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한 번쯤 해본 놀이가 바로 '천재 놀이'다.
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천재들은 천재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을까가 무척 궁금한 거다.
나도 물론 그런 놀이를 해봤다.

도스또옙스끼는 "천재란 지금까지 지어진 언어의 탑에 '새로운 언어'를 얹어놓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도스또옙스끼의 '천재론'을 들어보면 정말 천재들은 천재에 대해서 그다지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매우 분명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보들레르'에 가면 그러한 점이 더욱 강력해진다. 보들레르의 말을 들어보자.

"기질과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여자들 사이에서 여자에 의해 길러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데가 있다. 유모적 보살핌과 어머니의 귀여움, 그리고 누이의, 특히 '작은' 어머니라 할 수 있는 큰누이의 사탕발림은 남성적 기질을 반죽처럼 주무르면서 바꾸어 버린다. 출생 이후 여인의 부드러운 분위기, 그녀의 손과 가슴, 무릎과 머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녀의 유연한 인상이 풍기는 향취에 오랫동안 젖은 남자는 예민한 신경과 돋보이는 품성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는 남성과 여성을 다 지니고 있는 인간이 되는데, 이런 속성이 없으면 더없이 힘차고 엄격한 천재도 예술의 완벽성에 있어서 미진한 존재로 남을 뿐이다." - <꿈꾸는 알바트로스> 중에서

요즘 내가 주목하는 '천재'는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당대는 물론 50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사랑을 빼앗겨본 적이 없는 행복한 작가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자랑으로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를 평생 동안 연구해온 김정환 시인은 셰익스피어가 '천재'라기보다는 '민첩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말이다. 김정환 시인에 의하면 '천재'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당대에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김정환 식 '천재'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스피노자와 니체 정도가 되겠다. 스피노자는 평생을 탄압과 협박 속에서 살면서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지도 못했다. 니체는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결국 정신병 속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당대에도 대중적 사랑을 받았으며, 대중적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문학적인 단계로까지 끌어올린 공로가 인정된다고 한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경력을 보면 눈치챌 수 있다. 극작가, 배우, 연출가, 극단 운영가로서 매우 다양한삶의 궤적을 그려왔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대를 읽어내는 감수성이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때문에 빌 게이츠는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21세기형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김정환 시인은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 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 꽃》《해방 서시》《우리 노동자》《기차에 대하여》《사랑, 파티》《희망의 나이》《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텅 빈 극장》《순금의 기억》《김정환 시집 1980~1999》《해가 뜨다》《하노이 서울 시편》《레닌의 노래》《드러남과 드러냄》등 20여 권의 시집과, 소설 《파경과 광경》《세상 속으로》《그 후》《사랑의 생애》, 산문집 《발언집》《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의 할 말 안 할 말》, 평론집 《삶의 시, 해방의 문학》, 음악 교양서 《클래식은 내 친구》《내 영혼의 음악》, 문학 창작 방법론 《작가 지망생을 위한 창작 강의 일곱 장》, 역사 교양서 《상상하는 한국사》《20세기를 만든 사람들》《한국사 오디세이》등이 있으며, 《더블린 사람들》《셰익스피어 평전》 등을 번역했다. 2007년 제9회 백석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번역 1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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