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을 읽어야 하나?

 
  
<난세에 답하다>는 평생 사마천을 연구한 국내 유일의 사마천 연구가 김영수의 <사기> 분석서다. 중국 전역을 현장취재해 역사를 쓴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수십 번 오가며 쓴 중국에 대한 기록이다.
ⓒ 알마
난세에 답하다

 

중국의 경제력은 미국에 비견되고 외교적 영향력은 유럽연합(EU)을 능가한다. 올 상반기 수출액은 세계 1위였다. 중국이 세계 중심으로 재진입했다. '재진입'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1840년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청나라가 사분오열 반식민지 처지로 전락한 이후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중심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러는 가운데 지난 10월 6일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걸프지역 아랍국가와 중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이 원유대금 결제 때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은밀히 논의했다고 한다. 결제수단은 유로화와 위안화다. 이 사건은 달러화로 대변되는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중심에서 한 단계 정도는 벗어나게 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은 100여년에 걸친 외세의 침략과 반(半)식민지 상태, 반(半)봉건 시대를 거쳐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올해 60주년을 맞는다. 중국의 엄청난 발전속도는 주변국은 물론 세계를 긴장시켰는데, 실제로 군사, 경제, 환경보호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국위협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마천 연구가 김영수 선생이 <난세에 답하다>(알마)라는 책에도 밝혔듯이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 번도 강자가 약자를 봐준 적이 없다.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지면 강자는 약자를 사정없이 집어삼킨다."

주변국에 세계중심의 강대국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중국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이 나는 상황이라면, 단지 지적인 유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는 고전을 분석함으로써 책읽는 시민으로서 중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개혁을 하려면 중국 역사를 읽어라

긍정적인 의미이든 부정적인 의미이든 중국은 개혁의 보고다. 역사적으로 많은 개혁을 경험해 보았고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극심한 폐해를 겪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을 불태우고 책읽는 선비들을 땅속에 묻어버린 분서갱유도 개혁이라면 개혁이다.

중국이 나침반, 종이 등 인류 최대의 도구를 발명했지만 유럽에게 무참하게 살육되고 약탈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00년 넘게 계속된 왕조시대의 근성과 변화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1405~1433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선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인도양을 탐험하며 선진 문물을 익히고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북방 이민족의 침입 위협이 커지자 조정에서 선단을 해체해 버렸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해양무역국의 지위를 날려 버렸다. 1839~1842년 1차 아편전쟁이 고난의 시작이다. 영국은 중국의 질 좋은 차를 들여오면서 아편으로 대금을 받으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하지만 전쟁에 승리하면서 이를 관철시킨다.

1898년 일본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해 유럽과 같은 수준의 국력을 보유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 개혁가들이 변법자강운동을 일으켰으나 서태후의 쿠데타로 100일 만에 실패하고 개혁세력은 대부분 살해나 처형을 당하고 만다. 이 값을 두고두고 치르고 나서 1949년 마오쩌뚱 혁명이 도래하는데, 이 때 가장 성공적인 부문은 기초 공중보건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1978년 중국은 시장 방식의 극적인 개혁을 수행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소련과 동유럽에서도 개혁이 있었지만 소련, 동유럽은 붕괴했고 중국은 살아남았다. 중국이 개혁에 성공한 이유는 개혁방법과 개혁주체, 환경, 경제상황, 재정여력, 국영기업 비율, 수출경쟁력 등을 면밀히 검토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많은 개혁을 경험했고 그 교훈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단지 개혁 경험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의 개혁작업을 위해 면밀히 학습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낙천적인 리더십, 인간미가 중국의 힘

중국인으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 왕 중에서 진문공이 있다. 그는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다가 61세기 되어서야 왕위에 올랐을 정도로 고단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유머가 있어서 인간적인 매력을 더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으니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낙천적인 것은 진문공뿐만 아니라 한고조 유방도 남다른 낙천가였다. 항우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에서 진시황의 화려하고 장엄한 행차를 본 적이 있었는데, 항우는 "저 놈의 자리를 내가 빼앗아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유방은 "사내대장부가 저 정도는 돼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통일 제국 진나라의 위풍당당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은 낙천성과 인간미, 포용성과 유연성을 고루 갖춘 지도자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한 대전 당시 항우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처지를 극복하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특유의 낙천성 때문이었다. 전 경기에서 항우에게 패배했지만 패배한 장수들을 벌주지 않고 도망다니면서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 결국 단 1번의 승리로 최종승자가 되었다.

