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1일 새벽
술을 마신 20대 남성이 화성 서장대 누각에 올라가 옷을 불을 붙여 바닥에 던지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해 2층 목조 누각이 소실됐다. 불을 지른 이유는 카드빚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8년 2월 10일 저녁
어떤 남자가 배낭을 매고 숭례문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대형 화재 발생해 1,2층이 무너졌다.
이 밖에 2006년에는 한국의 대표적 궁궐인 창경궁의 문정전, 수려한 북한산 산림 8000여평이 화마에 휩싸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단순 화재인지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묻지마 테러인지는 좀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대형사건은 반드시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이 사건은 사회현상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크다. 상징적인 조형물에 대한 테러는 자신의 불만이나 의도를 분명히 알리고자 하는 일종의 신호다.
나는 이 사건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집으로 가려는 선량한 아줌마를 별 원한도 없는 남성이 밀어서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지하철 대기선을 피하려고 했고,
이왕이면 벽에 붙어서 누가 뒤에서 밀지 못하도록 했다.
만약 이 사건이 우발적이고 계획적인 범죄라면
제2, 제3의 피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겠지만,
사회모순에 의한 분노의 표출이라면 사실상 해결방도가 없다.
<불타는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예(禮)는 오행에서 남쪽을 뜻하므로 숭례문이라고 한다>
희망이 없고 좌절만 가득하고,
이웃을 돌보지 않고 자신만이 살아남으려는 가혹한 세태에 딱 어울리는 사건이
바로 이런 불특정 다수나 문화재 등에 대한 묻지마 테러이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얻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재산상의 이익이나 원한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을 감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좌절이 깊다는 뜻이 아닐까.
<방화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범죄다. 선진국 진입에 따른 사회불평등과 갈등, 비용, 불만 등이 방화라는 형식으로 표출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방화는 1995년 2,245건에서 2004년 3,291건으로 6.7%나 증가했다. 이는 동일기간 동안 발생한 전기(2.1%) 담뱃불(4.3%) 증가율을 훨씬 앞질른 비율이다.>
살인이나 방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방관자든
사건이 주는 충격에 무감하거나 빨리 잊어버리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 사건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충분히 키워왔던 사회적 범죄의 다발이며 그 첫 매듭이다. 매듭이 복잡하다고 환부만 싹뚝 자르려 한다면 매듭 자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졌지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 시대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