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못할까?
'배타성', '타자'라는 말은 아마도 우리를 가장 오랫동안 짓누르는 특징일 것이다.
이는 중화주의를 본받은 소중화주의와 기득권적인 유교의 관습 때문이다.
특히 왕실을 전체 가족과 일체화하여 단결력을 강조한 집단논리는
집단 외적인 요소들을 일체 거부함으로써 순혈주의를 키워 왔다.

▲ 16세기 마카오에 상륙한 포르투갈인들
조선에서 가장 먼접 접근해온 나라도 조선의 소식을 서양에 맨 처음 알린 나라도 포르투갈인데, 포르투갈인에게 비친 조선의 첫인상은 썩 개운치 않다. 1578년(선조11년)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포르투갈 선박이 태풍을 만나 조선으로 향하다가 다시 일본 나가사키로 되돌아간 일이 있었는데, 이때 프레네스티노(Pader Antonio Prenestino)가 남긴 <1578년 일본행 포르투갈선 표류 항해기록>에는 포르투갈 선박이 조선에 표류했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7월17일 맹렬한 태풍을 만나는데 안내자는 "만약 앞 좇이 찢어지지 않는다면 코리아(Coria)에 도착할 것이다"고 말했는데, 코리아를 소개하며 일본보다 미개한 달단(만주를 말함) 사람이 사는 섬이라고 소개했다. 배는 조선에 당도하게 되는데, 안내자는 "거기에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백성이 사는데, 달느 나라 사람과 통상을 바라지 않는다. 몇 해 전 포도아(포르투갈) 사람의 정크선이 그곳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 흉악한 주민들은 그 배의 소정(小艇, 작은 거룻배)을 빼앗고 그 안에 탄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전원이 학살되지 않기 위해 적잖이 고생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포르투갈인들은 몹시 두려워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 16세기 포르투갈 상선의 모습
당시 일본에서 전교활동을 폈던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은 당시 조선의 폐쇄적인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1549~1594년 사이의 일본 통사인 <일본사(Historia de Japan)>에서 그는 "조선인은 매년 상품을 거래하러 오는 일본인 3백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외국인이 국내에서 거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포르투갈 범선이나 그 밖의 배가 바람이 조류 같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조선의 항구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조선인들은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다수의 무장 함선을 출동시켜 사정이나 정황을 들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쫓아낸다는 것이다.
1622년 서양 선박으로 추정되는 배가 조선에 나타났을 때의 일이 <광해군일기>에 기록돼 있는데 크기가 산과 같고 배 위에 30여 개의 돛대를 세운 배 한 척이 사도진(오늘날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앞바다에 들어왔는데, 첨사 민정학이 편전(片箭, 길이가 1척 2촌(약36cm)인 짧은 화살)을 쏘았다고 하는데, 편전을 본 그들은 "조선의 작은 화살이 배를 거의 절반이나 뚫고 들어갔으니 활을 잘 쏜다고 할 만하다"고 했다고 한다.

▲ 네덜란드 선박으로 추정되는 서양 배를 향해 조선군이 쏘았던 편전은 두 뼘만한 크기이지만, 배를 절반이나 뚫고 갈 정도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뽐냈다. 사진은 <친절한 조선사>의 저자 최형국 씨
물론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식민지 약탈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저의가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다. 스페인 깡패들은 마추픽추의 잉카 제국을 무식하게 멸망시켰던 것처럼 서양이든 당시 조선이든 어느 쪽도 개운한 구석이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폭력과 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은 이익을 포기할 만한 절제력이 없고, 조선은 서양과 교섭을 할 만한 유연성이 없었으니까.
당시 서양인들과 무작정 싸움을 벌였던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얼굴색이 같더라도 체제를 달리하면 사정없이 몰살시키고, 설령 우리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체제의 피가 들어있으면 인정사정 없이 죽여버린 것이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아닌가. 극심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6.25 당시 1,800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미 대사관 문서, 책 40쪽)이나 최소 5만 혹은 10만에 달한다는 보도연맹 학살 등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을 용납치 않았던 폐쇄적인 조선인의 모습 그대로다.
2008년 현재는 좀 다른 피가 섞이게 됐을까? 하필이면 불교인 수십만 명이 들고일어섰을 때 대대적인 공안사건이 터지면서, 공안검사(이른바 정치검사)라든가 공안정치인이 자기들의 세를 확보하려는 욕심으로 신 공안정국을 기획하고, 이명박 정부와 하나라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받아들인 모습을 보면서 '배타성'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한심하고 불쌍한 백성이 된 기분이 사뭇 초라하기 그지없다.

▲ 이상의 내용은 <현실문화> 출판사에서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를 참조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서양인이 악령인지 조선인이 악령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악령같은 오늘날 우리 자화상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어서 책을 놓지 못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