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직접 만난다는 것

 

책을 쓰는 것과 저자를 만나는 것만큼 독자로서 매혹적인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저자를 만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저자에게 이끌려 사회문제의 정점으로 휘말려들어가게 된다면 독자가 느끼는 당혹감이란? 도서정보 유통매체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의 독자들이 <법률사무소 김앤장>(이하 <김앤장>)의 공저자 장화식 씨를 직접 만났다. 이번 간담회는 단순히 저자를 초청해서 일방적으로 강연을 듣는 간담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수십에서 수백 명의 독자를 거느린 1인미디어, 리뷰어들이 <김앤장>을 읽고 서평을 제출했으며 이미 심층질문지를 전달받은 상태였다. 20여 건의 리뷰와 리뷰어들이 보내온 질문지를 토대로 진행된 이번 간담회는 그래서 볼 만했다.

 

3월 15일 오후 2시 합정동 작은책 건물 2층 강연장에서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저자 장화식 씨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책에서 사법연수원 제도의 남용과 공직자윤리법에 대한 맹점 부분을 보았다. 회계사나 변리사, 감평사나 노무사 등은 없는 제도를 도입해서 5급 공무원1호봉에 준하는 급여를 제공하고 1인당 연간 1,16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교육시킨 고급재원을 김앤장에 공급하는 현 제도는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지난 5년간 우리나라 16개 중대형 로펌이 영입한 퇴직 후 3년 이내의 판사와 검사 161명 중에서 142명이 퇴직한 지 3개월 이내에 영입돼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직자윤리법은 있으나 마나한 것 아닌가? 제도를 더 강화하거나 다른 방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아이디 'littlechri')
"김앤장이 없어지면 제2, 제3의 김앤장이 나오지 않을까? 결국 시스템은 안 바뀌고 얼굴만 바뀌는 일이 되지 않을까?"(아이디 '알지')

 

매서운 질문 공세에 강사로 참여한 장화식 씨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전날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당일날 새벽에 산행에 다녀온 차림으로 간담회를 진행한 장화식 씨는 피곤함도 모르고 세 시간 넘는 간담회 일정을 잘 풀어나갔고, 뒤풀이 자리에도 참여해 독자들과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한 토론을 진행했다. 그에 의하면 책의 내용 중 5% 정도는 법률적인 문제가 있어서 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강연의 내용 중에서도 '시비'(?)를 걸 만한 내용이 일부 있었는지 "이 거는 녹음되면 안 되는데.."하며 불안한 심사를 에둘러 전했다. 후마니타스 박경춘 대리에 의하면 출판기념회 다음날 책이 유통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앤장' 측 인사들이 와서 책 3권을 사 갔다고 한다. 법률적인 검토를 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후일 '김앤장'측의 인사는 민변 총회에 참석해 임종인 의원을 통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서너 군데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사실에 부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나도 역시 법률적으로 문제될 만한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는지 긴장하면서 간담회의 분위기를 전한다.

 


한번 김앤장과 관계를 맺으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에서 대기업의 '김앤장 선호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이기면 '역시 김앤장'이라 하고, 지면 '김앤장도 지는데 할 수 없다"고 술회하는 부분이다. 대기업 법률 담당자도 다른 로펌과 계약하면 오너들이 "왜 김앤장과 계약하지 않았나?"하고 따져묻기 때문에 애초부터 김앤장을 찾는다고 한다. 간담회에서 장화식 씨는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말했다.

