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는 왜 국민성금 제안을 했을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성금으로 숭례문 복원을 하자는 제안을 한 일로 한동안 떠들썩했다. 이에 대한 가장 날선 비판을 보여준 사람은 단연 진보논객 진중권 씨이다. 그는 "낯간지럽다, 지금 이 분이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들여다보인다. 불타 버린 국보 1호!,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다시 서다, 이거 감동적인 드라마 아니냐. 그리고 그 앞에서 활짝 웃으면서 사진 찍을 것이고 그러면 이제 모금운동 자기가 발의했으니까 복원의 공까지 자기가 챙기자는 것"(평화방송 시사 프로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이라고 제법 그럴 듯하게 가설을 설정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그런 방법이 잘 통할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진중권 씨의 논지를 따른다면 그것이 통할지 통하지 않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비해 언론이나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 발언을 말실수나 오해 정도로 넘어가려고 하지만 단순한 말실수라고 보기에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들이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북스앤뉴스에 의하면 이명박 당선인의 12일 숭례문 복원 성금운동 제안후 대선때 이 당선인을 적극 밀었던 경상북도와 강남 등에서 즉각 성금운동에 시작됐다고 한다. 이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도 광복회가 주관하는 가칭 '숭례문 복원 범국민추진본부'에 성금 2천만엔(한화 2억원 상당)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2008.2.12일 보도 "경북-강남 등, 이명박 몰표지역 '숭례문 모금운동' 착수") 이밖에도 신한은행은 15억원을 국민은행은 5억원을 쌓아놓고 국민의 여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이명박 당선자가 복화술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라고 하는 말에 지지자들이 '당근이지'라고 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응신은 매우 신속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전체 유권자의 30.6%의 지지를 받았다. 즉 17대 대통령선거 전체 유권자 37,653,518명 중에서 11,483,312표를 획득했는데, 진중권씨는 이명박의 지지세력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문화재청이 보고한 복구비 200억원쯤은 십시일반으로 모을 수 있는 세력이 이명박 당선자를 밑받침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두뇌가 2메가바이트가 아니라 2기가바이트가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윗분들과 아랫분들의 '복원방정식'

 

이번 '국민성금 복원 제안'은 두 가지 원리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원리는 단연 수요와 공급의 곡선이며, 나머지 원리는 편의상 '복원방정식'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윗분들과 아랫분들의 복원방정식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계를 1년여 전인 2006년 여름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 당시는 강원도 등지에 엄청난 홍수가 발생해 기반시설과 가옥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다. 경향신문의 2006년 7월 21일자 기사의 내용은 현장 분위기를 아래와 같이 보도하고 있다.

“건설업자들은 큰 비가 오면 ‘돈이 내린다’며 기뻐합니다. 떼돈 벌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죠.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고도 합니다.” 20일 강원도 공무원 ㄱ씨(40)의 말이다. 물난리 뒤에는 으레 대형 수해복구 공사가 있게 마련이고, 이는 곧 한몫 잡는 기회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ㄱ씨가 털어놓은 수해복구비 예산집행 내역을 보면 기가 차다. 큰 공사는 지자체장과 친분있는 지역 업체가 수주를 싹쓸이하고 실적 위주로 서둘러 공사를 한다. 작은 공사는 영세업체를 순번으로 정해 분배한다. 시공 능력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검은 돈’이 오간다. 이러다보니 올해 터진 곳이 내년에 또 터진다. 그러면 또 세금을 타내 부실공사를 되풀이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 경향신문 2006.7.21일자 <지자체 수해복구 “돈이 내린다” 업자만 ‘好雨’>


