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서 부산까지, 웬만한 블로거는 다 모였다

MBC에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MBC  방송대상 시상식 때문이 아니다.
MBC 노조와 독설닷컴이 개최한 '블로거와의 간담회'에는 블로거와 시민기자들이 대거 참여해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했다. 독설닷컴은 블로거들이 포스팅을 할 수 있도록 자정까지 엠바고를 요청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노조사무실에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정문에서부터 현관에 오기까지 '블로거간담회'라는 한마디면 모두 통과였다. 오늘 방송대상 시상식이 있었는지 경비가 삼엄했다.
평택에서 온 고등학생이 있는가 하면 부산에서 올라온 블로거도 있었다.


▲ PD수첩의 이춘근 PD가 간담회가 끝나고 사무실 한켠에서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그가 바로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다루며 한여름 촛불의 방아쇠를 담겼던 장본인이다. 이춘근 PD와 김보슬 작가는 오랫 동안 MBC에 숨어 지내며 검찰의 포위망을 피해 왔고,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임수빈 부장검사가  “ 제작진의 일부 사실왜곡은 인정되지만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켜 끝내 사의를 표명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결>에서 <북극의 눈물>까지

간담회에는 20여 명의 블로거와 박성제 MBC지부장, <북극의 눈물>을 연출한 조준묵 PD, PD수첩의 이춘근 PD, <일밤>, <황금어장>의 임정아 PD가 배석했다. 노조원들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블로거들은 심도 있는 질문에서 허심탄회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했고, 노조원들 또한 솔직담백한 답변을 했다.
<우결>의 임정아 PD는 "부모님은 매우 완고하신 분이어서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찍지 않았다며 야단을 치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요새 파업하러 간다니까 옷가지를 직접 챙겨주시며 격려해주셨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자들이 밑바닥부터 떠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예능 PD라는 이유로 많은 질문을 받은 임정아 PD는 그저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재미있게 말을 했다. 제작진의 파업에 대한 연예인들의 반응을 묻자 "연예인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직접 의사를 밝히지는 않지만, '밥 잘 챙겨먹고 힘내' 같은 문자나 자신들이 하는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들이 보낸 신호를 나는 잘 받았다."고 답했다. 연예인들은 기본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심정적으로 동조해 준다는 게 임정아 PD의 '연예인 관전평'이다.


▲ 임정아 PD는 파업 전에는 너무 바빠서 옆에 있는 동료와도 터놓고 이야기를 못했는데, 파업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말했다. (사진출처 : MBC)


<북극의 눈물>을 연출한 조준묵 PD는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간담회에 임했다. 마지막 방영분을 편집하고 있을 때 마무리를 하고 싶었으나 '아! 이제부터 파업이지'하는 생각에 끝내 마무리를 간부에게 맡겼을 때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무척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준묵 PD는 아주 오랜만에 파업을 하다 보니 현장의 느낌을 너무도 몰랐다는 자책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아스팔트나 추운 바닥 위에 서 있어 봐야 제대로 된 작품이나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록'을 남겼다.


▲ 간담회 실황은 동영상으로 실시간 방송되었다. 블로거들은 카메라와 노트북 등 영상장비를 동원해서 간담회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블로거들은 간담회가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국밥집'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긴밀히 연락하기로 했다. 곧바로 촛불문화제를 취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블로거들을 보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포스팅을 남긴다.

이번 MBC노조와 블로거와의 간담회는 블로거가 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공인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노조원들은 일반 신문에는 절대로 실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준묵 PD가 블로거들에게 남긴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뉴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니, 이미 뉴미디어 시대가 왔다.

"80년 광주항쟁 때 국내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것들을 외신에서 다뤄줬다. 그런데 지금은 블로거 여러분들이 '외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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