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승주나무 > 정치인 유시민에게 종이컵 하나 선물한다

 
▲ 3월 30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유시민과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진행자로 나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욕을 많이 봤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제도정치 경력 6년차의 휴업상태라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정치인'이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와 알라딘이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대화에 나온 유시민을 어떻게, 어떤 존재로 보아야 하는가는 나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여의도 정치에 대한 그의 반감이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궁금했고, '관조자'로서 이번 국면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새 술을 담기 위해 유시민이 새 부대를 장만했는지 보고싶었다.

"대한민국,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유시민, 오마이뉴스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다. 작가나 지식인의 말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 <창작자유의 조건>《김수영 산문전집》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 나는 유시민이 너덜너덜한 정치인의 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모호함에서도 발견된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만큼이나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지식인'과 '장사치'의 중간사쯤 될 것이다. 유시민의 위상은 지식인과 장사치, 정치인 중 어디에 놓여 있는가? 이런 용어의 모호함 때문에 얼마 전 된통 야단을 맞았다. 르네21에서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선생을 초청해 강연회를 할 때 나는 <과학윤리>의 문제를 물었다. 선생은 대뜸 "과학의 윤리 이전에 과학자의 윤리가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사치스럽다"고 답변했다. 과학계 내부의 통제가 안 되고, 과학 언론이 살아서 과학의 모순을 밝혀내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황우석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과학계에 '과학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유시민은 '조어'가 아니라 '표제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유시민과 종이컵

홍대의 '홍콩반점'이라는 음식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 집은 서빙교육을 엄격히 시키는지 손님을 접대하는 요령과 폼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젠가 헛점을 발견했다. 볶음짬뽕은 현금으로 시키고 탕수육은 카드로 주문했는데, 볶음짬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짬뽕'이 나온 것이다. 예측된 시나리오에서는 완벽하지만 예측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유시민과의 간담회에서 공교롭게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달변의 유시민과 본의 아니게 난상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양비론으로 답변해서, 나는 처음으로 '재질문'을 했다.
질문의 요지는 특이하지는 않았다. 사상 최초의 역정권교체를 당했는데, 사상 최초의 정권재탈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2~3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20대가 50대와 정치성향이 비슷하다는 답변을 하며 은근히 20대를 깔보는 '꼰대근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30대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들은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헌법조항'의 소중함을 알지만 '어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사실 그는 2~30대에게 해줄 답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종이컵'의 비유로 답변하고자 한다.
일회용 종이컵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다시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대는 박스 안에 담긴 종이컵처럼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30대 초중반은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과외나 사교육 열풍이 그다지 심각했던 것도 아니고 싸워야 할 독재정권이 엄존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릴 기회가 있었다. 이들이 새로운 종이컵이다. 자유를 누린 만큼 현재 상황에 대한 빚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을 포함해서 386들은 한번 쓰고 난 종이컵이다. 종이컵에 커피를 부었든 떡볶이를 담아 먹었든 쓰고 난 종이컵을 잘 닦아야 또 쓸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잘 닦은 것처럼 보이지만 홈에는 아직도 떡볶이 자국이 남아 있다. 물을 넣어 마시면 떡볶이 냄새가 난다. 홈까지 아주 정성스럽게 잘 닦아서 '새 종이컵'으로 승화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참여정부 시절과 지난 10년의 민주적 성과를 낙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386의 상황을 최첨단으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지는 않다. 유시민의 책이 의미를 얻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지난 시대에 대한 총정리이자 반면교사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후불제 민주주의>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 늘어진 남성이 되어버린 형님들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자본이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빠져 있는 딜레마다. 그들은 시대를 바꿀 힘도 의지도 없고 다만 '지식'을 소비할 뿐이다. 그들의 지식을 사는 사람들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진리와 새삼 조우했다.


<페이퍼에 소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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