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프로야구를 무척 좋아했다. 당연히 나는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를 좋아했는데 김중혁씨는 다른 팀을 좋아했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기록일지를 정리할 정도였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루를 빼먹은 거다. 수소문을 했는데 6반에 '김중혁'이란 애가 프로야구 기록일지를 쓴다는 소문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빌려달라고 했더니, 대뜸 '너는 뭘 내놓을 테냐'란다. 순수했던 마음이 '거래'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순간이었다. 그때가 김중혁과의 첫만남이다."
한겨레 북섹션의 최재봉 기자, 김연수, 김중혁 작가(왼쪽부터)가 홍대 카페 <창밖을 봐..>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하니누리의 북살롱이 마련한 자리였다.
웃음의 신기술 '낯설게 웃기기'
망중한이라고 해야 하나? 촛불집회가 한창 달아오를 때 나는 두 번 도망쳤다. 한번은 일본여행으로 그리고 한번은 김중혁과 김연수의 이야기판으로. 한겨레 프리미엄 서비스인 하니누리의 하니북살롱에서는 매달 신간을 낸 작가 중 주목할 만한 작가를 초대하는데, 공교롭게도 26년 지기이자 김천 패거리(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의 일원인 김연수와 김중혁이 신간을 출간했다. 하여 7월7일 저녁 7시 30분 홍대 부근의 카페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이하 '창밖을 봐') 3층의 야외무대에서 40여 명의 독자들과 만났는데, 본의 아니게 '외나무다리'가 돼 버렸다. 한겨레 북 섹션의 최재봉 기자가 사회를 보았다.
대놓고 웃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대놓고 웃게 된다. 그 신비한 마력이 어디에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청중들이 떠들석하게 웃을 때는 그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비트는 순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를테면 김중혁 작가는 "김연수 작가의 새 산문집을 잘 봤다. 첫 부분만 좀 읽어 봤는데 전부터 느낀 거지만 나는 김연수 소설이 더 좋더라. 왠지 글을 읽게 하는 힘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제 소설은 읽게 하는 힘이 강하다"라고 비틀었다. 바로 복수가 들어간다. "나는 지금까지 10권을 책을 냈는데, 김중혁은 달랑 소설책 2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중혁이 원체 게으르기 때문이다. 오늘 웬일인지 소설 한편을 탈고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누군가 악의 없이 나를 비틀고 풍자하고 조롱하는 기분이 어떨까? 그것은 본인만 알겠지만, 구경하는 독자는 즐겁다. 이것은 분명 의도된 웃기기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담'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좀 약하고, '개그'라고 하기에는 천박하다. 이 신기술의 새로운 이름이 필요한데, 나는 '낯설게 웃기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문학용어에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는데 러시아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창안했다. 그는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영역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에 달려 있으며, 그 특질은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한마디로 문학적 언어는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김연수의 특기가 '어눌하게 웃기기'라면, 김중혁은 '예측불허 웃기기'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작가의 독특한 웃음 성분이 조합될 때 '낯설게 웃기기'는 완성된다.
동갑내기이면서 26년 인연을 이어온 친구 작가 김연수와 김중혁. 김연수 작가에 따르면 오랫동안 원만한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만나면 문학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전지에 시를 채워넣고 기차에서는 '시 화형식'
최재봉 기자의 소개에 따르면 김중혁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은 사운드, 소리를 변주한 이야기로 경쾌하게 울림이 있다면, 김연수 산문 <여행할 권리>(창비)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권투로 따지면 김중혁은 잽을 주무기로 쓰는 아웃파이터라면 김연수는 훅을 중심으로 때리는 인파이터다. 죽기살기로 싸우자면야 인파이터가 유리하겠지만, 스파링에 가까운 간담회 자리에서는 김중혁이 유리하지 않나 싶었다.
"김연수는 어린 시절 기억을 팔아먹어서 상을 받았잖아요. 저는 기억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쓰지 못해 아쉬워요."
"김연수에 비해서 작품 수도 별로 안 되고 상도 많이 못 타서 셈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김연수의 그늘에 있는 게 포근해요."
"오늘 분위기가 다운되었으면 김연수의 비밀 몇 개를 터뜨릴 생각이었는데, 폭탄을 터뜨리지 않게 돼서 안심입니다."
