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한 분향 의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이런 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 서울광장 추모를 못 드렸는데,
그분의 고향인 전라도에서 헌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주 21일부터 23일까지의 일정으로 여수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여수에는 대형 전광판에 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추모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경건했습니다.





아침이라 조문객이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헌화와 조문을 마치고 나서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저도 눈시울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저들끼리 뛰어놀았지만,
그 현장에 있는 것이 큰 체험일 것입니다.
저도 얼마 전 사촌형이 돌아가셨을 때 사촌형의 어린 딸이 또래 친척들과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조문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향소에서 아이들을 보는 기분이 남달랐습니다.




차라리 국민장이었으면 나았을 것을...

국장이라 그런지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조기가 개양돼 있었습니다.
여수에 사는 지인들이랑 이야기를 하던 차에 "국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행안부에서 장의보고를 할 때 국민장을 기정사실화하자 아고라 등 네티즌 사이에서 국장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의 과업과 위상, 특히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를 들어 '짧은 국장'으로 결정했습니다.

국장은 장의에 관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여수의 예만 들어도,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간에는 시민성금이 6,000만원 이상 걷혔다고 합니다. 장의를 다 하고 나서도 돈이 많이 남아 노무현 재단에 기부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화에서부터 영정사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손으로 꾸미던 국민의 장이었던 반면,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공무원들이 주축이 되고 국가비용으로 부담해서 그런지 시민들의 참여가 전만 같지 못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거 당시 "국장"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국민장"을 치러서 국민의 품과 돈을 보태 치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한줄기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수의 섬마을에서 만난 김대중꽃 인동초

여수에는 섬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2개밖에 없는 해상국립공원이 여수에 걸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사도라는 곳에 갔습니다.

처음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상 2마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곳에는 공룡 발자국들이 무더기로 있었습니다.
주민들도 해초를 캐면서 그거이 공룡 발자국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공룡 발자국뿐만 아니라 공룡 바위도 있고 거북 바위도 있고, 갖가지 기암괴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더 행복한 것은 이곳이 인적이 드물어 보존상태가 최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외지인에게 행복할 뿐이겠죠.




설핏한 낙조햇살을 쬐고 있는 늙은 거북바위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얼굴의 주름과 등껍질이 선명해 마치 살아 있는 거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돌아가다가 "인동초"라는 꽃을 봤습니다. 실제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꽃 박사인 "실비단안개" 님이 이것이 인동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핏 보면 갯벌에 방치된 듯보이지만, 저 혼자 살아서 꽃을 피워낸 게 대견합니다.
위태롭게 길가에 피어 있지만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집념이 전해집니다.
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약 30년간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온갖 박해와 탄압을 받은 그는 스스로 “겨울을 견디고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술회한 것이 계기가 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여수의 명소라고 하는 사도지만, 기반 시설은 그야말로 '안습'이었습니다.
그 흔한 대중화장실 하나 없었습니다.



여수시와 사도가 야심차게 게 모양의 화장실을 건립했지만,
화장실 용수 공급이 여의치 않아 닫아놓은 실정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고향이 이렇게 낙후되었나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습니다.
34.6㎢나 되는 작지 않은 면적에 2100여명이 살지만 담배소매점은 고작 4군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다방은 구경할 수 없고 택시 2대와 소형버스 한대가 대중교통의 전부입니다. 게다가 전국 면단위 가운데 약국이 없는 곳은 하의도가 유일할 것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들은 권좌에 앉자마자 경상도를 서울로 만들려고 몹시나 애를 쓰면서도 전라도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 직에 올랐을 때 경상도를 후퇴시키고 전라도를 편애할 것이라는 악담을 하고 다녔고, 경상도에서 조직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마을을 '감시차'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영광이 있을 때나 영광이 없을 때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동초를 보고 나오지 않은 눈물이 방치된 게 화장실을 보면서 또 쏟아집니다.

논어에서 읽었던 증자의 임종 유지가 한자락 떠오릅니다. 전전긍긍하고 마치 살얼음판을 밟듯이 살아왔다는 말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증자가 병환이 깊어지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말하였다.
“<이불을 헤쳐>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戰戰(전전)하고 兢兢(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나는 <이 몸을 스스로 해칠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노라. 제자들아!”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논어 태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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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8-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글입니다.행여나 전라도만 끼고 돈다는 욕먹을까봐 굉장히 조심했지요.서글픈 역사였습니다.

승주나무 2009-08-29 00:3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 공감하셨다니 기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호남, 광주 시민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담뿍 느끼고 나니 이 또한 역사의 짓궂은 장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도 어쩌지 못할 것이 있었겠죠. 노무현 대통령도 어쩌지 못한 것이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