위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재해가 터졌을 때 대목장이 서는 것이다. 윗분들은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해 피해지역을 최대한 빨리 복원시키려 한다.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수의계약이 이루어지면서 건설사들은 엄청난 재화를 공짜로 얻을 수 있고, 질이 안 좋은 건설사들은 일부러 부실공사를 내기도 한다. 수의계약이기 때문에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으며 추후에 피해가 왔을 때 공사를 또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복구방정식'을 가장 쏠쏠히 활용하는 자들은 건설업자들이다.
숭례문이 무너지자마자 문화재청은 앞뒤 재지도 않고 200억원으로 3년 안에 복원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서울시청은 광화문을 팽개치더라도 이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엄호사격을 했다. 2006년의 수해때와 현재 숭례문 화재에 쓰이는 '복원'이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이 '복원'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원칙이 전제돼 있다. 하나의 정책은 정치소비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정치인들의 수요공급곡선으로 탄생한다. 그렇다면 '복원'이라는 것은 영리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허물을 애써 덮으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수요자인 국민들이 욕구하는 것이다. 국민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 '복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면 "앞으로도 그런 게 잘 통할까"라던 진중권 씨의 단언은 점점 위태로워진다. 물론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발전된 정치의식을 의식해 '복원'이라는 구식 방법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국보법'이나 '경제도 어려운데'라는 수사가 통용되는 시대라면 정치인들이 아직 쓸 만한 '복원 카드'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숭례문 화재 사건에서는 '복원방정식'이 어떻게 작동할까?

 

난세, 난국, 위기, 재해는 기회이다. 신라 말세 때 육두품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 말세 때 매관매직을 통해서 양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난세를 만났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탈레반 납치나 신정아 사건과 같은 메가톤급 국면에서는 정당의 부대변인이나 언론사의 후보 아나운서들이 논평의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어떤 아나운서는 '큰 사건이라도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9.11사건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또한 애국법을 통과시켜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게 하고, 비밀리에 고문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정국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전직 대통령의 비리 청문회에서 기반을 마련했으니 '복원방정식'의 수혜자다.

 

숭례문과 관련해서 복원방정식은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아직 구체적인 확증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추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는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명박 당선자가 복원된 숭례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국민성금의 일등 공신이 되는 것은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당선자의 골수 지지자들은 지금도 성금을 속속 모으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서는 성금의 대부분을 지지자와 기업, 단체들이 부담할 수도 있다. 그때는 이런 논평이 가능하다. "우리들은 피땀흘려 번 돈을 국보 1호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아끼지 않고 보태 결국 숭례문을 복원시켰는데, (반대론자)들은 앉아서 비판만 하고 실질적으로 한 게 없다"는 비판을 날조할 확률이 있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숭례문이 국보가 아니라 이명박 당선자의 보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제까지 보였던 행동으로 볼 때, 그는 숭례문 화재를 '신화'로 바꿀 가능성이 크다. 즉 제2의 부시가 되려 할 것이다. 문화재청이 3년 안에 복원하겠다는 공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2년이나 1년 안에 숭례문의 유사품을 만들어서 서울 한복판에 세워 놓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나서 언론에 역경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한 지도자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할 수도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실적주의, 신화에 대한 환상, 문화에 대한 천박한 관점 등을 조합한다면 이러한 가설이 허황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원칙대로 밀고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일본의 금각사는 전소 후 성급한 복원을 시도하였으나 폐해를 깨닫고 50년 동안 조심스레 복원한 결과 제2의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2월 14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원칙은 이뿐만이 아니다. 숭례문 사고를 일어나게 만들었던 당사자들에게 법적 또는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중권 씨가 숭례문 사건과 관련해서 사과해야 할 사람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오세훈 현 서울시장, 유홍준 문화재청장이라고 지목했는데, 이명박 당선자에게 과실이 없는지 따져보고 법적이든 도의적이든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 숭례문 개방을 주도했기 때문에 일반인에 대한 숭례문 개방시 관리방안에 대해서 마련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사고 경위를 살펴보면 숭례문 개방에 대한 관리체제가 전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명박 전 시장이 관리책임을 인수인계하지 않은 것인지,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인수받은 관리책임을 소홀히 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이미 숭례문은 우리의 곁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관리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해 성급히 복원하려는 정치인들을 비웃기 전에 이런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게 된 원인을 누가 제공한 것인지를 성찰하는 것이 이번 사고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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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무리 2기가바이트 2테라바이트라고 해도 나라를 맡아 살림하는 사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德이라고 보여집니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당선인은 어쩌면 자기를 지지하는 기득권층에 의해 不德의 궁지로 몰릴 가능성도 높다고 봐요..^^ 제아무리 돈을 뿌린 들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데..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