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폭등은 출판사, 독자 모두에게 대재앙



▲ 3월 2일의 환율.1600원을 위협하다가 당국의 개입으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알고 지내는 출판사 사장님이 요즘 속이 다 타들어갔다. 환율 때문이다.
주로 외서를 번역해 출간하는 그 출판사는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계약금 잔액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요즘같은 달러가 폭등할 때는 좌불안석이다.

출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환율 폭등은 한마디로 '대재앙'이다.
출판사, 독자에게 모두 재앙이 미칠 수밖에 없다.

외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출판사의 판권 경쟁이 극심해진 상황이다.
유명한 외국 저자의 저작권을 얻기 위해 출판사가 목숨걸고 하는 일은 '저작권 선점'이다.
저작권 선점에는 돈이 든다. 일반적인 계약의 방식으로 선지급 50%에 출판시 잔금 50%를 지불하는 방식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출판사의 면밀한 사정을 수치적으로 알지는 못하고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사정을 아는 좀 특이한 독자에 불과하다.

출판사가 선점경쟁을 뚫고 계약을 따냈다고 하더라도 다음 관문이 남아 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다.
국내 시장의 상황과 수요 등 복잡한 분석을 하고 나서 '필승전략'이 섰을 때 출간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영화사와 배급사가 개봉 시점을 조율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책의 경우 적게는 1~2년에서 10년까지 출간 시점을 조율하는 경우가 많다. 대중들의 기호와 사회 상황, 이슈, 시장성 분석 등을 면밀히 하더라도 책 1권에 출판사의 운명이 결정날 수도 있기 때문에 출판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출간시점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 지난 10년간 환율그래프 추이


책이 비싸지더라도 살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

10년간 환율그래프(위 그래프)에서 계약 시점을 판단해 보자. 환율 안정기인 2003~2008년 초반 사이에 계약을 한 출판사들은 출간을 포기할 확률이 많다.
만약 A라는 국내 출판사가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던 2005년경 영미권 저자(또는 저자와 계약상태인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저작권료 1만달러 중 50%인 5,000달러만 지불한 상태라고 생각해 보자. 2005년 그 출판사는 500만원의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런데 2009년인 현재 시점에 출간을 하면서 잔금을 치른다고 생각해 보자. 5,000달러의 가치는 3월 3일 원달러 환율 기준(달러 현찰로 살 때)으로 7,897,800원(1$=1579.56원)이 된다. 약 3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즉 출판사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300만원의 비용을 독자들과 분산 부담해야 한다. 결국 책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 책값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우선 양장본이 많아질 것이다.

차라리 출판사가 독자들과 비용을 분담하기로 결정하는 상황은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망하는 출판사가 늘어날 것이다. 제작원가도 동시에 오르고 책의 소비층도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구조조정 1순위'는 단연 책값이니까. 독자들에게 양질의 책이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고 사람들은 옛날 책들을 뒤적이게 된다. 이 때 꼼수에 능한 출판사들은 표지를 신선하게 만들어서 구간을 신간으로 둔갑시켜 팔기도 한다. 이 때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은 양질의 출판사와 양질의 독자들이 같이 퇴보한다는 점이다.

양질의 독자는 국내에서 번역되거나 출간된 출판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과 심도 있는 최신의 담론들을 흡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희귀생물들이 얼마나 존재할까 의심스럽지만 이들의 기회도 함께 줄어들고 사회는 진취적인 부분이 상당히 약해질 것이다.

환율은 결국 문화의 위기이며, 존재의 위기이기도 하다. 나는 수입이 많지 않지만 외서, 특히 달러화를 쓰면서 좋은 책을 사오는 출판사들의 책들을 사는 데 비용을 더 들이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