"한번 김앤장과 관계를 맺으면 김앤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장화식 씨는 김용철 변호사와 만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삼성 내부에 있는 법률가만 해도 로펌을 꾸리고도 남는데, 왜 자체적으로 로펌을 만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여의치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여의치 않은 이유'에 대해서 장화식 씨는 "정보를 장악하는 사람이 세상을 가진다"는 말로 풀었다. 병원에 가면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병증과 생활패턴 등을 소상히 보고한다. 그러는 사이에 환자에 대한 모든 정보는 의사에게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삼성은 김앤장에게 사건을 맡기면서 속사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장 씨의 분석이다. 그 중에서 정보의 취사선택이 가해지는데, 이 정보를 움켜쥐고 있는 김앤장을 놔두고 천하의 삼성이라한들 따로 길을 틀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재벌이나 기업들 역시 김앤장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그는 말했다.
"왜 김앤장 문제에 천착하냐"는 독자의 질문에 장 씨는 법률의 특징을 들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87년 이전의 폭력은 과격한 것이었으므로 적이 분명했고 나의 행동도 분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폭력은 점점 몸을 숨기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즉, 군부독재 시대에는 '동네사람들아 나 좀 쳐다봐라!' 외치면 두려워 떨면서도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 사람 왜 소리치고 난리야! 법 대로 하면 그만이지.'라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법은 공포 권력에서 수화된 권력으로 가는 매개체 역할을 했는데, 이러한 법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 김앤장이다. 법이 위험한 이유는 지저분한 부(富)를 세탁해 주고, 부패한 권력을 정당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전문가들도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라고 장 씨는 역설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김앤장 전문가가 된 장 씨에게도 이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듯 보였다. 다만 그는 로펌에서 고위직으로 들어가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 최근 5개월의 사건 담당 기록이나 판결기록을 적시하도록 규정만 조금 수정하면 한결 나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실 김앤장의 힘은 보이지 않는 권력이나 언제 고위직으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공포심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의 실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고위직으로 전출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면 김앤장으로서도 정체불명의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마땅한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공분(公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대한 분노가 법과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과 시민들이 조금씩 깨우친다면 감춰진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이 사실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동인은 '의분(義憤)'을 일으키는 자들의 행동이다.

리더스가이드와 후마니타스가 주최한 이번 간담회에서는 출판관계자와 리뷰어를 포함해 20여 명의 방청객들이 토론을 함께 했다.


좀더 입체적이고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한 점이 호응 얻어

독자들은 이번 간담회를 통해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거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며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아이디 '멜기세덱'은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게 있구나'하고 생각했던 정도였는데,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현실에서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디 '라주미힌'은 이미 읽었던 내용을 상황에 맞게 좀더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점을 최대의 소득으로 평가했다. 아이디 '제이드' 역시 저자의 저술 의도를 알게 되었고, 특히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일이 매우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 방청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자신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의 일원이라고 소개한 장양익 씨가 김앤장 문제의 다른 점을 밝혀 주었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징용돼 피해를 본 유족회원 22만명은 당시 자신들을 고용하며 임금체불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일본제철'의 후신 '신 일본제철'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피고인 신 일본제철의 법률대리인이 바로 '김앤장'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원고측 변호인단에 비해 막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김앤장의 영향력과 재판의 진행상황을 답답히 여긴 장 씨는 직접 김앤장 사무실에 찾아가 '무려 22만 피해자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건에 당신들이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뿐만 아니라 판사가 원고와 피고를 한자리에 불러, 김앤장 측에 화해 의사가 없느냐고 제안했을 때 김앤장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책에도 나와 있듯이 김앤장은 철저히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여 노사타협을 힘들게 만든 전례가 있으나 장 씨가 말한 이번 사건의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칫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해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를 떠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자신의 문제와 특별히 관계가 없는 간담회 자리에 나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거대한 뿌리가 너무 강력하다는 사실이 새삼 개탄스러웠다.

 

자신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일원이라고 소개한 장양익 씨는 일제 시대 강제징용자들에게 체불과 인권유린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일본제철의 후신 '신 일본제철'과 진행중인 손해배상소송에서 신 일본제철 측의 변호인단을 맡은 곳이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장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과거사 문제와 얽히게 되기 때문에 '김앤장'은 과거사 해결 의지를 좌절시켰다는 오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편 리더스가이드는 '읽고 쓰고 대화하기' 프로그램을 1달에 1회씩 가질 것을 약속했다. 이미 4월의 일정은 확정됐는데, 4월 12일(토요일) 오후 2시에 동국대 중앙도서관 A/V실(60~80석 규모)에서 <친절한 조선사>의 저자인 최형국 씨와 함께 최근 신선하게 선보이고 있는 조선사 기획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나눌 계획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SHIN 2008-03-1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김앤장.

잘 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8-03-19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삼성'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