영토를 점령해도 약탈을 하지 않고 주요한 자리를 원주민에게 주었기 때문에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유방이 아방궁을 점령했을 때 호해의 사촌 형인 자영이 옥새를 직접 내놓으며 항복하자 부하들이 모두 자영을 처형하라고 했지만 처형하지 않았다. 항복한 사람을 죽이면 상서롭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지역을 점령하고 나서 진나라의 가혹한 형벌을 없애주고 그 대신 "사람을 죽이면 죽인다",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상처를 입히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준다" 따위의 간략한 법률을 담은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제정해 민심을 챙겼다.

사실 낙천적인 리더십과 인간미를 가진 지도자는 누구나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대 중국 역사에서 이런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의 서열3위인 원자바오 총리는 이런 유형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원칙 있는 논공행상, 개혁 성공의 열쇠

"혁명보다 힘든 것이 개혁이다"라는 말이 있다. 개혁이란 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협의하는 지난한 과정이며, 특히 기득권에 대한 정면도전을 뜻하기 때문에 실현시키기가 무척 어렵다. 개혁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다. 앞서 거론했던 지도자 진문공은 굶어죽기 직전 허벅지살을 떼어내 자신을 먹여 목숨을 살려준 개자추를 공신에 올리지 않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과 의로 나를 이끌고 덕과 은혜로 나를 지켜준 사람이라면 일등 공신이다. 둘째, 행동으로 나를 보좌하여 공을 이룬 이는 실무를 한 사람이다. 셋째, 위험을 무릅쓰고 땀을 흘린 자는 행동대원이다. 넷째, 최선을 다했으나 나의 잘못을 보완해주지 못한 이도 공신이다. (93쪽)

이 원칙에 따르면 왕의 목숨을 건져준 개자추를 넣을 수 없다. 그래서 진문공은 원칙을 적용해 개자추를 공신록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신료들의 엄청난 항의를 받아들여 개자추를 올려 궁으로 불렀지만 정작 개자추 본인은 "부귀와 영화를 노린 게 아니라 그저 진심으로 주군을 모셨을 뿐입니다. 공신들은 자리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어머니와 함께 면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진문공이 산에 불을 질러 나오게 했지만, 개자추는 끝내 어머니와 함께 타죽고 말았다. 이 일을 기려 중국인들은 1년에 1번 더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원칙에 대한 집념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대목은 <순리열전>이다. 초나라 소왕 때 재상을 지난 석사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다가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도망치게 한 후 스스로 옥에 갇혀 사형을 자청했다. 왕이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그는 "아비에게 사사로운 정을 가지는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하지만 군주의 법을 지키지 않았으니 충신이 아닙니다. 왕께서 저를 용서해주시는 것은 왕의 개인적인 은혜이고 벌을 받아 죽는 것은 신하의 본분입니다."(332쪽)라고 말하며 목을 그어 자결했다.

법조문을 잘못 적용해 무고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 이리 역시 스스로 판결의 책임을 물어 자결했다. 그만큼 법과 원칙의 엄정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법과 원칙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많은 개혁을 거쳤고 그 결과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역사를 움직이는 '인간작용'에 주목한다

경제력이 있고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것을 요리할 인재가 없으면 말짱 헛일이다. 결국 사마천이 <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역사는 인간의 작용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직후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멘트

2009년 대한민국은 냉혈한의 시대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인간'이 송두리째 없어진 시대인 것 같다. AIDS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의 빈국 말라위는 국제사회와 함께 대책 프로그램을 협의하였다. HIV바이러스 감염 인구의 1/3인 30만명에게 5년 동안 약물 치료를 지원해달라는 계획을 제안했지만 미국과 유럽 정부를 포함한 기부국 정부들은 너무 많이 살려줄 수 없다고 좀 더 많이 죽일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말라위는 당초 계획에서 20만명을 더 죽이고 10만명을 살리겠다는 수정계획을 제안했지만 국제사회는 죽을 사람이 더 있다고 했다. 4만명으로 줄어든 수혜자는 최종적으로 2만5천명으로 줄어들었다. 국제사회는 말라위 국민 27만5천명에 대한 추가 사형집행장을 보낸 것이다. (이하 내용은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을 참조하였다.

골계열전에서는 유머가 살아나는 모습을 재기있게 그렸다. 유머가 없는 시대는 재미도 없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순우곤은 유머를 통해 왕에게 충고하면서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나라도 위험에서 건질 수 있었다. 화식열전에서는 단지 재물을 모은 사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물적 기반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보여준다. 사마천 평가자들이 가장 백미로 꼽는 부분이 바로 <화식열전>이다.

이 역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기의 <열전>은 좌절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살아 숨쉰다. 이제까지 역사에서 본 적이 없는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시 인간에 대한 배려다. 인간이 살아숨쉬고 소외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애정어린 기록이 있어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 가장 음미할 만한 부분 역시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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