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새벽글을 쓴다.
오늘은 잠을 자지 않을 생각으로..

바닷가는 나의 신화적 공간인데,
거기서 소소한 이야기를 끄집어낼까 한다.
동네 형들은 바닷가에 가서 문어를 잡았다.
문어는 흐늘흐늘거리면서도 도망치는 재주가 비상하다.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가 하면,
그 유연한 몸으로 바위 구석구석에 붙어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동네 형들도 이에 물러서지 않았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해머를 들고 작은 바위를 깨부수기 시작한다.
애써 쳐들고 번쩍 하고 내리치면
바위의 한쪽 면이 없어진다.
그 틈으로 문어의 꼬리가 보이는데,
꼬리는 이내 숨고 만다.
그리고 또 내리치면
이번에는 다른 쪽의 면이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내리치기를 열번 넘게 해야
더 이상 문어가 도망가지 못하고 체념하게 된다.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동네 형들이라고 해서 힘이 장사인 것도 아니다.
한번 들어올릴 때마다 몹시 힘든 표정을 짓지만,
미꾸라지보다 더 잘 도망치는 문어를 잡을 때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다.

삼성특검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그것이 '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삼성의 이건희 씨가 쇄신안을 발표했을 때 그것 역시 조삼모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쇠고기 광우병 파동에 대해서 보수 언론이 그새 말을 180도 뒤집었고,
관료들도 그때는 잘 몰랐다는 등의 어이없는 핑계를 대며 입장을 뒤집었다.
그들의 허위가 빤히 드러났다고 해도 그들은 아직도 숨을 곳이 있다.
이제 망치로 한두 번 내리쳤을 뿐
문어처럼 그들이 도망칠 곳은 얼마든지 있다.
즉, 그들의 허위를 완전히 벗겨내지 못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허위임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압박을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의 부족에 대해서 사과하면서도
끝내 '광우병 괴담'이라고 한 대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인 김수영은
99%의 언론자유가 보장되었다는 말은 언론자유가 없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역시 허위를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위를 아무것도 벗겨내지 못한 것과 같다.
허위를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다면 문제제기를 한 입이 궁색할 뿐이다.
중용이라는 책에도 "따지지 않을지언정 만약 따져 묻는다면 명백해지지 않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바다에서 보았던 놈과 비슷한 문어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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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에 문어한테 가했던 것처럼,
"한번 들어올릴 때마다 몹시 힘든 표정을 짓지만,
미꾸라지보다 더 잘 도망치는 문어를 잡을 때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지요~~~ 기어코 문어를 잡아냈던 어린시절에 박수를!

승주나무 2008-05-29 11:12   좋아요 0 | URL
네~ 요즘은 더욱 바닷가에 가서 문어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문어는 안 잡아도 좋으니까 바다에 가고 싶어요~~
나는 바다 소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