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숭례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 국보1호 논쟁 우리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숭례문은 뭐고 남대문은 또 뭘까?

숭례문(이른바 남대문)은 대한민국의 상징이며 우리 마음 속의 국보1호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으며 지탄의 대상이 될 위험마저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뒤엎을 수는 없는 일이며, 이 차에 해묵은 논쟁을 마무리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해서 감히 꺼내든다. 이른바 국보논쟁이다.

숭례문은 언제부턴가 남대문으로 불리며 이제는 숭례문보다 남대문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썩 개운치 않다. 우리 민족은 옛부터 음양오행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직접적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키기보다는 그것과 의미가 같은 다른 말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남대문'이라고 직접적으로 표시하지 않고 '숭례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숭례문의 '례'는 다섯 가지 도리[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에서 '禮'에 해당한다. 선조들은 이 다섯 가지 도리를 서울의 사방에 세웠다. 보신각(普信閣)을 중심 축으로 4대문을 '인(동)-의(서)-예(남)-지(북)'(흥인문(興仁門)-숭례문(崇禮門)-돈의문(敦義門)-숙청문(肅淸門))라는 이름을 붙였다. (북문만은 예외이다.) 하지만 일제가 이 이름 대신 그냥 '남쪽을 향하는 문'으로 바꿔 버렸다. 이 때문에 조선의 정기를 훼손했다는 논란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숙청문(肅淸門) / 숙정문(肅靖門)

흑색

북쪽

겨울

지(智)

돈의문(敦義門)

보신각

흥인문(興仁門)

백색

황색

청색

서쪽

중앙

동쪽

가을

사계절

의(義)

신(信)

인(仁)

숭례문(崇禮門)

적색

남쪽

여름

예(禮)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음양오행을 생활화했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남대문'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은 우리의 정서와는 매우 이질적이다.> 

국보1호에 대한 재논의에서부터 시작해야

 

국보1호 성립 과정 역시 이에 못지 않다. 일제는 1933년 8월 9일 제령 제6호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공포하여 이듬해에 이를 시행하게 되는데, 조선총독부는 보물 1호로 남대문을, 보물 2호로 동대문을, 보물 3호에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보물 4호로 보신각종을 지정하였다. 숭례문이 국보1호가 된 것은 매우 자의적이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당시에나 지금이나 국보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이 없었고, 그 대신 행정편의상으로 줄세우듯 국보의 호수를 배분했고 광복 이후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공포할 당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1963년 728점에 이르는 지정문화재 중 116점을 국보로 지정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의 국보 1호는 우리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정해준 것을 가슴에 새기고 다녔던 것이다. 숭례문 전소 사건이라는 아주 우연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져 국민들이 마음에 상처로 남았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기화로 삼아 이참에 국보에 대한 새로운 원칙을 협의하는 계기를 마련해도 좋을 듯하다.

 

이런 논의와 상관없이 현재 숭례문의 부재 활용 여부를 검토해 보면 국보1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화재로 인해 숭례문의 2층은 완전 전소되었고, 1층도 많아야 30%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재청의 공언대로 200억을 투입하고 서울시청이 밝힌 것처럼 광화문보다 시급히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국보1호로서의 가치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 더군다나 2005년에 전소된 낙산사 역시 복원되었으나 보물에서 해제된 바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숭례문은 고달픈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 숭례문 전소 사건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주요문화재에 대한 관리체계는 현재 전무한 실정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문화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확립하는 작업과 함께 이참에 국보에 대한 원칙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국보에 대해서 한번도 자체적으로 고찰해보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돌아보고 지금부터라도 문화재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관점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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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2-1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정보 접했습니다. ^^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왜 과거 문화재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존하려고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인간이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 - 물건에 대한 사유욕이
생기면서부터 - 그래서 수 많은 전쟁이 나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웃음)

인간은 유난히 과거에 집착을 하죠? 과거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해요.
그것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무의식적인 의문을 해결하고 싶은 걸까.

Mephistopheles 2008-02-12 19:55   좋아요 0 | URL
그건 의외로 단순해요..인간은 때론 과거에서 미래를 발견하곤 하니까요.^^

L.SHIN 2008-02-12 21:56   좋아요 0 | URL
네, 까마득한 과거까지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겠죠.
미래에 인류가 만날 사실이 무엇인지.

승주나무 2008-02-13 02:33   좋아요 0 | URL
아니.. 제 글이 그렇게 심오한 것은 아니었는데, 스스로 깨달은 것이겠지요~ 항상 고민하는 '하울'님이 참 좋습니다~

승주나무 2008-02-13 02:34   좋아요 0 | URL
메피 성님.. 과거에서 미래를 발견하려고만 한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세상일까요~~~ 무섭습니다..이 무지의 침묵이 ㅠㅠ

해적오리 2008-02-12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에선 시도때도 없이 이 얘기만 해대고 마구마구 쏟아대는 말들이 영 탐탁치 않네요. ;;
그래선지 누군가는 음모설을 이야기하더군요...에효...

승주나무 2008-02-13 02:35   좋아요 0 | URL
저는 음모설보다는 계획설에 더 믿음이 갑니다. 홧김에 지른 것도 아니고 사전 답사까지 할 만큼 세상에 대한 증오도, 자기 행위에 대한 자신감도 하늘을 찌르더군요~~ 불길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