 합리적이고자 하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심각한 제약이 따른다는 개념이다. 우리가 파악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며, 제한된 지적 능력으로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 '제한된 합리성'의 요지다. 장하준이 제한된 합리성을 근거로 내놓은 결론은 이렇다.

"결국 우리 인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괜찮을 만큼 우리가 똑똑하지 않은데, 시장에 대한 규제는 가능한 것일까?"(230쪽)


이 말을 보면서 한 철학사가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철학자들을 소개하며, 만약 이들이 정직하기만 했다면 철학이 이렇게 후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것이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인간은 지력으로든 완력으로든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그 욕망이 2008년 금융위기를 만들었다.

이것을 장하준 식 정부 역할론으로 풀이한다면, 정부의 규제라는 것은 대체로 시장과 시장 참여자들을 함께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인데 시장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완전무결"을 우기는 데 다름아니다. 자유시장이란 진공의 상태이거나 모래 위에 지어진 탑처럼 위태롭고 위험천만한데, 그런데도 시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시장과 정부, 시장 참여자들이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의 절대적 역할론이나 규제 찬양론을 펼치자는 것이 아니다. 사문화된 규제들은 개혁해야 마땅하지만, 전봇대처럼 무심코 중요한 규제를 뽑아냈을 때 폐해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장하준 교수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할 의향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장하준 교수는 "그것을 하게 되면 내 생활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런 태도가 답답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보폭대로 바라보는 곳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장하준 교수의 일련의 저작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고, 좀 더 가까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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