뭐 이런 잽들을 쉴새없이 던져서 김연수 작가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마치 동화나 만화에 나올 듯한 두 사람의 경험담이었다. 하루는 문방구에서 커다란 전지를 사놓고 방에 펼쳐놓았다. 한 사람이 '나무'라고 하면 서로 나무에 대한 시를 써내려가고, '물' 하면 물에 대한 시를 써내려간다. 전지를 다 채워넣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많이 썼다. 이것이 스무 살의 기억이다.
기차에서 시를 태운, 아니 '화형'시킨 사건은 더 흥미롭다.
김연수 작가에 의하면 당시 무궁화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는데, 주머니든 여행가방이든 어디를 뒤져도 서로의 자작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은 김중혁 작가가 몹시 흥분하더니 이것은 시가 아니니 태워버리자고 제안했다. 당장 '시 화형식'이 시작됐다. 그때 기차에서 시를 한참 태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중혁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은 사운드, 소리를 변주한 이야기로 경쾌하게 울림이 있다면, 김연수 산문 <여행할 권리>(창비)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작가도 보통사람이구나
작가는 직업이다. 직업 중에서도 다소 희소하다 보니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아예 환상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 작가를 직접 만나 좋은 것은 환상이 하나씩 줄어들고, 그 자리에 보통 사람이 끼어드는 것이다. 근거 없는 환상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북살롱에서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 주워들은 인상을 남겨 둔다.
김연수 작가가 <여행할 권리>를 쓰게 된 것은 <한국문학>이라는 잡지에서 4회 가량의 산문 연재 청탁을 받은 것에서 비롯된다. 당시 연재소설을 쓰게 됐는데, 사실 연재소설을 쓰다 보면 연재산문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마감 전날에 전화를 받는데, 그 날도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어서 집을 나서려고 할 때 내일이 마감이라는 독촉 전화를 받았다. 주머니에 만져지던 '훈츈 사람 이춘대 씨'의 이야기를 3시간 만에 써서 보냈다. 4회를 다 마감했는데, 다음 회차에 또 마감 전날 독촉 전화가 온다. 거절 타이밍이란 게 있는데, 원고를 발송하고 책이 나올 즈음 말을 해둬야 독촉전화가 안 온다. 그런데 항상 까먹다 보니 미련하게 계속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타이밍도 있다. 대개 독촉전화가 오는 날은 계간지를 마감하고 5일 정도 간격을 두어서다. 게간지를 막 탈고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5일 정도 지나면 슬슬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이때 독촉전화가 오는 것이다. 웬만하면 산문은 잘 내지 않는 편인데,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어서 이번 기회에 출간하게 되었다고 그는 출간의 변을 밝혔다.
김중혁 작가는 최재봉 기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받았다. 신간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유난히 따뜻하고 휴머니즘 냄새가 나는 작품이 바로 <엇박자D>이며 김유정 문학상의 수상작품이 되기도 했는데, 솔직히 다른 작품에 비해서 좀 튄다 싶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김중혁 작가의 대답이 가관이다. "엇박자D는 작품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됐는데, 솔직히 아침에 급하게 써내느라 다소 '교훈적'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고백했다.
김연수와 김중혁의 공통적인 불만은 '진정한 악당'을 좀처럼 그려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김연수 작가는 작년 10월 29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출간하고 마련한 독자와의 대화에서 "강시우를 몹쓸 녀석으로 그릴 생각이었는데, 결국 그 녀석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쁜 인물이 되지 못했다. 그 점이 몹시 아쉽다. 그런 점에서는 프로소설가가 아니라 아마추어 소설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중혁 작가 역시 소설이 너무 착하다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이번에 첫 장편으로 좀비가 나오는 작품을 쓰고 있다고 밝혔는데(300쪽이 흘러가는 동안 아직 좀비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좀더 지독하고 악랄한 세계, 최대한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인물들을 창조해내겠다고 공언했다. 내친 김에 '악인'을 창조하는 팁을 하나 전수해달라고 물었다. 김중혁 작가는 함께 잘 그려나가자고 제안하면서 "착하고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양식이 있는데, 그 양식을 좀더 세게 설정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조언했다.
두 작가는 그날이 서로의 인연 중에서 가장 진지하게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연수 작가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지 26년째 되었는데, 이렇게 길게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술자리에서 전혀 문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학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시시껄렁한 신변잡기나 잡담,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질펀하게 논다는 말 아닌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