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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조선사 -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
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 하면 떠오르는 그늘진 말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헤게모니’와 ‘주류’라는 수식어이다. 흔히 듣는 말로 ‘강자의 역사’라는 냉소는 시험에서 역사 과목이 좌천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 역시 역사의 과정일까. 근사한 역사의 모양은 이러한 헤게모니와 주류, 강자의 역사에서 반성의 역사, 현장의 역사로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친절한 조선사>가 예뻐 보이는 것은 이러한 흐름을 진하게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패전국 독일이 곳곳에 흩어진 구비문학을 수집하고 여기서 독일인의 자신감을 회복했듯이, 수천 년 동안 왕의 부지런한 신하들이 세상 곳곳에 유행하는 노래나 말, 욕설까지도 채록해서 정사의 거울로 삼아 태평성대를 누렸듯이 역사의 기록자나 모든 말의 관리자들은 언땅에 맨살 엉덩이를 떼지 못해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의자 하나를 더 당겨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친절한 조선사>의 가장 큰 미덕은 군상들(작가의 말로는 작은 사람들)을 구출해낸 점일 것이다. 이는 사마천이 <사기열전>을 편찬하던 취지와 맥을 같이 한다. 사마천은 거시사와 미시사, 주류와 비주류의 역사를 총괄한 사관으로 유명한데, 거시사이자 주류의 역사는 <본기>와 <세가>이다. <본기>는 왕의 사적을 다루었고 <세가>는 제후와 중신들의 행적을 다루었다. 영웅호걸과 저잣거리의 범상찮은 군상들을 다룬 것이 바로 <사기열전>인데, <친절한 조선사>의 작가는 사마천을 무척이나 동경이라도 한 듯 <사기열전>의 인물들을 까메오로 등장시킨다. 왜관에 깊숙이 들어가 왜검을 익혀 국가안위에 기여한 김체건은 <자객열전>에 비할 수 있고, 연장질을 일삼던 조선판 조폭 ‘검계원’들은 알맹이만 쏙 빠진 <유협열전>이 생각나게 한다. 인정사정 없이 이들을 진압해 쏙들어가게 만든 장붕익은 <혹리열전>에 비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2부를 가장 사랑한다.
경어체가 거북스럽지 않고 필력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감칠맛 나는 글감과 세심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친절하다. 얼핏 목차를 보면 신문기사가 연상되면서도 포털의 횡포와는 전혀 달리 ‘낚시글’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역사적 의미의 다발을 붙드는 모양이 사랑스럽다. 마치 탐사보도를 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가벼운 마음으로 잡지를 읽는 듯한 기분이다. 사소한 문장이나 사진 소개에서도 농을 걸어오는 품이 가볍지 않고 제법 오래 공을 들였을 법하다. 특히 과거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점이 무척 고맙다. 이 책을 거시사에서 미시사로 넘어오는 흐름의 부표로 삼아도 나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한 권의 책에 대해서 이렇게 원없이 또는 수사 없이 찬사를 늘어놓기는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 (그러나)오탈자
74쪽 ‘손자을(를O)’(조사 오류), 170쪽 ‘있습니다, 섰다’(서술어 비일관성), 311쪽 ‘만들던(든O)’(미완을 뜻하는 어미 ‘던’과 선택을 뜻하는 어미 ‘든’의 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