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났던 촛불남매


세계적인 촛불, 세계적인 공간 광화문, 청계천


적절한 동기와 도구가 주어졌을 때 그룹 행동이 갖는 힘은 폭발적이다. 촛불문화제의 적절한 동기는 '쇠고기 협상'이었고, 절적한 도구는 '촛불'이었다. 그리고 이 이면에 흐르는 문맥이 있는데, 그것은 변화이다. 10년 전만 해도 촛불문화제는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의 저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택시 뒷자리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에반'의 이야기를 통해 5년이나 10년 전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한다. 에반의 휴대폰을 주은 인물은 사샤. 그는 에반이 휴대폰을 찾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고, 자신이 경찰에 의해 붙잡힐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에바가 홈페이지를 통해 이에 대한 글을 올리자 유저들은 관심을 제공함으로써 에반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했고, 에반은 그 관심을 잘 이용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이 사건은 유수의 신문사들에게까지 알려져 보도되었고 한 동안 사회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지역적 사건이 순식간에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옳은 대의를 위해서라 그룹 동원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촛불 이야기에 적용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가녀린 여중생 십여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때만 해도 50만의 촛불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부당하며, 우리 아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홍수처럼 사람이 늘어났다.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로 인해 청계천과 광화문은 단지 서울의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게 된 세계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 국제적인 촛불이 타오른 사건에도 달라진 시대적 상황과 대중들의 역동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로운 대중은 '조직'이 다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자세히 알수록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미 할 의향이 있는 일도 더 쉽게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면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 이것이 인센티브의 법칙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 경제학에서 이견이 없는 몇 안 되는 법칙 중 하나가 바라 사람들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끌다, 27쪽)
기존의 조직과 새로운 조직 사이에는 '관리비용'이라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그룹이 스스로 형성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노동력을 관리한다. 직원들은 자유와 봉급을 맞바꾸고 직원의 생산물을 감독하고 모니터하는 비용을 부담한다. 조직이 수백, 수천으로 커지면, 그 관리자들까지 관리를 해야 하고, 결국에는 관리자들의 관리자들도 관리해야 한다. 종국에는 그 조직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엄청난 관리비용이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돈'인 까닭이다.
조직의 달라진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저자 클레이 서키가 직접 경험한 AT&T와의 파트너십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사이트 스페시픽(site specific)라는 작은 웹 디자인 회사에서 기술 책임을 맡고 있던 저자는 AT&T라는 거대 기업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의 회사는 대부분 20대 청년이었으나 AT&T의 파견직원은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이 논쟁하게 된 것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채택 때문이었는데 저자의 회사는 펄(perl)이라는 언어를 쓰는 데 비해, AT&T는 C++을 고수했다. 그들은 '펄'이 '상업적 지원'을 어디에서 받느냐고 물었지만, 펄은 '필 커뮤니티'로부터 지원을 받을 뿐이다. 그것도 무료로.
대기업의 파견 직원들은 이 사고방식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돈을 지불하고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커뮤니티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어려운 질문을 생각해내 comp.lang.perl.misc에 올리자 AT&T와의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답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국 실패한 모양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펄 커뮤니티는 규모를 더욱 키워간 반면 AT&T는 거듭된 대규모 정리해고와 대체 전략 개발에도 불구하고 회사 몸집이 보잘것 없을 정도로 줄었고, 결국 2005년에는 10년 전에 비해 규모가 1/5의 가격으로 매각되고 말았다. 펄 커뮤니티는 오늘도 펄을 사랑하는 수백만 명이 펄로부터 하루를 시작해 펄로 하루를 마감하기 때문에 건재하다.
이렇게 새로운 조직이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낌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됨으로써 시간을 영속하는 것이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두 번째 촛불의 길을 열어라

1989년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는 시민들과 청년들이 동독에 대한 반체제 시위를 시작했다. 500명이 참여한 시위에서 경찰은 50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기세가 꺾이지 않고 매주 시위를 열었다. 처음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규모였다. 때문에 정부로서도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태를 주시하기만 했다. 솔직히 청계천에서 촛불을 든 여중생의 숫자보다 적은 군중들을 탄압해서 무슨 이익을 보겠는가. 그런데 매주 시위를 진행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시위가 떡잎 단계를 지나 만개를 시작한 것이다. '대중적 기반'이란 시위 참가자 수가 아니라 시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잠재적인 사람들의 수로 측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순식간에 시위대는 수십 수백만으로 불어나 베를린장벽은 허물어졌다. 이것을 정보의 폭포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시위대의 숫자로 일희일비를 한 셈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시위를 하면서 50회를 넘긴 시점에서 피로도가 발생했다. 이것은 몇 가지 법칙을 위배한 셈이다. 앞서 말했던 '용이성의 법칙'을 어겼다. 내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루 하루 시위에 가세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 직장인은 며칠 동안 시위에 참여하느라 직장에서 졸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두 번째 실수는 너무 자주 시위를 한 것이다. 로테이션이 되면서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라이프치히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했던 것 같다.
집단행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식의 3단계를 통해야 하는데, 촛불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인식의 3단계에 도달해야만 집단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시사인을 창간하는 과정에서 30억원이라는 자본금이 모인 것은 그들이 언론자유를 실천하면서 1년 내내 싸워왔고 독자들이 도왔고, 다른 언론이 지원하면서 인식의 3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사인의 경우 집단행동은 '지갑을 열기'였다. 촛불 역시 마찬가지다. 쇠고기 협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주장하면서 인식은 2단계로 넘어갔다. 매일같이 촛불시위가 진행됐고 경찰들이 진압에 나서며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향하고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불이 났다. 아마 가장 짧은 시기에 인식의 3단계로 도달한 것이 촛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인식의 3단계가 당장 정부의 입장을 바꾸지는 못한다. 인식의 3단계가 반복되면서 규모가 커지면 정부 역시 자세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곳에서 두 번째 촛불을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두 번째 촛불이 인식의 3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최근의 촛불국면과 광고주압박운동 등 역사적인 대중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파악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고>를 숙독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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