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5일부터 제주도 전역에서 김태환지사 주민소환투표가 시작됐다. 광역단체장으로서는 최초의 소환투표다.

나는 서울에 사는 제주도민이다.
제주 사람들은 마을공동체끼리 매우 친하다.
이를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삼촌'인데,
아버지와 어버니 등 친지 어른들을 제외한 모든 어른들에게 '삼촌'이라고 부른다. (남자어른이든 여자어른이든)

그리고 친구의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의 어머니는 '어머니'라고 부른다.
00아버지, 00어머니가 아니라 '내 아버지', '내 어머니'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친분관계는 역사적으로도 잘 볼 수 있는데,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제주민들이 협심을 잘 하게 된 데는 예부터 중앙의 탄압을 많이 받았던 것도 주된 원인일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삼별초 항쟁'이다.
원나라에 끝까지 저항한 고려 무신들이 강화도-진도-제주도까지 퇴각하면서 끝까지 저항한 사건은 역사에서 미담으로 전해오지만,
사실 제주민의 입장에서는 2중으로 고통을 당했다.
2중고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제주4.3 당시에도 공비와 토벌대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토벌대는 공비에게 협조한다고, 공비에게는 밥을 안 주거나 토벌대에게 협조한다고..
그래서 제주민들은 서로 살기 위해서 협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요즘 제주도민의 유대감과 공동체정신이 거의 파탄날 지경에 처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제주해군 기지 때문이다.

평화의 섬이나 다른 추상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해군기지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공동체가 와해됐다는 점이다.
강정마을은 둘로 쪼개져 얼굴도 마주보지 않는다.
어른들이 그러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네편, 내편이 되어 다툰다.
공동체가 살아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강정마을도 반목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제주도지사 김태환이 추진하는 해군기지 자체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해군기지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MBC PD수첩 해군기지 편을 보니,
국정원과 경찰, 도청 등 권력기관들이 주민들의 반목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을 추진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것은 가정파괴보다 더 심각한 공동체파괴 범죄다.
김태환 도지사의 임기는 1년 남았지만,
이대로 해군기지가 처리된다면 100년도 넘게 뒤처리를 할지도 모른다.

경부고속도로를 떠올려 보자.
원래 경부고속도로는 개통 예정일이 1971년 6월 30일이었는데, 박정희는 1971년 4월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예정보다 1년 앞당겨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다.
무리한 일정 때문에 7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개통한 다음 날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되었고, 보수 비용만 건설비의 4배가 됐다.

제주해군기지의 강행은 77명이 죽는 차원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는 심각한 공동체 위기에 몰려 있다.

김태환이 물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김태환이 물러나고 공동체정신 회복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그보다 큰 다행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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