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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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민주시민언론연합 등 언론시민단체와 일반 독자들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하단에 자비를 털어서 의견광고를 냈다. 민언련에 의하면 2007년 12월 1일부터 2008년 1월 22일까지 삼성은 한겨레에는 단 한 건의 광고도 집행하지 않았고, 경향신문에는 단 두 건에 그쳤다고 한다. 



'광고와 소송'이라는 이름의 맞춤형 언론탄압

나는 3월 3일에 실린 경향신문의 하단 광고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3월 3일뿐만 아니라 최근에 언론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과 언론단체 명의의 하단광고를 보는 심정은 아프기 그지없다. 나는 동아투위 시절을 잘 모르지만, 그 당시도 일반 시민들이 어려운 살림에 지갑을 털어 의견광고를 내 주었다. 일반독자들이 끝내 의견광고를 내게끔 한 세력이 독재정부에서 재벌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2008년 언론의 환경이 얼마나 황폐해졌고 왜곡됐는지는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2월 1일부터 1월 22일까지 삼성은 한겨레에는 단 한 건의 광고도 집행하지 않았고, 경향신문에는 단 두 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삼성은 조선일보에 29건, 중앙일보에 19건, 동아일보에 22건의 광고를 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작년 7월 신문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5년 기준 <경향신문>의 구독료와 광고 수입 비율은 9.31 대 90.69로 10배 가까이 되고 한겨레 역시 5.5배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서 삼성의 비율은 경향신문이 16.7%, 한겨레가 14.6%이다. (책 233~234쪽)

 

 그 와중에 인터넷 진보매체 프레시안이 삼성으로부터 명예회손 명목으로 1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명분상으로는 지난 11월 26일 보도됐던 "삼성전자, 수출운임 과다 지급 의혹"이라는 기사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인데, 이것은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다. 본질은 '프레시안 그 자체'다. 프레시안이 경영의 어려움이 닥쳤다고 해서 한달에 소액을 후원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결국 광고로 막을 수 있는 신문사는 광고를 마르게 하고, 그렇지 않은 신문사는 회생 불가능할 금액으로 소송을 걸어 세상의 비판언론을 모두 말려 죽이려는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삼성이다.

 


▲ 경향신문과 현겨레신문에는 최근 언론시민단체와 일반독자들의 의견광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www.ccdm.or.kr)은 사이트를 통해 삼성에게 광고탄압을 받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의 인생을 여럿 바꿔 놓은 삼성

 

삼성은 나의 인생은 바꿔놓았다. 일개 논술강사에 불과했던 나는 2007년 봄에 시사저널 사태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젊은 치기로 그 전선에 뛰어들었다. 1년 동안 부지런히 뛰어다닌 덕분에 본의 아니게 민언련에서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는 호사까지 누렸지만 언론의 근간을 모두 장악한 삼성의 장악력에 깊은 열패감을 맛보며 언론시민활동을 접어야 했다. 지금은 출판 쪽 일을 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서 <법률사무소 김앤장>과 함께 출판의 영역으로 넘어온 이 책이 무척이나 반갑다. 언론은 삼성 DNA가 모두 퍼져서 변화의 여지가 없지만, 출판 영역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언론의 독자들은 기득권에 호도되기 쉽지만, 책의 독자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취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가혹한 현재의 규제라면 비자금도 정당하다”는 재벌 신문들이나 경제지들이 같잖은 글이 침범하기 쉽지 않은 것이 출판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책의 독자들과 리뷰어들에게 희망을 건다.

 

 

▲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X파일 사건에서부터 최근의 삼성비자금 사태까지 삼성이 벌이고 있는 광범위한 불법, 편법, 탈법 의혹을 내부고발자와 경제학자, 입법 정치인과 기자, 노동운동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각 인물들의 인터뷰는 물론, 새로 만든 만평, 사건개요와 핵심 요지 등을 짜임새 있게 담았다. 새로운 문제제기나 출판의 차별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삼성의 문제점을 한 자리에 압축해 놓았고, 용기 있게 세상에 선보인 점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은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일곱 팀을 다루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상조 교수, 노회찬, 심상정 의원, 이상호 MBC 기자,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그들이다. <김앤장>과 마찬가지로 탐사보도의 틀을 출판에 맞췄기 때문에 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도 있고, 시의성을 잃었거나 깊이와 천착에 한계가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도서포털에서 ‘삼성’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읽을 만한 몇 안 되는 텍스트가 나왔다는 점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도대체 몇 권이나 사야 소송 부담액 10억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눈앞이 깜깜하지만..

 

프레시안이여! 2008년뿐만 아니라 2009년, 2010년.. 수십 년이 지나도 내 옆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너에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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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7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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