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7년 민주항쟁에는 거대한 승리와 거대한 착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87년은 시민의 형식적인 승리와 노태우의 실질적인 승리를 모두 함의하고 있다. 때문에 87년을 진행형으로 보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87년을 과거형이나 완료형으로 보려는 관점들이 착각을 일으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우석훈 씨에 의하면 87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지금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거나 사교육 열병을 주도하는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나, 첫 술에 배가 부르다고 하는 현상. 이것을 87현상, 또는 87의 법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87은 박제된 현대사이며, 87 이후는 또다른 슬픈 현대사다.

2. 4.3특별법이 발의되던 2000년 벽두에 나는 제주도에 있었는데, 당시 작가들과 문학비평가 등 지식인들이 4.3의 이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했다. 4.3은 아직도 이름이 없는 상태인데, 나는 그때 4.3특별법 발의 이후에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했으나 시원스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4.3을 내게 처음으로 '학습'시켜주고 특별법 발의를 간절히 기원했던 선배는 특별법 발의 이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니 이제 다 해결된 거 아니냐?" 나는 참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4.3특별법은 아직도 보수 세력의 폐지 압박을 받고 있다.

3. 시사IN은 전직 시사저널 기자들이 사장의 편집권 전횡에 항거해 거리로 나오면서 독자들의 지지를 모아 발간한 자유언론의 완충지대다. 나는 거리에서부터 기자들을 응원했다. 극적인 과정을 통해 시사IN이 창간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더러는 함께 하였다. 하지만 첫 깃발만 세웠을 뿐 독자들의 염원에 대해서 시사IN은 아직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시사IN은 아직 빚을 갚지 못한 상태다.

4. 김용철 변호사는 다소 진보적이고 정론지라 평가되는 신문사를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제보를 실어주는 용감한 신문사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김 변호사와 그의 친구들의 시선에 시사IN이 들어왔다. 언론에 크게 실망한 김용철 변호사는 처음에는 시사IN을 특별히 보지 않았지만, 시사IN이 창간되는 과정을 듣고 제보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삼성의 압력으로 벼랑 끝까지 갔다가 독자들에 의해 구조된 시사IN의 특종으로 인해 삼성 문제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언론사는 일제히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87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뜻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삼성문제의 시작으로 보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삼성문제의 끝으로 보고 말았다. 삼성문제는 삼성쇄신안이라는 조삼모사로 일단락이 되어 쇠고기에 가려졌는데, 이 국면이 당장 어떻게 될지 바람 앞의 촛불이다.


시사인이 세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시사저널 투쟁을 첫 번째 이야기, 시사인 창간을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면, 시사인 제2 창간은 세 번째 이야기쯤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는 '독자'가 들어가는데, 독자 대표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전쟁의 한 줄기를 전선이라고 하는데, 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 살점과 무수한 피가 희생되어야 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독자들이 호응하면서 '전선'이 성립됐다. 기자들은 위험과 생계를 희생했고, 독자들은 십시일반으로 시간과 약간의 돈을 할애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선은 아직 미약하게나마 유지되고 있다. 전선에서 구를 만큼 굴렀다는 내가 다시 전선으로 뛰어든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면, 87법칙의 결계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서다.

천착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시대정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천착해서, 그 문제가 87법칙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시사IN의 세 번째 이야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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