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 혜화동1번지 4기동인 페스티벌 2 극.장.전 중의 1부인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는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하는 동인제의 작품이다.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촛불을 연극으로 구현했다고 하는데,
그 50만의 장중한 빛깔을 사유에 담아내기 위해 그 날고 긴다고 하는 학자들이 모조리 실패한 그 에너지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척박한 예술 기반인 연극계에서.

일단 극은 광화문에 모여든 한 무리의 중학생 촛불 모둠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명바기를 욕하고(실제로 욕했다) 명바기를 찍은 투표권자 삼촌, 엄마, 아빠를 욕했다.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고 중딩들의 과외선생님부터 삼촌, 엄마, 아빠, 할아버지의 시대를 소환하기에 이름다. 

중딩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중딩들의 과외선생님, 즉 20대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20대의 참상은 <88만원 세대>에서 만났던 적나라한 장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꺾기라든가 취업 6종 세트, 성형수술 등의 조건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20대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20대 대학생들은 촛불 국면에서 중고등학생들보다 사회의식이 저질이라는 이유로 욕을 많이 먹었다. 
중고등학생들은 '공부'라는 의무이자 권리의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완충지대를 얻을 수 있지만, 
대학생들은 학점과 취업이라는 절대목표에서 한 번도 자유로워본 적이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사회의 참여자가 될 수 있겠는가. 
여기서부터 연극의 문제제기가 시작된다. 

촛불에서 피어나지 못했던 불꽃인 '비정규직'과 
촛불에서 피어나지 못했던 세대인 '20대'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결합되기 쉬운 화합물이다. 
면접장에서 부모의 경제력을 추궁당하고, 
주유소, 레스토랑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21세기판 노예제도의 사슬을 짊어지는 세대,
학자금 대출이 승인되지 않아서 끝내 목숨을 끊어버린 친구와,
학자금 대출이라는 더럽고 치사한 제도를 뚫고 졸업에 성공해 수천만원의 빚더미에서부터 새출발을 하는 친구의 삶 중에서 어떤 것이 최악인지 점점 헷갈리는 세대.
촛불을 통해서 우리는 그런 20대를 욕했다. 왜 촛불을 들지 않느냐고. 왜 싸우지 않냐고. 왜 빙신처럼 공부만 하고 알바만 뛰냐고.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헤어나오기 어려운 20대의 처지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연극은 '타임머신'이라는 장치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한다.
자신을 무능하고 의지도 없고 배짱도 없고 교양도 없다고 욕을 해대는 세대는 가졌지만,
지금의 20대는 절대 가지지 못하는 가치.
분명히 그것이 있다.

군 생활을 해본 남자라면 알 것이다.
병장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모든 병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앞선 시간 군대에 며칠 더 있었기 때문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대마다 애환이 있고 사연이 있지만,
말 그대로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편견이 상식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20대와 드디어 조우한다.

이 연극의 질문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누구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왜 이 질문이 중요한지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팔자대로 살아간다고 방치해 왔던 것일 뿐.

20대의 문제는 본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의 과제가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과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 <누가 대한민국...> 제작진은 위의 자료들을 저본으로 하여 극본을 재구성했다. 이번 기회에 이 자료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연극의 재미를 주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탄탄한 극본, 중후한 연기력, 코믹한 장면, 멋진 음악과 춤.
지루하기 쉬운 파노라마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개와 갈등, 해소의 흐름을 절묘하게 배치해 극적 긴장감이 극이 끝날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장면 장면에 힘이 넘치고 웃음을 줄 수 있는 포인트가 넉넉했다.
특히 신정현, 이소영, 권민영 등 여배우들의 연기력과 센스가 돋보였다.
하일라이트인 마지막 장에서 불법방송 디제이로 활약하는 신정현의 압도적인 포스는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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