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아이와 함께 '정치 이야기' 해요
-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철수와영희)의 저자 고성국 박사 강연회 취재기


 

우리 가족은 정치 이야기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요

  

"저는 여기 오기 싫었는데요 엄마가 억지로 끌고 왔어요. 그러면 엄마는 독재를 하는 건가요?"(아이)
"본인이 원치 않겠지만, 본인을 위해서 좋은 거라면 '선의의 독재'는 용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엄마)

"역대의 모든 독재자들이 자신의 독재를 '선의의 독재'라고 불러 왔습니다."(강사)

"하하하!!"

아니, 아이들이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을 줄이야. 나는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내 눈을 의심했다. '정치'라고 하면 으레 딱딱하고 재미없고 맨날 싸우기만 해서 아이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강의를 듣는 눈빛이나 쉬는 시간에 부모님과 토의를 하는 모습이 진지하기 그지 없었다. 예정 시간을 30분 넘기면서 질문을 한 사람 중에 어른은 별로 없고 죄다 아이들의 질문들이었다. 목동에 사는 박혜미 학생(11)은 가족들과 함께 강연에 즐겨 참여한다고 말했다. 동생과 엄마, 아빠와 함께 나란히 한 자리에 앉았는데 혜미 가족과 같이 온가족이 동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4~50명이 앉아 있는 자리의 대부분이 가족 단위의 방청객들이 차지했다. 혜미 학생은 '정치' 하면 생각나는 것은 TV에서 어른들이 무엇인가를 자꾸 집어던지면서 싸우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있었던 이명박 특검법 발의 당시의 난장판이 생각났다. 1시간 넘은 강연을 듣고 나서 질문 시간에는 "솔직히 정치 이야기가 너무 어려운 데 정치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해 달라"라는 질문으로 강사를 긴장시켰다.

<86 : 목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박혜미 학생(왼쪽)과 동생 박승재 군이 엄마 아빠와 함께 강연장을 찾았다. 어머니 이혜경 씨는 예전부터 이런 강연을 많이 다닐 뿐 아니라 대화를 자주 해서 아빠가 정치 이야기를 해도 거리감이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치가 무엇인가요


강연에 나선 고성국 박사는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린이를 많이 의식한 듯 최대한 쉬운 단어로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인간이란 존재가 탄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엇인가에 지배되지 않은 상태가 없다는 말로 정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자연의 노예, 신의 노예, 인간의 노예상태를 거쳤지만 노예상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예컨대 1970년 뉴질랜드 여성에게 투표권은 없었고, 1980년 남아공 흑인 역시 투표권이 없었는데, 당시 남아공의 흑인은  전체 인구의 90%였다. 우리 나라 역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1945년 광복 이후에야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으니 고작 60년 동안만 누군가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그마저도 1987년까지는 독재자나 군인에게 주인된 권리를 빼앗겼으니 우리가 진정 나라의 주인이 된 시간은 여러분의 나이일 거라고 덧붙였다.
결국 정치란 고성국 박사의 말대로 '권력을 둘러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둘만 모이면 관계가 형성되고 거기에 '정치'가 내재하기 때문에 이 게임을 피할 수 없다. 이제까지 사람들이 게임을 피해왔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한 사례로 고 박사는 '막걸리와 고무신'을 들었다. 막걸리나 고무신으로 대통령을 뽑던 1940~1960년대에 정치인들은 “이런 상태의 국민이라면 함부로 업신여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3,000여 명의 군인들이 갑자기 탱크를 몰고 와서 자기들의 1만배나 되는 3,000만명을 지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든 군인 몇 명의 불법적인 쿠데타에 저항하지 못하였고 지적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1961년 5월 16일 벌어졌던 5.16 군사 쿠데타이다. 정치라는 '게임'을 피한 결과로 1961년~1987년에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죽고 그 자리에 독재정치가 생겨나게 되었고 회고하며 고 박사는 현대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주었다.

