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간이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의 영정사진. (사진 : 오마이뉴스)


존경할 만한 정치인은 다 죽어 없어졌다

수용소 생활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사람은 집에 돌아와 보니 없지 않은가! 아니, 슬프게도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가버렸고, 이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된지 오래였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일부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다. 그가 인격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인간적 감화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수용소에서 진작에 주검으로 사라졌고 남은 사람은 자신처럼 어줍잖은 사람이거나,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아득바득 버텨왔던 장삼이사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몇 줄 안 되는 유서 속에 있던 문구다.
문학가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도 진흙탕에서 굴러왔던 정치인이 남긴 한마디 말이 마음속에 파고를 일으킨다.

야합과 편법의 정치사 속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무현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노무현과 같이 평가받을 수 있는 정치인은 죽산 조봉암이나 30대 기수론을 펼칠 때의 김대중 정도일 것이다.



촛불을 닮은 정치인 노무현


노무현은 촛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치인이다.
효순 미선 사태와 탄핵 국면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2008년의 촛불은 노무현과는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촛불로 인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정작업 일정이 잡혔던 것이고,
MB는 노무현의 도덕적 사망과 정치적 사망을 통해서 촛불의 씨앗을 절멸시키려 했다.

나는 촛불과 노무현을 성급히 연관짓고 싶지는 않다.
촛불에 대한 고민은 광우병 촛불이 타오르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촛불 1주년을 맞아 여러 각도로 관찰하고 있고,
촛불에 관한 직간접적인 책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맞이했고,
지금 상황에서 촛불과 노무현이 어떤 관계와 시사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정리해 보고 싶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촛불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촛불의 이미지는 '섬광'이었다.
순간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촛불 자체는 곧 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에너지를 받아간 사람들은 이를 되새기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며,
섬광이 주는 메시지를 수행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운명 같은 짧은 만남이 한 사람의 전 인생을 바꿔놓을 때가 있는데,
촛불이 그런 의미다.
연인원이 몇 명이고, 며칠 동안 타올랐는지는 부차적이다.
촛불이 당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가 남은 과제다.
1년이 지난 지금, 그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촛불의 에너지를 흠뻑 받은 사람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정치사에 '드라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 대통령

(노무현을 찬양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전제하면서)
노무현은 섬광과 같은 정치인이다.
노무현의 현직 5년은 애증의 시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정권교체 이후의 시간은 노무현에 대한 재해석이 가능해졌다.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현직에 임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는 국민으로부터 기존 정치인과는 궤를 달리 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평가는 드라마틱한 평가다.
우리 정치사에는 오랫동안 이런 드라마가 없었다.
노무현이 정치사에 다시 세워 놓은 '드라마'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촛불은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용기를 보태 손을 잡고 서로를 지켜준 우리들의 잔치였다.
아주 오랜만에 옆 사람을 믿을 수 있었고,
함께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토대로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쓰러뜨려야 할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무현은 사실 우리들에게 커다란 기회를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때문에"라는 유행어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포함해서 사법부 등 권력기관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한꺼번에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일궈온 개혁 속에서 가능했다.


촛불이 꺼지듯 생명도 마감한 사람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가 우리의 인권시계를 10년이나 앞당겨 놨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MB는 다시 그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세움으로써 노무현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등을 통한 사법부 개혁의 염원과
과거사위원회 등을 통한 과거사 정리 문제 등
어쩌면 우리들의 삶과 동떨어져 보일지 모르는 문제들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가치'라는 아주 생경한 '정치적 개념'을 불어넣어준 것은 노무현의 전매특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치검찰은 다시 돌아왔고, 정치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가 되기 바로 직전의 순간까지 왔다.
제주4.3특별법 등 과거사위원회, 인권위원회 등은 거의 폐지 수준으로 몰락하고 있다.

이 차이는 촛불이 끝나고 나서 있었던 일련의 과정들과 큰 틀에서 일치한다.
이런 현상이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촛불 자체는 힘이 없다.
노무현 자체는 힘이 없었고 이뤄낸 가시적인 성과도 없거나 없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섬광'이다.
촛불이 누군가의 가슴에 짚여 놓은 불이 중요하고,
노무현이 누군가의 가슴에 새긴 흔적이 중요하다.

나는 이틀 간의 여행 길의 초입에서 비보를 접했는데,
나름대로의 정리작업이 필요하기에 이렇게 글을 남겨 둔다.
노무현 섬광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는 1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현대 정치사에서 '노무현'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정치에 관여돼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조갑제 같은 극우 인사라고 할 지라도.
이것이 우리 정치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