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형도의 시와 시작메모가 생각났다. 「밤눈」이라는 시였는데, 현재 나의 상황과 감정을 잘 표현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생각이 났나 보다.

거리에서 시 쓰기

제50차 촛불문화제다.
이곳에 몇 번째 걸음인지 헤아리기 힘들어졌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것을 인터넷에 신속하게 올렸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들뜬 상태'였다는 뜻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분노했고, 갈망했고, 불안했고, 애가 바싹 탔지만 나의 글에는 그런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이러한 열망을 번번히 묵살했던 것이다. 이명박이 국민들의 열망을 묵살했던 것처럼.

이 '묵살'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묵은때와 같은데, 앞선 2번의 선거 때도 나는 나에게 투표하지 않고, 나보다 강하고 독한 자들에게 권력을 허락했다.
김현진이라는 칼럼니스트는 내 마음 속에 이명박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시사IN 40호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 사실 나는 좀더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서 고성능 카메라를 원했고 이를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컴퓨터를 더럽혔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펜과 종이 한 장, 시집 한 권만 들고 거리로 나갔다. 기형도의 시집이다. 요절한 젊은 시인 기형도는 '밤눈'이라는 시를 쓰면서 '시작메모'를 남겼는데, 메모에는 거리에서 시를 쓰는 것이 고통이라고 썼다. 이것은 정제된 시적 감수성과 난폭한 거리의 소음이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고통만 안겨줄 뿐인 거리에서 계속 머물러 시를 썼을까? 그의 메모가 지금의 상황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전문을 인용한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으로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밤눈」은 그 즈음 씌어졌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삶과 존재에 지칠 때 그 지친 것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비유는 자연(自然)이라고.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앚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 「밤눈」의 시작메모 전문, 기형도전집 333쪽



나의 옹졸한 수백 개의 문장은 한 시민이 길바닥에 흘린 한덩어리의 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찰이 던진 벽돌은 선량한 가게의 간판을 찢고 무고한 시민에게 중상을 입혔다. 돌을 맞아 피를 흘린 시민은 급히 후송되었다.


부조화 선언

시인처럼 나도 부조화를 자청하려고 한다. 시민들이 목청껏 요구사항을 외칠 때 나는 그 외침들을 듣기 위해 침묵할 것이고, 촛불과 외침이 허공과 주위를 가득 매울 때 나는 모든 신경을 작은 종이 한면에 쏟아넣으려고 한다. 거리에서 나는 예외적인 인물이자 잉여인간이 되었다. 나의 급조된 글, 남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성정, 그리고 이를 통해 회피하려는 나의 유약함을 모두 털어내고 '부조화'라는 깃발을 든 이유는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이 '나'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가 아닌 나'는 급조된 자기배반으로 치달을 수 있고, 맹자의 무서운 예견과 만날 수 있다. 맹자는 무서운 소리를 한다. 만약 이명박이 너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네가 먼저 스스로를 버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밤눈」이라는 짧은 시를 읽으며 나는 거리의 시민들이 밤눈과 닮았다는 생각을 헀다. 이 시는 도시에 내리는 위태로운 눈을 시인이 포착해서 쓴 글이다.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밤눈」 전문, 기형도전집 91쪽

몇 번이나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밤눈의 온도, 죽음도 다가가지 못하는 온도를 품은 생명은 먼지 크기의 극히 사소한 얼음알갱이일 뿐이며 금세 녹고 말겠지만, 쫓겨나면서도 자꾸 허공을 향해 춤을 추고 빛을 반사하는 격정을 시인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나도 거리에서 시를 쓰기로 했다. 나는 거리의 촛불들과 부조화를 선언한다.


큰무덤

부덤보다 차가운 길바닥에 매달려 있던
촛불의 주인이 사라졌다.
그가 죽었다
새로운 촛불의 주인이 나타나 또다시
곤봉과 방패에 살해됐을 때도
사람들은 자꾸 나타나 기꺼이 죽었다
내가 기꺼이 죽을 테니
촛불을 더 달라고 성화다

무덤에는 사연이 많다.
더러는 너와 몸을 섞었던
치욕스러운 겨울밤을 잊고 싶어
죽음을 자청하기도 했고
물론 그보다 사소한 죽음도 있었다
사람이 죽은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무덤이 하나씩 세워졌는데
금세 사연 많은 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큰무덤 위에 누가 초를 꽂았다
촛불에도 사연이 많다
불나방처럼 촛불을 품에 안으려다 날개가 다 타버렸다
사람들이 촛불 앞에서 쓰러질 때마다
빛은 사연을 더해 갔다.
만 가지 사연을 가지고 애타게 타고 있는 촛불이
곧 꺼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에서 촛불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민들이 인간의 띠를 이루어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날랐다. 내게는 그것이 큰무덤처럼 보였다. 모래 알갱이 하나마다 남다른 사연을 머금은 큰 무덤. 거기에 촛불 하나를 올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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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무겁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