<84 : 76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2년간(전두환 정권) 감옥생활을 하고, 15번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두 번 입원신세를 하였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노이로제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고성국 박사. 때문에 그는 자신이 민주주의를 안 지키면 언제 죽을지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고 말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죽을 수도 있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
법전에 새겨진 핵심적인 명제 중 하나이다. 고 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보호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참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말로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1961~1987년 동안 실종, 사망 등 희생한 사람들이 1,000여 명에 달하는데, 칠레는 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한다. 1971년 피노체트라는 군인이 총들고 나타나기 전 당시 인구 1,000만(71년)이었다. 하지만 1971년 한해 동안만 30만의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 중 25만명은 행방불명이 되었고 5만명은 안데스산맥을 넘어서 도망갔다. 5년 만에 100만명이 줄었으니 5년새 인구의 1/10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단지 칠레인들이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결과이며 '정치'라는 게임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더욱 심하다고 한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단독정부 선거가 있었는데, 선거를 하면 완전 분단이 될 상황이었다. 제주에서는 공산당과 좌파를 중심으로 선거 반대 운동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제주 4.3이 발생했는데, 당시 인구가 25만명이었다. 그런데 1년 후에 인구 8만명이 죽었다. 1/3이 죽거나 사라진 것이다. 이 역시 대부분이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당시 제주에서는 곳곳에 시체를 아무데나 버렸다. 대표적인 처형장과 시체 유기 장소는 정방폭포와 1,000여개에 달하는 화산 동굴이다. 정방 폭포는 바다와 통하는 우리나라 유일한 폭포였는데 당시 4.3을 진압하려는 사람들이 총칼이 아까워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뒤에서 밀어 죽인 것이다. 군사법정 같은 것은 당연히 미미했다. 한라산의 기생화산은 368개인데, 제주는 화산 지형이기 때문에 현무암이 많고, 이런 지질 자체 때문에 동굴들이 많다. 대략 1,000개 이상으로 예측되는데 동굴마다 시체가 즐비했다. 지금도 그 동굴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뼈가 자꾸자꾸 발견된다.

이 모든 결과를 '민주주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지 못해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는 '정치 게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설명에 청중들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고성국 박사는 화창한 일요일 죽은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우리가 주인 노릇을 잘 해야 역사의 이런 비극이 다시는 안 일어난다고 말했다.

<89 : 1시간 강연이 끝나고 질문지를 적어서 제출하기 전에 엄마와 아이가 질문지를 작성하기 위해 토론을 하고 있다. 나는 쉬는 시간 동안 인터뷰를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모두들 너무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통에 한 가족밖에 만나지 못하고 사진을 찍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다음은 아이들과의 일문일답

조은아 친구
"공산주의 반대가 민주주의인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것은 나쁜 의도로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이다. 다수가 통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극소수가 통치하는 것은 독재이다. 하지만 독재를 숨기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공산주의의 진정한 반대는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을 중심으로 운용되는데, 공산주의는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주는 형태이다. 즉 시장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이 있는 자본주의이며, 독재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건너왔다.

 

오승민 학생
"이 자리에 오기 싫었는데, 엄마가 억지로 데려왔습니다. 엄마는 독재를 한 것인가요?"
※ 승민이 엄마 :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선의의 독재자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독재자들이 주로 써먹은 말이 바로 '선의의 독재'다(웃음)
인간의 불완전함도 단계가 있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소양과 판단이 되지 않을 때 판단한다. 판단능력이 제한되므로 권리는 유보된다. 이는 투표권 제한 등으로 나타난다. 아직 그런 선택을 할 만한 주인이 안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12~13세에는 좋아해도 결혼자유권을 안 주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어른의 경우도 정상적 판단 못하는 사람들에게 투표권 등 권리를 제한하는데 금치산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은 철저히 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을 주제로 삼았다. 대통령은 왜 양복을 입는지, 왜 여자 정치인은 없는지 하는 사소한 물음에서부터 민주주의, 독재, 권리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목차를 구성했다. 이 책의 저자인 고성국 박사는 어릴 때부터 정치감각을 길러야 현실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책을 집필했노라고 밝혔다>


 

김민아 학생
"공부를 꼭 해야 하나?"
공부를 잘 안 하면 제대로 된 구실을 할 수 없다. 학교공부는 꼭 해야 할 것만 압축해놔서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다른 재미있는 것을 개발해야 한다. 책 읽고 토론하기, 어떻게 하면 재밌게 공부하는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해 보자. 영국의 위대하 수상 처칠은 공부를 못해서 낙제 경험이 있지만,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수상이 된 것이 아니다. 학교공부는 낙제했으나 총리가 되려는 공부는 아주 열심히 했다. 공부를 하려면 처칠처럼 해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이소윤 학생
"우리 학교는 교복을 안 입는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은 다 입는다. 이것도 어떤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가?"
유니폼이 편한 데가 있고 아닌 데가 있다. 유니폼은 높낮이를 표현하는데, 이는 위계서열을 의미한다. 학교는 높낮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입힌다.
높낮이가 필요 없는 곳에서 높낮이를 만들어서 통치하려고 입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조선학교 사이에서도 3학년이 2학년들을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들어오면서 폭력으로 집권했던 사실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자신들도 국민에게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려고 요식행위로 교복을 폐지한 적이 있다. 유니폼은 반미주, 반교육, 반인간적인 유물이므로 유니폼을 없애야 한다.

