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에 대한 첫 번째 폭력 사례, <TV, 책을 말하다> 폐지

우리나라는 '책 문화'가 일반적이지 않다 못해, 거의 사라질 지경이다. 지상파 TV에서 책에 대한 콘텐츠가 거의 전무한 것과 케이블 책 채널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프로그램 폐지는 제작진도 황급히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뒷부분에서 급하게 자막과 음악을 처리한 듯한 모습으로 프로그램 종방의 안내멘트가 자막으로 흘러나온 것을 본 시청자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폐지를 결정한 편성기획팀은 제작진에게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과 더불어 오랫동안 프로그램이 진행돼 오면서 생명력을 다했다"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이 말은 '공영방송'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민영방송이라면 '수익성'을 절대 가치로 놓기 때문에 인기 없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수익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판단을 따른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지독하게 책을 안 읽는 문화적 풍토 속에서 지상파의 책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상징성을 생각했을 때 공영방송이 공공성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 '민영화의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폭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TV, 책을 말한다>의 폐지를 현 정권이 문화공간에 가한 첫 번째 폭력사례로 기록한다.

<TV, 책을 말한다>는〈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에 이어서 갑자기 폐지된 프로그램으로 기록됐는데, 폐지의 과정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무척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것은 일반 시청자가 바라볼 때 KBS로부터 우롱을 당했다는 수치심까지 느껴지게 한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 선임된 이병순 사장의 재임 이후에 이러한 변화가 생겼다는 점도 씁쓸한 대목이다.



▲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책을 안 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책읽기 편식증은 더 심해질 것이다.



내가 본 <TV, 책을 말하다>

우리나라만큼 책에 대한 정보를 마음 편하게 얻을 수 없는 사회도 드물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 출판사가 융단폭격하는 책 정보는 기본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 '책을 팔기 위한 정보'를 다루므로 인터넷 서점을 '도서 유통회사'라고 한다. 이들이 다루는 정보는 책 정보가 아니라 '상품 정보'일 뿐이다. 서평꾼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역시 책 판매와 유통이라는 전제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TV, 책을 말하다>를 찾게 된다. 지식인과 작가가 책에 대해서 언급하는 자체가 소중한 문화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문화적 지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TV, 책을 말하다>는 도서 구매의 부담을 가지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책에 대한 담론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의 문맥과 책을 쓴 취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본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느낀 포만감을 느낀다. 책을 읽지 않고서도 책이 말하는 메시지의 정수와 핵심 쟁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편협한 독서방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한때 우석훈에 대해 매료돼 비판의식 없이 그의 책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우석훈의 논지는 대중적인 저널리즘에 가까우며, 엄밀한 취재와 엄밀한 논리, 명쾌한 대안에 이르러서는 해갈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갖도록 도와준 것이 310회 <대한민국, 제국을 꿈꾸다>였다. 당시 패널이기도 했던 보수 논객 변희재 씨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는 책에 대해서 "맛깔스런 문장과 주제의 참신성은 평가를 하지만 한국의 운명을 얘기하는 건데 그런 큰 주제의 결론을 끌어내기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반대편에는 진보 대표 논객 진중권 씨가 앉아 있었다. 변희재 씨에 비해서 다소 완곡하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말하는 한중일 전쟁가능성과 긴장에 대해서 "그런 경향성이 강화된다는 선에서 이야기하면 되는데, 필연적이고 하는 것까지는 과잉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우석훈과 우석훈의 책에 대해서 좀더 폭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이런 계기는 혼자 책을 읽을 때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다. <TV, 책을 말하다>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을 얻어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안배했다. 주제 선정에서부터 표현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에 대한 제작진들의 고민이 짙게 묻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책을 안 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책읽기 편식증은 더 심해질 것이다. 나는 '독서 멘토'를 어디서 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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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1-0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나라의 독서 멘토는... 느낌표! 입니다. ㅠㅜ
저질 상업주의 멘토링~
엠비씨키가 좋아하는 멘토링이져. 리만 브라쟈스의 저질...

순오기 2009-01-08 17:11   좋아요 0 | URL
하지만 대중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전국민을 독서의 열풍, 아니 보다 정확한 표현은 책을 사게 만들어 출판문화에 엄청난 보탬을 주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