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밴드 Dorothy Band 1
홍작가 글 그림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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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만화책 나이테는 중학교 때 아이큐점프에 나오는 드래곤볼 시리즈로 끝났다가
대학 때 잠시 살아났다. 몬스터, 천재 유교수의 생활, 바르세르크 등등
미야자키 하야오 사단의 만화에 감동받으면서
우리는 왜 이런 만화를 만들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패니메이션의 나라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터치 기술은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광에 봉사하는 하청업체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민족감정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멋과 개성을 살린 만화 유전자가 아이들과 어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까 <도로시 밴드> 같은 만화가 몹시도 그리웠다는 말이다.

80년생 젊은 작가 홍작가는 도로시를 사랑했고 그래서 도로시의 아픔과 상처의 기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대신 도로시의 분신들인 친구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굴레를 가지고 왔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이 등장하는 모든 작품은 굴레와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도로시 친구들의 특징이 참 재밌다. 허수아비(guitar)는 "애드리브의 달인. 뇌가 없어서 곡을 암기하지 못한"단다. 나와 비슷한 캐릭터다. 나는 잊어버리는 것을 건망증이라 부르지 않고 '잊어버리는 기술'이라고 부른다. 좀더 갖다 붙이면 토마스 쿤의 '축적형 지식을 극복한' 창조적 지식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지식이 머리에서 발효된다는 점에서는 기억보다 나는 망각을 선호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곡 잊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야. 머리가 아닌 어딘가에 남아 있거든. 작은 단어 하나가 삶을 바꾸곤 하는 법이지. (181)  
   

이런. 흠흠.. 내가 너무 허수아비만 편애했나 보다. 강철나무꾼(base)은 "말을 가슴에 담아두지 않는 녀석. 정확한 리듬을 타지만 감정이 없다"고 한다. 사자(drum)은 "엄청난 무술실력을 자랑하지만 무대 위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소심남"이다. 설정이 참 재미있다. 이런 병통들이 있으니 인물들이 사랑스럽다.
도로시가 신내림을 받은 이유는 좀 엉뚱하지만, 도로시는 억눌린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것만으로 충분히 '신내림'을 받을 만하다.

   
  "버스 손잡이에 껌 붙여논 자식 언놈이야!!
넌 내 정신을 치유불가 상태로 만들어 버렸어!
아침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던 나의 하루에 사형선고를 내린 거야!!
그치만 주식이 올랐지! 내릴 곳을 지나쳤어!♩♪" (214~215)
 
   

일상 속에서 온갖 떠오르는 단어를 아무렇게나 조합하듯 도로시는 가사를 거의 '시뿌리'지만, 듣고 보면 속 시원한 구석이 있다.

작품의 기본 구성은 뻔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를 섞어 놓은 듯한 스토리 원형에다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이야기를 섞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지 않게 만드는 힘은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과 기발한 전개방식이다. 이 이야기가 만약 소설이었다면 이 정도 재미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구? 이것은 '만화'니까. 만화의 형식으로 소설을 써넣은 '그래픽 노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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