 

박혜미 학생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려웠는데, 쉽게 말해서 정치가 뭐냐?"
정치는 권력을 둘러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 두 사람 이상이면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그 안에 정치가 내재해 있다. 이와에 정치 안에서 산다면 정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권력을 갖기 위한 게임이다.

 

"정치가 꼭 좋은 거냐?"
꼭 그렇지도 않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5년 동안 국민의 심부름을 한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심부름 잘 하고, 그 사람이 잘 하면 5년 후에 비슷한 사람을 뽑고, 못하면 다른 사람으로 뽑는다. 그러나 꼭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중간이라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릴 수 있다.
대통령이 일일이 다 못하니까 보조를 두는 데 그것이 장관이다. 다만 마음대로 하지 말고 이런저런 기준에 맞춰서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이것저것 캐묻는 제도를 협의해서 정했다. 국민이 원하는 기준에 충족하는지 묻는 것이 바로 '(인사)청문회'이다.


<122 : '철수와영희'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주최한 이번 강연회에는 4~50명의 좌석이 꼬박 들어찰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들은 주로 '월간 작은책'이나 인터넷 카페 '캠프나라'와 같이 가족 단위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의 회원들이었다> 



학부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좋은 말은 아니었다. 플라톤 시대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당시는 철인 통치가 이상화된 정치체계였다. 18세기 시민혁명 이후에는 민주주의는 좋은 것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갖다 붙인다. 우리는 자유민주, 북한은 인민민주, 유럽은 사회민주주의 하는 식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 다수가 중심이 돼 다스리는 정치를 말한다. 국민 전체가 주인 노릇을 하는지 아닌지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한 주민들은 과연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

 

학부모
"민주주의를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교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교실에 독재자가 있나? 우리는 은근히 독재자를 관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디서든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해서 지배하려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군림하려 한다면 독재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독재에 순응하는 사람이 된다.한마디로 주인노릇 못하는 사람이 된다. 한 대 맞더라도 행동을 할 때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집이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의 학교가 될 수 있다. 어머니, 아버지 등 가족과의 관계에서 정치의식이 만들어진다. 저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매맞으면서 비민주적으로 컸다. 우리 아버지가 못나서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랬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실천 안 되면 실현은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의무라고 하는데 바로 지도층의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Cambridge Trinity College)는 뉴튼 사과나무가 있는 유명한 대학이다. 대학교 정문 앞에 이름이 빼곡이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이 이름 앞에 'sir'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이름은 바로 전쟁이 났을 때 나가서 죽은 사람을 순서대로 새겨놓은 것이다. 전쟁 발발시 자원입대해서 전사한 학생들 중에 2/3 이상이 바로 'sir'을 쓰는 귀족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의미이다. 선진국 지도층의 덕목이자 책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옛날에는 이 원칙이 지켜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등 난리때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전직 고위관료 등 지도층이었다. 호남의병장 고경용은 당시 70의 고령이었는데, 평생 활 한번도 잡아보지 못한 뼈속까지 문인인 사람이었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식구나 마을사람, 하인들은 모두 손에 무기를 쥐었다. 하지만 전쟁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칼을 차고 말을 타고 가다가 죽게 된다. 하지만 호남 최고의 지식인이 의병장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과 백성들이 이에 동참했다. 이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수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많은 수의 의병장으로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남명은 평생 벼슬을 거부하고 재야사학자로 남아 후학을 가르쳤는데, 의병장 곽재우 등 걸출한 제자를 양성했다.
남명은 항상 허리춤에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하는데, 조신시대 지식인과 지도층은 전쟁이 나면 언제든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로 오면 이런 전통이 와르르 무너진다. 6.25가 터지자 이승만은 서울은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라고 공언하였지만, 본인은 야반도주를 해버렸고 이 말을 믿고 서울에 남아 있던 국민들은 대부분이 폭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하자 당시 총리였던 장면은 죽을까봐 겁먹어서 수녀원에 3일 동안 도망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지금도 뇌물이 사라지지 않고 부패지수가 세계적으로 '최고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옛 전통이 무너진 채로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위인전을 많이 볼 텐데, 출세적인 위인전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자기 것으로 익힐 수 있는 위인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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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7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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