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명예를 가진 자들의 레드 예리코 작전 - 태양의 딸을 찾아서 HGS 비밀결사대 1
조슈아 몰 지음, 강미경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 <레드 예리코>의 활동 무대. 중국 본토와 남중국해, 영국, 이탈리아 피렌체에 걸쳐 있다.


세계 무대와 2천년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들이 노리는 물질인 '태양의 딸'과 그것을 얻기 위한 열쇠인 '자이롤라베'는 기원전 326년 알렉사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33년 과학자와 탐험가를 주축으로 결성된 폐쇄적인 HGS(명예로운 전문가 동업조합)은 자신들의 기술과 지식으로 세계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지만, 3개의 분파로 갈라지고 분파들이 악당들과 몸을 섞으면서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 '태양의 딸'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들과, 그 음모를 막으려는 자들로 나눠지고 이 작전에 긴밀하게 간여한 더그와 레베카의 부모님과 삼촌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물론 이러한 구성은 작가에 의해서 나온 것이지만 세세한 정보들은 분명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에 의해서 나왔다는 사실을 몇 페이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혀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접하며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건너며 중간중간에 밀봉된 '기밀사항'을 긴장된 마음으로 뜯어보았다. 그리고 전투함의 구조라든지 기구의 사용법을 익히며 마치 내가 그 모험에 동참한 듯한 착각을 느꼈다.

고집스럽고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쾌활하고 모험을 즐기는 두 남매 더그와 레베카는 실종된 부모님을 찾기 위해 삼촌을 찾아가는데 부모님의 실종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뒤늦게 사실을 알아채게 되고, 자신들이 그 비밀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HGS 출신의 부모님들의 피를 물려받은 남매 답게 모헙을 피하지 않으며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 예기치 못한 순간들과 적들을 물리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엉뚱한 꼬마과학자 더그가 발휘하는 기지는 번번이 나를 놀라게 만든다. 



<레드 예리코>의 3대 미덕

나는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 다빈치 코드 등 영국적 상상력과 위트가 풍부한 소설들을 읽기에는 나의 독서 목록표가 너무 완고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레드 예리코 작전>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영국 소설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영국인들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레드 예리코>는 우선 성실하다. 어떻게 구상하고 어떻게 디자인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텍스트의 흐름에 맞게 신문기사와 방의 구조도, 장치의 사용방법 등을 면밀히 기록해 놓았다. 특히 선박에 대한 정보 등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부를 많이 한 듯하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데뷔작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룬다티 로이는 그 후로 단 한권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핵실험, 대형댐 건설 프로젝트,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는 정치칼럼을 쓰면서 댐에 관한 기술서, 토목공학에 관한 실무적인 책들을 수없이 공부하며 정치칼럼가로서 다시 한번 태어난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술이나 물리 등에 대해서 소홀히 생각하거나 가볍게 생각하기 쉬운데, 작가가 그런 지식을 갖고 있고 열정적으로 그런 지식을 흡수한다는 것은 분명 뛰어난 자질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 많은 참고문헌이 소용된 소설책은 처음 본다. (책의 말미에 보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참고문헌의 목록이 가득 채워져 있다)

레드 예리코의 구성은 더그와 레베카라는 똑똑하고 까칠하며 고집스러운 남매가 실종된 부모님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모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급격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두 아이의 일기장과 스케치를 통해서 장면들을 환기해 준다. 소설의 내래이션인 셈이다. 소설이 흘러가면서 캐릭터들은 성장을 거듭한다. 성장을 거듭할수록 적들도 더 강해진다. 전형적인 게임의 원리이지만, 생각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생동감 있다. 레베카의 캐릭터는 더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캐릭터 부분도 흥미를 줄 것이다.

캐릭터들의 생생한 대화와 행동은 이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특히 악당에 대한 묘사에서 작가는 경지에 이룬 것 같다. 그 중에서 악당 성팟에 대한 묘사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못됐다'. 성팟은 자신의 요새 주위를 호위하는 무장 경비병을 300명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직접 V자 표시를 새겨 넣었다. 그 표시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같은 것인데 이 표시를 한 이유는 누군가 부하들을 자청하며 요새로 숨어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만약 성팟의 부하로 변신해 침입하고자 한다면 우선 V자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성팟이 직접 한 것이기 때문에 부하를 가장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이처럼 <레드 예리코>에 묘사된 악당은 용의주도하면서도 끔찍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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