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공회대와 광화문에서 시사IN 특별판을 시민들에게 나눠드렸습니다.
그 동안 시사IN에 대해서 입으로 칭찬은 많이 해봤지만,
직접 몸을 일으켜 특별판을 나눠주기는 2년 만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해서 진보일간지를 꾸준히 구독했지만,
진보매체의 '가벼움'은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에 진보매체에서 쏟아내는 중계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습니다. 특히 검찰에서 흘러나온 '고급 시계'에 이르러서는 한숨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신문을 보다 보면 애매한 상황이 있습니다.
의혹이나 커다란 사건이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기사라는 것은 취재 대상을 선택하고 방향을 잡는 것에서부터 가치판단과 입장이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매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신문의 신뢰도가 결정됩니다.
이를테면 황우석 사건이라든지, 故 노무현 서거가 그렇습니다.
두 사건 모두 극적인 반전이 있었습니다. 이 반전 전후의 신문기사를 보면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까지는 신나게 중계하던 매체가 반전이 터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설이나 만평, 기사 등을 통해서 사과를 합니다.
사과를 한 번도 하지 못한 신문사는 논의할 가치도 없지만,
사과를 빈번하게 듣는 것도 약간 짜증이 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반전 이후에 욕을 듣는 신문보다는 반전 이전에 욕을 듣는 신문이 낫습니다.
시사IN이 황우석 사건 때 그랬습니다. 그 당시는 시사IN의 전신인 <OO저널>이었지만 주요 멤버가 다 시사IN으로 들어왔죠.
모든 신문이 찬양 일조로 황우석 박사를 중계할 때 시사IN은 과열된 분위기에 대해서 경계하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그 당시는 상당한 용기였습니다.

삼성과 황우석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터부가 되었다. 아무도 도전하거나 시비할 수 없는 존재, 범할 경우 전국민적 노여움을 사고 재앙을 받는 신성불가침의 속신(俗神)이 되었다. - OO저널(시사IN 전신) 816호

그러면서 기사는 말과 행동을 삼가고 경배와 찬양만 허용되는 우리 사회를 우려스럽게 그려냅니다. 그러면서 용감하게 의견을 밝힙니다.

그런데 터부를 범한 죄로 재앙을 입을 각오를 하고 감히 말하자면, 나는 이런 우리의 현실이 아슬아슬하고 공포스럽다. 삼성과 황우석에 꿈과 생존을 올인하는 대한민국이 아슬아슬하고, 삼성과 황우석 앞에서 침묵만 지키는 대한민국이 공포스럽다. 
- OO저널(시사IN 전신) 816호


이런 비판적인 기사 때문에 황우석 지지자들이 신문사에 와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황우석 사태가 2005년 12월부터 파국을 맞이했는데, 2005년 6월 3일자에 나간 이 기사는 당시의 취재흐름을 상당히 거스른 기사였습니다.

이런 기사 스타일이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전에도 있었습니다.
다른 정론매체들이 중계기사를 쓸 때 시사IN은 아조 조심스럽게 기사를 쓰거나 아예 쓰지 않았습니다.
포털 뉴스검색에서 <시사IN>을 치고 "노무현"과 "시계"를 쳐보면 서거 전에 '명품시계'에 관한 한마디도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검찰에서 흘러나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은 집중적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최근에 시사IN 편집국장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그 분은 "시사IN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기사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시사IN은 검찰에서 나온 내용을 그대로 쓰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확인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보편타당한 내용만 기사로 썼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우리들의 언론은 경마 저널리즘에 가까워져 다른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면 강력한 유혹을 느낍니다. 다른 신문사에서 쓴 기사를 다루지 않으면 마치 안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참지를 못합니다. 시사IN도 한창 신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몰아세울 때 그런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답답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확인을 집요하게 하고 써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기사로 보냅니다.

지난번에 진알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국면에 경향, 한겨레 12만5천부를 배포하며 위클리경향, 한겨레21에서 특별판을 만들어서 돌릴 때 시사IN에도 같은 제안을 했었습니다. 특정 매체가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정론매체'라는 복수형으로 시민들에게 인상을 심어주자고 나름 설득력 있게 제안했지만 장고 끝에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오늘 배포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과 좌절,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담았습니다.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동정 기사는 쓰지 않겠다는 말이지요. 답답하기는 하지만 이런 시사IN의 자세가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시사IN의 기사를 보면 잘 쓴 글솜씨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를 아세요? 시사인에는 리라이팅 시스템이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쓰고 나서 이문재 시인이나 김승옥 소설가 같은 당대 명문장가들이 기사를 다시 손보며 완성도를 높이는 훈련방법이었습니다. 당시 기자들이 이 훈련법을 무척 힘들어했는데, 이 전통 때문에 시사IN 문장이 남다른 것입니다.

저는 오늘 3만부를 배포하느라 제대로 공연도 듣지 못하고 우리 해철이형 삭발한 모습도 보지 못했지만, 기분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 2007년 가을 광화문에서 배포할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더라구요. 이제는 "아, 시사IN"하면서 시민분들이 먼저 주워가시더라구요. 저는 처음에는 좀 쑥스러워서 가만히 있었는데, 시민분들이 "수고한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가서 힘이 부쩍부쩍 나고  갑자기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른 거 있죠?

"여러분 날씨 더우시죠. 시사IN 특별판으로 부채질 하세요. 아이들도 부쳐주시구요. 햇빛가리개로도 좋아요. 그러다가 그늘진 곳에서 읽어주세요~~~" 이러니 시민들이 재미지다 웃으시면서 너도나도 받아가더라구요. 200권이 단 30초만에 동나는 신공을 오늘 한건 했습니다 ㅋㅋㅋ

 



언소주의 삼성불매운동을 지지합니다.
http://www.jinals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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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6-23 01:27   좋아요 0 | URL
아~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