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EBS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방영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1914년 12월 24일과 25일 양일에 걸쳐 적군끼리 휴전을 하고 우애를 나눈 '사건'을 영화화했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병사들에 의한 ‘자발적인 크리스마스 휴전’은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휴머니즘의 섬광을 비춰주는 사건이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거리에는 삶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겨울이 되면 특히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을 절대로 구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은 상대라면 누구나 죽여야 하고 내련앉혀야 하는 전쟁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는 일상이 전쟁이다.

“우리가 나아가는 대열에 여기저기에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끼어있으면 그 대열 전체가 속도를 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의 신화적 돌파력에 국민들이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오늘은 낙동강, 내일은 영산강, 다음은 금강과 한강에서 지휘봉을 들고 땀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이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내각 역시 경제회복이란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돌파내각 구실을 해야 한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예산전쟁은 끝났지만 남은 것은 연말까지 법안전쟁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전쟁을 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은 어린이, 노인, 약자, 서민들이다. <메리크리스마스>에서 적과 대치하며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 중에서 지도급이나 권력자는 아무도 없다. 권력자들은 "와인잔이나 들고 설칠 뿐"이다.


▲ 왼쪽부터 그리스군, 독일군, 프랑스군 하급 지휘관들이 휴전 협정을 하며 담화를 나누고 있다.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오히려 권력자들은 서민들이 피를 흘리게 해 자신들을 배를 채운다. 그래서 흡혈귀보다 더 잔인한 사람들이 권력자들이다.

<메리크리스마스>는 '종교'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크리스마스라는 시간과 '전장'이라는 공간에서 실현하였다. 그 중심에는 휴머니즘이 있다.

무인지대는 누구도 살아나오지 못하는 공간이다. 무인지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느 진영이든 대규모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적군이 밤새 경계하고 마주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인지대를 허물어뜨린 것은 목사와 테너 가수의 아름다운 성탄노래다. 성탄절을 맞아 양 진영은 본의 아니게 서로의 캐롤을 교환하게 되었고, 독일의 유명한 테너 가수 니콜라스 슈프링크(벤노 퓨어만)는 총이 아니라 '노래'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무기로 무인지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노래는 모든 군인들의 마음의 벽을 한번에 허물어뜨리며 전장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켰다. 전장이 무장해제된 공간은 다름아닌 총알이 빗발치는 무인지대다.

무인지대에 모인 3국의 하급 지휘관(영관 이상이 아니라 대위, 중위, 부사관이 그곳의 최고지휘관이었다)이 커피 회동을 해 휴전을 협의했다. 병사들은 각기 술병과 악기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르고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죽은 이에 대한 의식도 양 진영의 협의 하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전쟁에 휴머니즘이 깃들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다른 전장은 아기예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직도 총알이 빗발치고 있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의 협의를 했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우리를 가만두지는 않을 거야"(그리스군 지휘관)

휴머니즘은 아주 섬광같은 순간에 머무르다 조그만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휴머니즘이 사방팔방에 깔린다면 그것은 사이비 휴머니즘일 뿐이다. 내가 만약 휴머니즘을 실천한다면 나는 동시대인들 중 극소수의 극소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실천이 가치가 있다. 내가 휴머니즘을 실천한다고 세상이 변할까 하고 회의하는 것은 휴머니즘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아주 조그만 휴머니즘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감화하고 이를 계승하려는 사람의 꼬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차 세계대전의 아주 사소한 전선에서 일어난 크리스마스 휴머니즘이 영화로 소개된 것은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전쟁 같은 성탄절 아침이지만, 나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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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8-12-25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즐거운 성탄 보내시고 있지요?
부디 내년에는 아프님 말씀대로 맹박이가 아무일 안 벌리고 그냥 테니스나 치면서 보냈음 하는데, 꿈이 너무 큰거죠?

승주나무 2008-12-29 10:59   좋아요 0 | URL
네~ MB는 2009년에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제발 참아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