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택시기사 아저씨 "국민들 너무 풀어둬서 이 지경까지 왔다"
제주에 일이 있어 며칠 머물렀다. 공항에서 근거리 택시를 탔는데, 마침 확성기에서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소환본부의 유세방송인 듯하다. 택시운전사는 50대 후반의 과묵한 표정의 아저씨였는데, 소환투표의 방송을 듣고 표정이 더욱 과묵해졌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내볼까 고민하다가 슬쩍 말을 건네 보았다.
"아저씨 김태환 제주도지사 소환투표 어떵 됨수광(어떻게 되고 있나요?"
"......"
"아저씨는 투표하실 생각이꽈?(생각인가요?)"
갑자기 택시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남 투표하러 갈 건지 물어보는 건 상당히 실례되는 일 아닌가?"
그러면서 대답할 새도 없이 "하여튼 국민들 너무 풀어놔서 이 지경까지 된 거 아니라(아닌가)"라고 한탄을 한다. 기사 아저씨는 갑자기 우리나라에 없어져야 할 3개 단체가 있다며, 그것은 바로 "경실련, 민주노총, 전교조"라고 했다.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노조가 노동자들 이익을 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정치투쟁이나 하는 정치노조라서 안 된다고 했다. 인사권과 경영권은 경영진의 고유 권한인데 노조가 이에 대해서 뭐라 말을 붙이는 것은 "되도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아니 '지지 않았던 나라' 영국을 예로 들었다. 영국에서는 노동운동 때문에 해가 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해가 져서 쉼을 얻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사 아저씨는 해가 져서 못내 아쉬운 듯했다.
제주도는 정치적으로 무소속과 야당, 특히 반한나라당세가 강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보았던 아버지뻘 중에서 대개가 친한나라당 성향이었다. 아버지만 해도 김대중을 욕하고 노무현을 자격 없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에 이런 정서가 생긴 것은 제주4.3이 남긴 또 다른 상처다. 6.25 당시 제주에서 해병대 입대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것은 살기 위한 입대, 한마디로 '보트 피플'이었다. 4.3으로 인해 희생된 사망자 수는 공식적인 기록만 3만명(제주 인구의 10%)였는데, 유난히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이웃 간의 우애가 깊은 제주도민 전체가 4.3의 실질적인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4.3을 경험하면서 '4.3'이라는 말은 금기어가 되거나, 나아가 배척해야 할 역사가 되었다. 이런 생각이 상식이 된 무서운 시대가 지난 것이 현재의 제주도다. 공항에서 만난 50대 택시기사와 6~70대 노인들에게 이러한 정서가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조선일보를 많이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번째 택시기사 아저씨 "지방선거면 몰라도 소환투표는 아직 이르다"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공항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이번에는 40대 초반의 '친화적인' 택시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대뜸 소환투표 이야기를 꺼내며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사 아저씨는 "별 관심이 없다"면서 "투표율이 낮게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동료 택시기사들은 "김태환 도지사가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심판을 받겠지만, 이번 소환투표는 다소 이른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두 번째 택시기사 아저씨와 소환투표에 대해서 말한 것은 짧았지만, 민심을 온전하게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 아저씨는 생각지도 못한 의제를 던져 주었다. 바로 "특별자치도" 제도였다.
기사 아저씨에 따르면, 특별자치도 제도는 특별자치도지사에게 제왕적 권력을 주기 때문에 권력 남용이 극심할 뿐만 아니라 정부 예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는 특별자치도가 자치적으로 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예산도 역시 자치적으로 하라며 예산 지원의 책임을 떠넘기기 쉽다. 이번 도지사의 경우도 정부 예산을 별로 따오지 못한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불만요인으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제주도지사에 대한 전국적 관심과는 달리 제주도 현지에서는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도지사가 크게 잘못했나?" 하는 회의론과 동정론의 작용이기도 하지만, 언론, 시민권력, 행정권력 등 제주도의 모든 공식 권력이 제주도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주류 언론은 도청으로부터 광고와 취재원을 제공받기 때문에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일례로 지역민영방송인 JIBS는 제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된 지난 6일 보도에서 JIBS는 김 소환대상자에겐 세 꼭지에 4분 10초를 할애한 반면 주민소환운동본부의 보도분량은 한 꼭지 23초에 불과했다. 때문에 JIBS는 소환투표본부로부터 취재 거부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주도의 시민단체들도 도청의 지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도지사 소환을 지지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될 수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제주도의 행정권력이다. 서귀포 시장과 제주시장은 특별자치도지사가 임명하다 보니 제주시와 서귀포시 할 것 없이 공무원 사회에서 소환투표 지지의 '지'자라도 꺼내는 날에는 당장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유당의 최인규들이 곳곳에서 출몰한다. 최인규 씨는 부정선거 선동으로 악명높은 이승만 정부의 내무장관으로 각 시,도 경찰국장 및 사찰과장, 경찰서장,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을 소집해 공무원선거운동이 위법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처벌하지 않겠고, 징역을 살아도 내가 살겠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고 선동하며 4할 사전투표, 3인조, 9인조 공개투표, 완장 착용, 민주당 참관인 매수와 축출 같은 부정선거 신기술을 선보였다. 특히 취임사에서 "경찰관과 일반 공무원은 이 대통령 각하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면서 공무원의 선거 간여를 독려해 물의를 빚었다.
"제주도 한 고위간부가 읍면동을 돌며 공무원들은 부재자 신고 및 투표를 하지 마라고 종용하고 다닌다"
"이번 부재자신고에서 서귀포시 공무원들은 부재자 신고를 전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