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10월 28일 벌어진 법정모독 사건은 법원의 자유, 평등, 정의와 민주주의 원칙이 후퇴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

 

난생 처음 본 재판정 풍경

10월 28일 퇴근을 하고 저녁 8시에야 법정에 도착했다. 그날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부장판사 이림) 제2차 공판 기일이었다.(사건명 '2008고단5024업무방해') 재판정 밖에는 아직도 남은 증인이 대기하고 있었고, 앞쪽에는 조중동에 의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언소주 회원 24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뒤쪽에는 방청객들이 재판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 재판은 밤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청원경찰은 무척 예민한 눈초리로 재판정의 미동을 감지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청원경찰은 바로 일어서며 소요가 없는지 관찰하고는 다시 앉았다. 방청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제지해 재판정의 위엄을 지키려고 모진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재판정의 위엄을 훼손시킨 사람은 검찰이 증인으로 공식 채택한 조선일보의 증인과 검사 자신이었다.

마지막 증인으로 증언석에 앉은 조선일보 애드본부 마케팅팀장은 진실선서를 마치고 착석했다. 매우 꼼꼼히 정리해온 종이를 앞에 펼쳐 놓고 검찰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해 나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변호인단은 증인의 증언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혹시 심문사항을 보면서 답변하는 거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심문사항'이란 검찰이 증인에게 재판정에서 질문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서류로 판사와 변호인이 함께 공유하게 되어 있다. 증인은 자신의 답변을 정리한 서류를 참조할 수는 있지만, 검찰의 심문사항을 '커닝'해서는 안 된다. 특히 검찰에서 채택한 증인이라면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하기 때문에 검찰과 증인이 서로 입을 맞춰 '연극'을 하면 법정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점에서 작은 일이 아니다. 증인은 "심문사항 보면서 하는 게 아니다"며 변호인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은 증인의 의사를 존중하며 불법증언을 하지 말 것을 다시 한번 경고했다.
하지만 증인의 증언이 한참 진행되는 와중에 변호인은 증인에게 다가가 '종이'를 회수했고, 검찰에게 가 '심문사항'을 꺼내 든 뒤 판사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판사는 두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서 검사의 '심문사항' 유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증인의 설명을 요구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사전에 증인신문사항을 교환하고 입을 맞춘 행위는 명백해 형사소송법 위반이다.
판사가 증인의 서류와 검사의 심문사항을 대조해본 결과 1~8의 가나다라가 모두 일치했으며, 증인의 서류에는 질문사항이 없고 답변내용만 있었다. 판사는 검찰이 심문사항을 증인에게 미리 유출했거나 증인이 예상문제와 답안지를 검찰에 제공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증인의 답변을 요구했다.
증인은 "검사에게 심문사항을 미리 받은 적 없다"고 답변했고, 판사는 두세 차례 동일한 질문을 하고 나서도 증인이 똑같은 답변을 하자 "속기록에 적으세요. 받은 적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증인을 향해 "재판정에게 진실선서 하셨죠? 이게 거짓말이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증인이 판사의 질문에 당황하며 답변을 못하자 판사는 "증인 정신차리세요!"하고 다그치기도 했다.
검사가 이에 대해 답변하려 하자, 판사는 검사를 제지하고 증인의 답변을 요구했다. 증인은 "예상문제를 만든 적은 있지만..."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그것은 앞선 증인(조선일보 영업부 담당자)에게 전달해줬으며 검사에게 보내주었다는 말은 끝내 감췄다. 판사는 증인에게 더 들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검사의 설명을 요구했으며, 검사는 '재판의 효율성'을 위해 증인에게 예상문제를 받았지만, 자신이 그것을 '편집'해서 심문사항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조선일보의 증인들이 검사에게 예상문제를 보내주었고, 검사는 그것을 그대로 '읊은' 셈이다. 앞서 증언을 했던 증인은 판사의 요구에 따라 증언석으로 다시 소환됐지만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방청석으로 돌아가더니 곧바로 퇴실해 버렸다. 결국 증인이 검사에게 예상문제를 보냈는지는 '검사의 입'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변호인은 마지막 증인(애드본부 마케팅팀장)을 배제하거나 심문사항을 보고 증언한 부분부터 속기록에서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판사에게 정식 요청하였으나 판사는 "이미 증언한 내용을 없는 것으로 하는 절차는 없다"며 자신이 증언의 내용을 판단하겠다고 답변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하지만 판사의 표정은 불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8시간 넘게 재판정을 지킨 방청객에게 큰 상처 안겨줘

이 날의 해프닝을 들여다보면 법정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판사의 재량권으로 충분히 심문사항 유출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음에도 증인을 놓아준 점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사는 증인과 심문사항을 공유하고 예상문제까지 함께 만듦으로써 신성한 재판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증인의 심문답변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심문사항'을 만들어 판사에게 제출한 검사의 불성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증인에게 받은 예상문제는 심문사항의 참고사항은 될 수 있겠지만, 이번 재판에서 예상문제는 참고사항의 수준이 아니라 '대본'의 수준이었다. 검사는 예상문제를 거의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는 사실이 판사에 의해서 밝혀졌다. 검사는 '그래도 편집은 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재구성 수준이 아니라 맞춤법이나 세부적인 것을 교정한 수준에 불과했다. 민주법정에서 증인이 작성해준 예상문제를 그대로 낭독하는 검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판사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행히 마지막 증인이 예상문제 해프닝을 벌이던 당시에는 앞선 증인이 방청석에 있었다. 판사는 해당 사안이 앞선 증인과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증언대로 다시 호출명령을 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앞선 증인에게서 필요한 답변을 듣는 데는 실패했다. 마땅히 증인에게 "이 사안은 (앞선) 증인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퇴실하지 말라"고 명령해야 옳다. 증인들과 검사 사이의 커넥션이 오간 상황에서 증인 한명을 풀어놓음으로써 명확히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을 흐지부지하게 만든 일정 정도의 책임은 판사에게 있다. 그리고 판사는 두 증인에게 엄정하게 물었어야 한다.
증인과 검찰이 형사소송법 상의 절차위반으로 법정모독죄의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판사의 판단처럼 "증인이 검사에게 예상문제를 제공"했거나 "검사가 증인에게 심문사항을 유출"했거나 하는 부분을 명확히 물어 이에 대해서 검사와 증인에게 공개적으로 경고를 했어야 옳다. 방청석에서 재판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본 시민들은 이런 절차적 미숙함에 몹시 실망스러운 눈치였다. "위증이 분명한데 판사님은 뭐하시나요?"라는 항의가 들리기도 했다.

재판은 상당히 민주적인 절차다. 단 한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파멸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세 번 판단할 수 있도록 삼심제를 두고 있으며, 증인 채택에 있어서도 유불리를 감안해 공평하게 선택권을 주고 있다. 재판정에서의 심문 역시 증인심문이 끝나면 반대심문의 기회를 주고 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실제로 재판과정에 세세하게 담겨있는 민주주의를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재판정에서의 민주주의는 재판정의 모든 구성원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을 때 실현될 수 있다. 검사와 증인이 미리 입을 맞추고 재판정에 들어선 것 자체는 형법상의 위배사항을 떠나 명백히 재판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판사는 이것을 제지해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거나 검사와 증인에게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거나,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고 "알아서 판단하겠다"는 식으로 유야무야한다면 누가 재판에 귀기울이겠는가. 10월 28일 311호 법정에서 훼손된 민주주의에 대해서 재판 구성원은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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