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의 한 약국. (자료출처 : M.K.Choi)



실화입니다.

처제가 아이를 낳고 시골로 내려가 있었는데,
마침 해외출장을 마치고 작은동서(처제네 남편)이 시골로 내려가 간만에 부부가 상봉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해외출장으로 감기를 얻어 동네 약국에 약을 지으러 갔습니다.
집에서 한 50미터 정도 떨어진 약국이어서 집에 들렀다가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건 좀 귀찮았나 보죠

작은 동서는 길가에 차를 세워 두고 약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2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 겁니다.
처제가 궁금해서 동서에게 전화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동서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는 거였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동서가

"할머니 지금 약 조제 중이셔."

조제실에 적힌 약의 목록들이 빼곡해서 정해진 약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낸 것이지요.
아무튼 20분 정도 걸려서 겨우 약을 조제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처제와 동서는 5번 넘게 통화를 한 모양입니다.
실시간으로 조제 정보가 다 나옵니다.

그런데 또 10분을 기다려도 이 놈의 남편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처제는 답답하고 열불이 나서

"아니 거기서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왜 안 나오는데!?"
라며 화를 냈습니다.
동서는 당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지금 컴퓨터에 입력 중이야"

할머니가 컴퓨터를 보면서 조제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처제는 차에서 내려서 약국으로 갔습니다.
할머니 약사님은 자판을 보면서 정성스럽게 조제 정보 입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10분이 지났지만 아직 반도 못 채웠는걸요?

할머니는 손님을 일찍 놓아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정보 입력을 멈추고
카드를 받아들고는 카드 처리기를 켰습니다.
또 한참 동안 끙끙대더니 결국

"그냥 현금으로 1,500원만 주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하십니다. 할머니의 미안한 표정이 자꾸 그려져 안타깝네요.
약값은 최소 2,500원 정도인데,
할머니 약사님이 너무 미안했는지 결국 약값을 깎은 것이지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퐝당한 일이지만,
이 일을 들을 때는 상황이 막 그려지면서 웃어 넘겼지만,
좀 씁쓸한 기분도 들더군요.  시골 동네 약국의 현실을 보는 듯해서...

저도 이 일을 혼자만 알고 넘어가기에는 아쉬워서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할머니 약사님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랫동안 건강하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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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1-2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리게 살아도 멋져요. 하하핫^^ 저도 파이팅입니다!

승주나무 2008-11-27 15:01   좋아요 0 | URL
글쿤요.. 느린 것에 대해서 저도 조금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L.SHIN 2008-11-28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할머니는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현대인들이 '빠른 시대'에 너무 익숙해서 '기다림'을 잊어가나 봅니다...씁.

승주나무 2008-12-02 10: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컴퓨터도 잘 해야 하고, 작은 글씨도 보아야 하고..혼자 하기에는 약국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