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경민 앵커의 하차와 PD수첩 제작진의 긴급체포 등 최근 현안과 관련해서 엄기영 사장이 대처는 물론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 : MBC)
정권교체에 상관 없이 원만한 관계를 통해 일신을 보존하는 유형이 있고, 원칙을 지키며 머뭇거림 없이 돌아서는 유형이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원칙주의자는 단명하고 원만한 자는 장수한다는 상식이 증명된다.
하지만 원만한 관계의 유형이 단명하는 사례도 있다. 엄기영 사장 이야기다.
엄기영 사장은 명분도 실리도 잡지 못하고 신경민 앵커를 하차시켰다. 그 배경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권자들을 밤9시마다 불편하게 하는 뉴스 진행 스타일, 즉 저널리즘에 충실한 앵커를 정치적인 이유로 퇴진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본인이 앵커 출신이면서 앵커의 앞길을 이렇게 막아버리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지만, 엄기영 사장이 정연주 사장처럼 교체되지 않고 순수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궁금한 것이 PD 수첩 같은 프로그램은 왜 진작 폐지하지 않았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경민 앵커의 하차 문제로 엄기영 사장이 방문진의 이사들은 이사회에 해암안을 제출한 상태다. 방문진 이사의 구성 면면을 봤을 때 부결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해임 여부와 상관 없이 이번 경우는 MBC의 패착이자 정부에게는 요행이다.
엉뚱하게 앵커 문제를 가지고 MBC가 내분을 겪고 있는 상황은 정부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한자에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를 다해 일신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단지 권력자에게 아첨한다고 해서 일신이 보존되는 것은 아니고, 원칙을 고수했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권력자의 뜻에 좌지우지되다 보면 이용당하다가 팽당하는 꼴을 보기 십상이다. 정연주 사장의 경우 이명박 정부의 조직적인 공작에 의해서 희생량이 되는 형태로 사퇴가 되었기 때문에 보폭에 여유가 있다. 여론도 나쁘지 않다. 물론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엄기영 사장은 참 딱한 처지다. 방문진의 해임 의결과 상관 없이 "사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또다시 비판을 듣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이근행)은 "오히려 사장이 사태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혹을 오히려 하나 더 짊어진 것이다. 엄기영 사장의 진로는 점점 딱한 처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한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연주처럼 '희생자 이미지'도 얻지 못하고 정부와의 일전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멍에만 남게 된다.
몸을 사리면서 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인사들은 엄기영의 사례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