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군! 하늘을 꾸짖고 땅을 눈흘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M군 M군! 어머니는 돌아가시었네. 세상에 나오신 지 오십년에 밝은 날 하루를 보시지 못하시고 이렇다는 불평의 말씀 한 마디도 못하여 보시고 그대로 이역(異域)의 차디찬 흙 속에 길이 잠드시고 말았네. 불효한 이 자식을 원망하시며 쓰라렸던 이 세상을 저주하시며 어머님의 외롭고 불쌍한 영혼은 얼마나 이 이역 하늘에 수없이 방황하실 것인가. 죽음! 과연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나 사람들은 얼마나 그 죽음을 무서워하며 얼마나 어렵게 알고 있나. 그러나 그 무서운 죽음, 그 어려운 죽음이라는 것이 마침내는 그렇게도 우습고 그렇게도 하잘것 없이 쉬운 것이더란 말인가……
오십년 동안 기구한 목숨을 이어오시던 어머님이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풀잎에 맺혔던 이슬과 같이 사라지고 마시는 것을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그다지도 허무하더라는 것을 느낄 대로 느꼈네.


 - 이상(李箱) 소설 「十二月 十二日」

 
   

 

 

'소부니모들'이라 불리는 곳에 처한 가족공동묘지는 오름과 봉우리가 바라보이고 일출봉이 베개처럼 뉘인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그날은 봄날처럼 햇살이 비추고 바람도 아버님의 덕성처럼 잦아들었습니다.
매서운 겨울 바람으로 유명한 성산포 상가(喪家)에는 제기를 차도 될 만큼 한가한 미풍이 머물러 상주(喪主)는 몹시도 수월하게 큰일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혹 큰일이 있는 날 날씨가 궂으면 제주에서는 "상주가 복이 없어서..."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돌곤 하는데, 당신은 그 일까지 염두에 두고 가셨겠지요. 당신의 어머님이 백(百)에서 터럭 하나가 모자란 나이에 돌아가신 날(백수(白壽) : 99세)에도 시끄럽던 비바람이 몸 뉘실 때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지요.

 

살아 생전에 이 아들은 뜻이 꺾인 괴로움을 지우려는 아버님의 몸부림을 오래도록 보아야 했습니다. 물론 잡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거나 좋지도 않은 술과 담배를 몸에 붙이고 살아온 세월에 가족들이 몹시도 원망을 하였겠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당신을 좌절시킨 것이 무엇인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짧게는 제 유년에, 병마에서 저를 건져내며 가세가 기울어진 즈음일까요. 결국 동네에서 "살릴 아이는 죽고, 죽을 아이는 살렸다"는 소리를 기어코 듣고 만 제가 이렇게 남아 당신의 유훈(遺訓)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길게는 창창하던 젊은 시절 일본 밀항에 실패하고 3~4년을 허송세월로 버리고 모아둔 자산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일까요.

아들은 모릅니다. 아버지가 끝내 일어나실 수 없도록 옥죄었던 그 악연을. 그것이 악연이라면 반드시 나에게도 찾아올 테니, 저는 아버지에게 이 악연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염치 불구하고 전합니다.

서울에서 벗들이 먼 길을 넘고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영전에 절을 하고 지친 저를 위로하고 갔습니다. 먼 길을 오지 못하는 남은 벗들의 뜻도 전하고 갔습니다. 그들에게서는 바쁜 일상의 내음이 배어왔습니다. 제가 일상으로 얼른 돌아오도록 재촉하는 내음이겠지요.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제주의 오래된 말이 있다지요. 사람의 마음이야 옷고름처럼 매고 풀고를 간단하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슬픔을 뒤로 하고 돌아갑니다. 그날 뿌리지 못한 눈물은 평생 흘리겠습니다. 사실 아직도 당신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임종의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셨다고, 안방의 따뜻한 구들에서 가셨다고 호상 중의 호상이라고 말들 하지만, 한창 달려갈 나이에 호상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끝내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자로 남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남기신 뜻은 제가 아버님 나이가 되더라도 깨닫지 못하겠지만, 아버님을 붙잡은 악연에 다시는 빠지는 일이 없도록 조신하겠습니다.
아버님 영전에 긴 절을 바칩니다.


※ 덧붙여
잘 알지 못하는 이웃의 불행을 따뜻하게 위로해주신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일일이 호명하여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옳은 일이나 좋은 기회를 기다려 감사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일상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마당 앞에서 찍은, 끝내 영정 앞에 모셔진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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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2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1-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당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그저 힘내시라는 말을 보태봅니다. 시간에 의해 자연스레 치유가 될 날이 올 테지요.

2008-01-14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